부르고뉴/버건디 와인 입문기
"관능적이다, 이거."
처음 부르고뉴 와인을 마셨을 때, 함께 마시던 이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몇년 전, 웨이트로즈라는 영국 마트에서 가볍게 구입했던 부르고뉴 와인이었다. 비교적 저가 라인이었는데도 이런 감상평이 나왔다. 부르고뉴는 가격 때문에 마시고 싶은 와인을 매번 마시진 못하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다시 찾게 되는, 마음 속에 늘 남아 있는 지역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나는 이 지역 와인이 좋았을까? 부르고뉴가 궁금해 깊이 들여다보았다. 나처럼 부르고뉴가 궁금한 초심자라면, 어떤 와인을 즐겨야 할지 막막했다면 즐겁게 따라와 주시기를 바라본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브루고뉴 와인을 '버건디(Burgundy)'라고 부른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원 프랑스어 표기와 가장 유사한 '브루고뉴'라고 부르고자 한다.
부르고뉴는 프랑스 동부, 파리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보르도와 함께 최상급 와인 산지로 손꼽힌다.
보르도가 블렌딩 중심이라면,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을 주로 사용한다(레드는 피노 누아, 화이트는 샤르도네)
보르도가 주로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면, 부르고뉴는 레드, 화이트 와인 모두 뛰어나다
보르도와 달리 생산량이 적다(보르도의 25% 수준)
보르도와 달리 포도밭(vineyards)이 매우 잘게 분할되어 있다(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포도밭은 82명의 소유주가 나눠 갖고 있을 정도)
와이너리/생산자를 '도멘(Domaine, 소유지/영지)'이라고 부른다(보르도는 '샤또(chateau, 성/대저택)'라고 부른다)
보르도보다 색이 옅고 섬세하다(피노 누아가 보르도의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이나 메를로(Merlo)보다 색소 함량이 낮다)
풀바디이지만, 가볍고 섬세하다. 레드 와인은 피노 누아 특유의 붉은 과실 향이 두드러지며, 숙성될수록 실키한 질감과 깊이를 더해간다. 시간이 지나면 과일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함께 가죽, 커피, 야생고기(game) 같은 복합적인 부케(bouquet)가 형성된다. 블랙베리 아로마를 바탕으로 숲속 흙 내음(woodsy), 촉촉한 흙냄새(damp earth), 버섯 향(mushroomy scents)이 어우러진다.
일반적으로 빈티지가 약할수록 10년 이내에 마시는 것이 좋다.
부르고뉴는 대륙성 기후(continental climate)을 가지고 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우리가 익숙한 뚜렷한 사계절 기후다. 포도밭마다 미세한 기후 차이가 있어 와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를 프랑스에서는 '떼루아'라고 부르는데 이는 토양, 기후, 지형 등 와인의 특성을 결정짓는 환경적 요소를 의미한다. 부르고뉴의 '떼루아(terroir)'는 '피노 누아(Pinot Noir, 레드와인용)'와 '샤르도네(Chardonnay, 화이트와인용)'에 최적이라고 한다.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레드 와인은 모두 피노 누아, 화이트는 모두 샤도네이 포도 품종이다. 그럼에도 다른 맛이 나는 것은 모두 '떼루아'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프랑스 단어로,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정확하게 이 뜻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프랑스어 'terre(흙)'에서 유래한 단어로, 특정 포도밭이 가진 고유의 자연적 요소가 결합된 개념이다. 유럽은 와인을 생산 지역에 따라 명명하는데, '뗴루아' 개념도 이러한 유럽적 사고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떼루아는 특정 포도밭이 가진 불변의 자연적 요소 - 표토, 심토, 기후(햇빛, 강수량, 바람 등), 언덕의 경사, 해발고도 - 가 결합된 것이다."
- 에드 맥카시, Wine for Dummies
부르고뉴는 크게 5개의 주요 와인 생산 지구(districts)로 나뉜다. 북쪽에서부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샤블리(Chablis) - 100%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
코트 도르(The Cote d'Or) - 레드/화이트 모두 생산(부르고뉴 핵심)***
코트 샤로네즈(The Cote Chalonnaise) - 레드/화이트 와인, 가성비 좋음
매코네(The Maconnais) - 주로 화이트 와인 생산
보졸레(Beaujolais) - 가메(Gamay) 품종의 레드 와인 중심
코트 도르는 부르고뉴에서 가장 중요한 와인 산지다. 40마일에 걸쳐 이어진 이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포도밭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코트 도르의 뜻도 "황금 슬로프(golden slope)"이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모두 뛰어나며, 크게 북쪽의 '코트 드 뉘', 남쪽의 '코트 드 본'으로 나뉜다. 코트 드 뉘는 레드 와인의 성지로 유명하며, 코드 드 본은 화이트 와인이 많이 알려져 있다.
