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의 일기
1.
호가 찾아왔어. 왜 그랬냐고 묻더라. 그제야 깨달았어. 네가 죽었다는걸. 네가 죽음을 택한 이유 말이야. 누군가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었잖아.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는데 그의 손톱이 보였어. 시선은 나를 보고 있는데 손가락에 온 신경을 쏟고 있더라. 나를 마주하는 내내 살갗을 뜯었어. 벗겨낸 거스러미 때문에 손톱 주변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멈추지 않았지.
마치 너처럼.
더는 너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이 세상에 없는 네가 안타까워서, 내가 외로워서. 솔직하게 말했어. 사랑해서 그랬다고. 눈에 띄게 떨리던 손끝이 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어. 한걸음 물러서는 나를 응시하던 눈빛이 어땠는지 알아? 피 맛에 도취한 짐승 같았어. 걸쇠가 없었더라면 당장에라도 물어 뜯겼을지 몰라.
그래, 나의 사랑과 너의 죽음이 호를 짐승으로 만들었던 거야.
실망스러웠어. 근원에 닿지 못하고 애처롭게 무너지는 호가, 호의 눈동자에 담긴 네가, 슬퍼하는 내가. 기대하고 있었나 봐. 나를 이해해줄 유일한 사람이 호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너를 유일하게 공유하던 사이었잖아. 그런데 내 마음을 이다지도 모르다니…. 역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소라야, 나는 정말이지 사랑했어.
말했잖아. 사랑은 삶을 뒤섞는 거라고.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서로의 흔적을 흠뻑 뒤집어쓴 채로 네가 나로, 내가 너로 불리는 그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거야. 펄펄 끓다 못해 서로 엉겨 녹아내리던 순간을 기억해. 나의 등 뒤에 매달려 얼굴을 파묻던 너를, 온전한 너의 숨결을, 숨결에 실린 고통을. 너의 눈물, 부정, 비난, 악의가 힘들었지만 결국에는 용서했어.
네가 비로소 깨닫는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 곧 완벽한 하나가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 예민해져 가는 네 모습이 힘겨울 때도 있었어. 나는 널 버리지 않았어. 네가 쥔 비수가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었어도 나는 너를 끝까지 움켜쥐었어. 내가 말했잖아. 무엇이든 버려진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수명을 다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다는 것.
그건 살 가치가 없으니 죽으라는 말과 같은 뜻이니까.
우리의 찬란했던 시작을 잊은 네가 가여웠어. 기억해봐. 너를 열렬히 사랑했던 나를. 봉천동의 어느 골목 어귀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던 그때를. 서로의 얼굴에 찌든 고단함을 알아봤잖아. 나는 라이터를 숨겼고, 너는 선뜻 불을 빌려줬지. 지린내가 진동하는 시멘트벽에 기대어 서 있는 네가 보이더라. 부패한 음식 찌꺼기가 눌어붙은 쓰레기봉투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네가. 그때 넌 모든 걸 들켰어. 네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
너의 삶이 버려진 음식물만큼이나 비참하고 악취를 풍긴다는 걸.
그래서 선택한 거야. 쉬지 않고 무얼 마시고, 분노했다가, 체념했다가, 슬퍼했다가,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너를 보는 것이 재밌었거든. 너와 함께 한산한 밤거리를 함께 걷는 것도 좋았어. 네가 조금 앞에, 내가 조금 뒤로 걸어. 너의 불행이 나에게까지 흘러들어 와. 나는 놀라지도, 동정하지도, 연민을 품지도 않았어. 잠시간 너의 어깨를 토닥이는 것만으로도, 너에게 의미가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구원은 절망에서 시작되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