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을 하고 싶은데 왜 반응이 없니
어색하고 뻘쭘하고, 민망했던 소개팅 후 2년. 그 2년 동안 항승씨와 난 ‘그냥’ 친구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항승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사인들을 내가 눈치 채지 않고 있던 것 같다. 늘 사랑하고 싶어 했지만 그 관계를 잘 이끌어가지 못했던 나는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고, 이런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고, 상대방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늘 사랑받고 싶어 했고, 먼저 다가와주길 바랐다. 그럼 못 이기는 척, 넘어가는 척 능구렁이처럼 사랑이 시작되는 걸 허락했었다. 항승 씨에게도 위와 같은 나의 사랑의 룰을 적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웃으며 기다렸다. 먼저 다가가지는 않으면서 기다리기만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2년 동안 뜨뜨미지근 할 뿐, 무언가 먼저 다가오는 신호가 없었다. 그가 연천에서 살고 있던 때였는데, 돌곶이까지 왕복 세 시간의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나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고 하며 몇 번 만났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선한 미소를 보이며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가고, 폭포에도 가보고, 술도 마셨던 것 같은데 확 당기는 포즈를 취하지는 않는다.
이 남자 뭐지? 난 그냥 친구인가?
분명 뭐가 있는데? 왜 아무 말도 없지?..
말하면 들어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이기적인 발상이었는지. 왜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계속 불평하고 바라기만 한 건지. 나중에서야 항승씨가 말했다. 그때 나를 참 좋아했었는데, 차마 다가갈 수가 없었다고. 여러 이유로 망설여졌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항승씨에게 나는 여전히 깍쟁이 서울 아가씨였나 보다. 내 주위 사람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배꼽이 떠나가라 비웃을 텐데.. 나는 깍두기는 좋아해도 깍쟁이는 아닌데 말이다.
2009년 여름. 7일간의 내일로 기차여행 중, 무안에 들러 항승이와 만났다.
밥 얻어먹으러 들린 반나절이었지만 참 흥미롭고 즐거웠다. 그렇게 약 2년이 을왕리 바다 앞 횟집 음식처럼 밍숭 하게 흘러가고, 2011년 1월이 왔다. 이때부터 우리의 불꽃 튀는 밀당이 시작됐다. 대학원 1학년을 마치고 생각도 많아지고, 한숨도 많아지던 그때. 어딘가 떠나야 했다. 제주도에 가서 바람이라도 실컷 맞고 오자!!라고 생각하며 비행기 예약을 하던 중.. 항승씨도 비슷한 시기에 제주도 여행을 간다는 게 아닌가?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 항승씨와 비행기를 같이 타면 항공료가 반값이다!(장애인 동반할인이 가능하다)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가 먼저 제안했던 것 같다.
우리 같이 갈래? (정적..)
아니 아니, 비행기표 할인받고 싶어서.
비행기만 같이 타고
제주도에서는 각자 일정대로!! 콜?
그 뒤로 우린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비행기표를 끊었고, 여행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근데 생각해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아무리 친구라도 젊은 남자, 여자가 둘만 여행을 간다는 건.. 좀 깨름찍하지 않은가?! 게다가 제주도 2박 3일. 그래서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사실을 고했다. 물론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아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 니 미칬나? 이 가시나야!!!"
근데, 뭐. 난 어차피 다른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인지라, “친구끼린데 뭐 어때~”라는 쿨한 말을 남기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님께는 여러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간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는 날이 다가왔고, 난 작은 배낭 하나에 최소한의 짐만 구겨 넣고 운동화를 신고 가뿐하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항승이는 나를 보고 좀 놀란 눈빛이다. “왜 그래?” 하고 물어보니
아.. 난 네가 캐리어 끌고
선글라스 쓰고 올 줄 알았어.. 하하..
