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우리 아이, 다른 길도 있다.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by 마음한조각

막내는 태어날 때부터 누나들과는 조금 달랐다. 첫 발화도 늦었다. 몇 개월 차이일 뿐인데도, 위의 두 아이를 이미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쯤이면 옹알이하고 말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둥이로 태어나서 그런 걸까? 임신 때 주말부부로 지내며 내가 받은 스트레스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를 탓하는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자책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더 잘 살피고, 잘 자라도록 도와주자.”

그날 이후 아이의 발달 단계를 더욱 세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운동 능력이나 지능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영유아 검진도 빠짐없이 다니며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치료의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살 때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걱정은 깊어졌다. 또래들은 유창하게 말을 이어가는데, 우리 아이는 몇 마디 단어를 겨우 연결하는 수준이었다. 발음도 부정확했다.

“남자아이는 원래 조금 느려요.”
주변의 위로를 믿고 싶었지만,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잦아졌다.

“어머니, 오늘 친구들과 조금 다툼이 있었어요.”

전화 너머로 들리는 교사의 말에 고개 숙여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아이는 말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느새 ‘말 못 하는 아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 말이 얼마나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


5살이 되어도 발음이 무척 부정확하여 언어발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또래보다 6개월 정도 느린 언어 발달. 발음 교정과 언어치료를 권유받았다. 하지만 아이는 강하게 거부했다. 불안한 상태에서 억지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직접 도와주기로 했다. 관련 책을 읽고, 발음을 교정하며 천천히 연습했다.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해오던 어느 날, 아이가 또박또박 말했다.
“배고파요.”

그 한마디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날 저녁엔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식탁을 가득 채웠다. (그전엔 늘 “배보파요”라고 했었다.)


7살이 되어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글자를 읽는 것을 유난히 어려워했다. 여러 번 반복해도 기억하는 것에 무척 어려움을 느꼈다. 단순히 느린 정도가 아니었다. 혹시 난독증일까? 의심이 들었다. 검사를 권했지만, 아이는 심하게 거부했다. 그때 나는 억지로 끌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조금은 기다려주는 것이 맞다고 믿었다.


그리고 어느새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다가왔다. ‘조금 느린 우리 아이가 공교육 안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가장 두려웠던 건 아이가 상처받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누구나 가는 길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다른 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병설유치원에서 보냈던 1년. 낯선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며 밝게 지내던 모습이었다.
환경이 달라졌을 때에 잘 적응하며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모든 아이는 인정받고 칭찬받길 원한다.

우리 아이도 그렇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결심했다.


세상의 속도에 아이를 맞추기보다, 아이의 속도에 세상을 맞춰보기로.

공교육이 아닌, 아이의 걸음에 맞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1461038034948.jpg 태어나는 것만 빠르고 모든 게 느렸던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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