9개의 그랑 크뤼: 샹베르탱(Chambertin), 샹베르탱 크로 드 베즈(Chambertin Clos de Beze) 등
주요 생산자: 도멘 르루아(Domaine Leroy), 퐁소(Ponsot), 아르망 루소(Armand Rousseau), 위베르 리니에(Hubert Lignier), 조셉 로티(Joseph Roty), 루이 자도(Louis Jadot)
그랑 크뤼: 본 마르(Bonnes Mares)(일부), 클로 드 라 로슈(Clos de la Roche), 클로 생 드니(Clos St.-Denis), 클로 드 타르(Clos de Tart), 클로 데 랑브레(Clos des Lambrays)
주요 생산자: 퐁소(Ponsot), 위베르 리니에(Hubert Lignier), 도멘 뒤자크(Domaine Dujac)
그랑 크뤼: 뮈지니(Musigny), 본 마르(Bonnes Mares) (일부)
주요 생산자: 도멘 르루아(Domaine Leroy), 도멘 콩트 드 보그(Domaine Comte de Vogue), 도멘 뒤작(Domaine Dujac), 루이 자도(Louis Jadot)
그랑 크뤼: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주요 생산자: 안느 그로(Anne Gros), 메오-까뮈제(Meo-Camuzet)
6개의 그랑 크뤼: 로마네 콩티(Romanee-Conti), 라 타슈(La Tache), 리쉬부르(Richebourg), 로마네 생 비방(Romanee-St.-Vivant), 라 로마네(La Romanee), 라 그랑 뤼(La Grad Rue)
주요 생산자: 도멘 르루아(Domaine Leroy),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ee-Conti), 안느 그로(Anne Gros): Richebourg, 메오 까뮈제(Meo-Camuzet), 루이 자도(Louis Jadot)
그 외 플라제-에슈조(Flagey-Echezeaux), (마사네(Marsannay), 피산(Fixin), 뉘 생 조르주(Nuits-St.-Georges)도 있다.
본(Beaune) 도시 이름에서 유래한 코트 드 본은 레드와 화이트 모두 생산하지만, 특히 화이트 와인이 훨씬 유명하다. (실제로 코트 드 본의 화이트 와인은 정말 향기롭고 우아하고, 파인 다이닝 음식에도 잘 어울리는, 기분 좋은 와인이었다!). 화이트 부르고뉴 와인은 풍부한 풍미의 조합이다. 뫼르소(Meursault)의 복숭아, 헤이즐넛, 꿀, 풀리니(Puligny)나 샤샤뉴 몽라셰(Chassagne-Montrachet)의 꽃향기와 버터스카치, 생동감 있는 산미와 오크 향이 느껴진다. 숙성될수록 복합미가 더욱 발전한다.
그랑 크뤼: 화려한 화이트 그랑 크뤼인 코르통-샬레마뉴(Corton-Charlemagne)가 생산됨.
주요 생산자: 코쉬-두리(Coche-Dury), 루이 라투르(Louis Latour), 루이 자도(Louis Jadot), 메오-까뮈제(Meo-Camuzet)
프리미어 크뤼: 레 페리에르(Les Perrieres), 레 제네브리에르(Les Genevrieres)
주요 생산자: 코쉬 두리(Coche-Dury), 도멘 데 콩트 라퐁(Domaine des Comtes Lafon), 베르제(Verget),
그랑 크뤼: 몽라셰(Montrachet (part)), 슈발리에 몽라셰(Chevalier-Montrachet), 바타드 몽라셰(Batard Montrachet (part)), 비엔베뉴-바타드 몽라셰(Bienvenues-Batard Montrachet)
주요 생산자: 도멘 라모네(Domaine Ramonet), 도멘 데 콩트 라퐁(Domaine des Comtes Lafon), 도멘 르플라브(Domaine Leflaive), 도멘 에티엔 소제(Domaine Etienne Sauzet), 루이 카리옹(Louis Carillion), 미쉘 닐론(Michel Niellon), 베르제(Verget), 루이 라투르(Luis Latour)
샤사뉴-몽라셰(Chassagne-Montrachet): 조금 더 견고하며 흙 느낌이 강함
그랑 크뤼: 크리오-바타드 몽라셰(Criots-Batard Montrachet)
주요 생산자: 루이 자도(Louis Jadot)
본(Beaune), 포마드(Pommard), 볼네이(Volnay), 라도와(Ladoix), 페르낭 베르그리스(Pernand-Vergelesses), 쇼리 레 뵈(Chorey-les-Beaue), 사비니 레 뵈네(Savigny-les-Beaune), 오시-두레스(Auxey-Duresses), 몽헬리(Monthelie), 생 로맹(St.Romain), 생 오뱅(St.Aubin), 산테네(Santenay), 마랑쥬(Maranges) 등도 있다.