걷기 여행 가는데 웬 캐리어?! 난 이 가방에도 자리 남았는데? 항승씨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정말 서울깍쟁이였나 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길래 그랬을까.. 어쨌든, 그렇게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함께 우리의 2박 3일의 여행은 시작됐다. 공항에 도착해 간단히 렌트를 하고 일단 고픈 배를 채우러 성산일출봉 쪽의 해녀의 집으로 가서 전복죽을 먹었다. 그런데 여행은 시작됐는데 애매한 문제가 해결이 안 됐다. 항승이도 나도 일단 떠나고 보는 여행 스타일이라서 딱 항공권만 결제하고 숙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항승이는 지인 집에 가서 하룻밤 신세를 질 거라고 흘러가듯 말했는데 나는 어쩌지? 정 없으면 찜질방에 가지 뭐! 이 넓은 제주도에 나 한 몸 뉘일 곳 없을까.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전복죽을 후루룩 흡입하던 중 내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예약해놓은 제주도 숙소가 마침 내일인데 일정이 변경돼서 최소 할 것 같다고. 네가 저렴하게 써도 좋다고. 어머? 약 5만 원의 저렴한 가격에 엄청 좋은 콘도형 숙소라니 너무 좋아! 콜!! 하고 항승에게 전했다.
" 경아 언니가 숙소 저렴하게 넘겨준다는데, 같이 쓸래 "
그때 항승이는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앞에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여자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나를 유혹하는 건가?.. 내가 맘에 든다는 표시인가?
vs.
5만 원에 콘도?! 정말 싸다! 콜! 좋아!!!! 나도 좋다!!
뭐, 진실은 알 수 없다. 오로지 항승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있겠지. 그렇게 우리는 둘째 날 숙소를 같이 쓰기로 결정했고 개별여행이었던 제주여행은 뭔가 꼬여가고 있었다. 렌트한 차는 한 대. 숙소는 같이. 일정은 따로?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아니면.. 같이 움직여야 하나? 그럼.. 그거 진짜 같이 여행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첫째 날 식사를 마치고 김영갑 갤러리에 가서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제주도 사진들을 감상하고 항승의 지인을 나도 함께 만나게 됐다. 난 딱히 혼자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그냥 항승을 졸래졸래 따라다녔던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따로 여행할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인의 멋진 제주도 집도 구경하고, 나목도 식당에서 두툼한 돼지고기에 진한 순댓국도 한 그릇 비웠다. 서울깍쟁이인 난, 당연히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순댓국에 말아서 후루룩 다 먹었다.
어느덧 해가 져가고. 첫째 날의 숙소를 결정해야 하는데 영 애매한 상황이 또 왔다. 지인의 집으로 간다던 항승은 갈 기미가 없고, 나는 어째야 하나 멍- 하니 항승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때! 제주 지인이 근처에 좋은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주시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또 서로 잠시 바라보다가 콜을 외쳤다. 게스트하우스라면 남/여 방이 분리되어 있으니 민망한 상황을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같이 움직일 수 있으니 편하고!! 그렇게 게스트하우스에 첫날 짐을 풀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맞이방에 앉아서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뉘 영 뉘 영 걸어 다니는 고양이의 나른한 꼬리의 각도도, 주인 아주머님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유쾌한 입담도, 점잖게 깔린 제주도의 밝은 어둠도, 그리고 옆에 앉아서 이것저것 챙겨주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내주던 든든한 항승씨도. 모두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사랑스러웠다. 마치 오래된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항승씨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매력을 타고 난 사람 같았다. 그렇게 긴 이야기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주인 아주머님께서 우리를 한 방으로 안내하신다. 아직 방 공사가 다 안 끝나서 이 방을 같이 쓰라고. 어차피 6인실이니 각자 1층에 있는 침대를 쓰면 서로 안 보일 거라고, 그리고.. 원래 이런데 같이 있어야 더 친해지는 거라고..
문은 닫혔고, 우리의 입도 닫혔다... 물론 각자 다른 침대였지만.. ‘어쩌지? 그냥 공사가 덜 끝났어도 다른 방에 간다고 할까? 나가서 말씀을 드려야 하나?’라고 고민은 딱 5초 하고, 바로 가방을 풀기 시작했다. 고된 일정이 피곤하기도 했고, 뭐 항승씨가 야심한 밤이라고 해서 나를 무섭게 할 남자도 아닌 것 같아서 별 생각이 없었다. 샤워실에서 무방비상태로 젖은 머리를 털며 나오는 그를 마주하는 건.. 사실 조금 부끄러운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애매모호한 공기가 좋았다. 톡 건들면 빵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큰 풍선을 안고 있는 그 느낌. 근데 아무래도 나만 풍선을 안고 있던 것 같다. 항승씨는 젖은 머리를 툭툭 털더니 자기 침대에 가서 나오질 않는다.
' ... 아 이 남자는 나를 진짜 완전 세상에서 제일 편한 친구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래, 알았다!!....'
약간의 실망을 안고 항승씨 앞 침대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데. 제주도의 첫날밤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적어도 시원한 맥주 한 잔은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우리는 또 의기투합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벌떡 일어서서 우리는 다시 차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약 10분 거리에 있는 상가에서 간단히 맥주 한 병씩을 사고 돌아왔다. 그때까지 약 6년간 장롱면허를 고집하던 나에게 항승씨는 운전대를 주었고, 시속 10km로 가는 거북이 같은 나의 운전 실력을 옆에서 천천히 지켜봐 줬다. 2박 3일간 내가 간간히 운전연습을 할 때, 항승씨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먼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간섭하지도 않았다. 일단 지켜봐 준다. 하지만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에게 신경을 써주고 있다. 이런 세심한 부분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첫째 날 밤은 그렇게 맥주 한 잔과 함께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끝났다. 맞다. 끝났다.
다음날 눈을 떴는데, 제주도에 근 10년 만에 엄청난 눈이 왔다. 정말 무릎까지 눈이 푹푹 들어갈 정도로 많은 양이 눈이 내렸다. 스노체인도 없이 정말 살살 기어서 겨우겨우 큰길로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세상을 꽤 오랜 시간을 들여 통과했다. 제주도에서, 이렇게 엄청난 눈 속에서, 옆자리엔 항승씨가 운전을 하고 있고, 나는 마냥 좋다고 웃고 있고. 일상이 아닌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몽클한 감정이 참 좋았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있는 항승씨와 주고받는 실없는 대화들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를 좀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런 기운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 항승씨와 주고받던 나 혼자만의 밀당도 재밌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드라이브를 하다 잠시 멈춰 바닷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약 3시간 정도 쉬지 않고 걸었던 것 같다. 새로운 곳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내가 꽤 빠른 걸음을 유지했기에 중간중간 항승씨가 힘겨워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나의 마음속에는 참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 아, 항승씨는 빨리 걷기 힘들구나. 나는 걸음이 빠른데 어쩌지?.. 만약 우리가 연인이 된다면, 함께 걷는 데이트는 할 수 없는 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항승씨는 의족을 사용하기 때문에 빨리 걸을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나의 걸음이 지나치게 빠르고 체력이 넘친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남의 단점만 보이고 나의 단점은 보이지 않는 상태. 항승씨를 만나기 전에는 난 그런 상태의 사람이었다. 참 부끄럽다. 그렇게 중문 올레길을 한참을 걸었다. 어느새 해가 졌고, 우리는 이제 첫째 날 밤 보다 더 멜랑꼴리 한 둘째 날 밤을 맞이할 시간에 가까이 다가갔다.