조셉 드루힌(Joseph Drouhin) 생산자는 레드, 화이트와인 모두 그랑크뤼, 프리미어 크뤼 와인 전반에 걸쳐 명성이 높다.
부샤 페르 에 피스(Bouchard Pere & Fils)가 생산하는 그랑 크뤼(Grand Crus), 프리미어 크뤼(Premier Crus)는 거의 다 좋다.
AOC/AOP(원산지 통제명칭) 체계가 부르고뉴에서도 중요하게 적용되며, 라벨에 따라 와인 등급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지역별(regionwide), 지구별(districtwide), 마을별(commune) AOC가 각각 존재하며, 개별 포도밭에 따라 AOC 이름이 붙기도 한다. 일부는 프리미어 크뤼(Premier Cru, '1등급(first-growth)'), 그랑 크뤼(Grand Cru, '최고등급(great-growth)')로 분류된다.
(본 글 주요 내용 참고처: Wine for Dummies)
코트 도르(Côte d’Or)는 부르고뉴의 핵심 지역으로, 고급 와인의 본 고장이다. 하지만 가격대가 높은 편이므로, 가성비 좋은 와인을 찾는다면 코트 샤로네즈(Côte Chalonnaise) 지역을 눈여겨볼 만하다. 코트 도르보다 다소 거친 느낌과 덜 정제된 풍미를 지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이 많다.
부르고뉴 북서쪽에 위치한 샤블리(Chablis)는 파리에 가장 가까운 와인 산지다. 이 지역에서는 100% 샤도네이(Chardonnay)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데, 코트 도르의 화이트 와인이 주로 오크 숙성을 거치는 것과 달리, 샤블리는 대부분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된다. 그 결과, 오크향이 거의 없고 더 가볍고 크리스피하며 담백한 맛을 낸다. 샤블리는 비교적 서늘한 기후 덕분에 산도가 높고 깔끔한 미네랄 감이 특징이다.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부르고뉴를 찾는다면 매코네(Mâconnais)지역을 고려할 만한다. 보졸레(Beaujolais)는 부르고뉴 지역에 속하긴 하지만 피노 누아가 아닌 가메(Gamay) 품종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부르고뉴와는 다른 개성을 지닌다.
레스코랑에서 레드 부르고뉴를 주문하면 대부분의 요리와 잘 어울린다! 부드럽고 기분 좋은 아로마, 레드 과일 풍미 때문이다. 그리고 피노 누아는 거의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는 편이다. 치킨, 터키, 햄에서부터 심지어 연어같은 해산물까지 잘 어울린다. 더 깊은 풍미의 레드 부르고뉴는 소고기, 사냥고기(오리, 꿩, 토끼, 사습 고기류)와도 잘 어울린다. 약 17도로 시원하게 마시는 걸 추천한다. 디켄팅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디켄팅하는 순간 그 섬세한 아로마가 다 사라질 수 있다.
반면 화이트 부르고뉴는 그랑 크뤼 등 고급 와인일 수록 디켄팅해도 좋다. 코르통-샬레마뉴(Corton-Charlemagne) 같은 와인은 처음 몇 년동안은 거의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화이트라고 너무 차갑게 내서도 안된다. 보통 약 15-17도가 적당하다.
부르고뉴 와인은 참 복잡하고, 깊고, 매력적이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도 부르고뉴 첫 잔을 마시고 이렇게 말하게 된다면 참 반가울 것 같다.
"관능적이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