콘도에 짐을 내려놓고, 서로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저녁식사 이야기가 나왔다. 회를 먹고 싶은데 가난한 여행객이었기에 횟집은 못 가겠고.. 수산시장에 가서 횟감을 사서 다시 콘도로 돌아왔다. 눈이 어찌나 많이 오던지 왕복 2시간의 거리에 약 10건의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그 미끄러운 눈길에서 항승씨는 나를 옆에 태우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의족에 한 팔이지만, 그는 정말 베스트 드라이버다. 그렇게 우리는 한라산과 맥주를 앞에 두고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꽉 채운 1박 2일을 함께 있었지만 항승씨는 나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영 없는 것 같았다. ‘정말 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나 혼자 결론을 내고 정말 친구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냈다. 잔잔한 바닷가 앞에서 한라산 한 잔, 맥주 한 잔을 서로 기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랑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는 나의 고해성사가 시작됐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난 참 사랑에 서툴렀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귀라고는 사탕으로 바꿔 먹은 상태였고, 나의 촉수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향해있었다. 늘 나의 이야기만 하면서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냐고 윽박질렀다. 참 못났다. 아주 못났다.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다 그려놓고 상대방이 그 안에 들어와 마치 역할놀이를 해주길 원했던 것 같다. 관계는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몰랐다. 그런 이야기들을 막 쏟아부었고, 항승씨는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며 공감해주었다. 어떤 답을 주거나, 정답을 찾아내려 나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냥 나의 감정들을 공감해주었다. 그때 주고받았던 대화의 내용들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의 그 분위기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밤. 난 항승씨를 꼭 잡아야겠다고 확신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먼저 움직일 용기는 없었다. 서울깍쟁이 아가씨는 여전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다가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새벽 3시까지 이어지던 이야기들을 마무리하고 침실로 들어왔다. 2인용 침대 하나였기에 영 애매하네..라고 알딸딸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 그가 이불을 하나 가지고 바닥에 자리를 깔았다. 그가 바닥에 자리를 깐 이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니, 등을 내 쪽으로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같은 숙소에서 함께 밤을 보낸다는 게 사실 엄청나게 짜릿한 일이며, 어머니께서 아신다면 나의 등에 찰지게 손바닥 스매싱을 날려주실 일인데.. 그는 내 쪽으로는 정말 털끝 하나 넘어오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으니 뭐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다’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뭔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살짝 고개를 돌려 보니 그가 의족을 빼고 있다. 첫째 날 밤에도 의족을 뺀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난 살짝 긴장했다. 내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그의 장애를 눈앞에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난 그가 의족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냥 나와 똑같은 비장애인처럼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럼 나도 상관하지 않고 연애할 텐데..라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의족을 빼내자 그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 바로 아래에서 잘려있었다. 그의 팔은 그전에도 눈으로 볼 수 있었기에 별로 상관이 없었는데, 다리는 달랐다. 한쪽 다리가 없다는 것.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절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불편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짧게 잘린 다리로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불은 꺼져있었지만 새벽 어스름에 서로의 실루엣은 다 확인할 수 있었다.
징그럽지 않아?
한참 동안이나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해야 항승씨가 상처 받지 않을까, 아니 상처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처가 아닐까?’ 어두움 속에서도 나의 표정은 분명 항승씨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때가 새벽 3시 30분.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전까진 한라산을 머금으며 나의 이야기만 했다면, 이제 어스름한 새벽 기운을 머금고 항승씨가 자기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고를 당하게 된 상황, 병원생활, 가족들의 이야기, 대안학교 생활 등.. 그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나는 사실 손끝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5살의 아이가 교통사고로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항승씨의 표정과 말투, 그의 담담한 분위기는 나에게 마치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난 이제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뭔가 복잡해졌다. 우리의 이야기는 결국 새벽 5시까지 이어졌고, 내가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이불을 덮은
시각은 5시 12분이었다. 마치 1000피스의 퍼즐을 내 두 손에 가득 담아 들고 이불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걸 다 맞추고 나면 결론이 날 것 같은데. 도저히 맞출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나의 용기 부족이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됐고, 우리는 뻘쭘하게 아침밥을 먹었다.
그때 난 결심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이랑 좀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아직 그의 장애를 다 감싸 안을 용기는 없지만, 일단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는 생각이다. 부끄러울 정도로. 내가 왜 항승씨의 장애를 다 감싸 안아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연인이 된다면 마치 내가 그의 활동보조인이라도 돼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셋째 날 아침,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집에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지하철 타면 금방이라고 말하니 그는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쿨하게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버려두고?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여행의 여운을 좀 곱씹는.. 그런 과정은 없는 거야?.. 나.. 데려다주는 건.. 오늘은 없어?.. 마치 2년 전의 소개팅 같은 헤어짐이었다. 그는 헤어질 때 원래 이렇게 쿨한 건지, 내가 헤어질 때 원래 쿨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2박 3일의 여행 후에 내가 싫어진 걸까?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아무 일 없이, 깊이는 있지만 서로 간의 거리는 여전히 애매하게 남겨둔 채 끝났다. 혈기왕성한 남녀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는 걸까, 기뻐해야 하는 걸까, 슬퍼해야 하는 걸까..? ‘나는 역시 김칫국부터 마시는 여자구나..’라는 반성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애매모호한 여행 후, 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일기를 남겼다.
여행 갔다 온 후로
오만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어머나. 그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