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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y 21. 2024

도서관에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은 원래 <세습 중산층 사회>라는 책을 읽고 난 후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들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결국 책을 끝까지 다 못 읽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무엇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와중에 좀처럼 집중이 안 돼서 결국 마지막에는 완전히 다른 걸 하다가 돌아왔고, 완전 용두사미식 도서관 방문이 된 듯한 기분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이미지들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시각적 자극으로만 존재하는 그 이미지는 상상력을 통해 부여된 관념과 함께 수많은 이미지의 연속이 돼서 망상이라는 영상이 되고, 그 위에 청각적, 촉각적 상상이 더해진다. 그 가상의 시공간에 홀린 채 한참을 멍 때리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가 읽고 있던 페이지의 무슨 문단이었는지 까먹고, 다시 집중해서 글을 읽다가 또다시 그런 생각들에 정신이 팔리고,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똑같은 상상 속에서 길을 잃어 그 안을 계속해서 헤매고 있는 건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도서관에 있던 동안 한 건 별로 없는데, 나갈 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난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한 가지 일을 하던 와중에도 신경은 두 곳에 팔려있어서 체감상 시간이 더 빨리 지난 것 같다. 


내 머릿속을 떠돌던 이미지에 대한 생각들에는, 분명 그것들에 대한 갈망이 반영되어 있을 거다. 그러나 대개 관념으로만 존재해 실체가 없는, 정작 실체가 존재하더라도 상상과의 분명한 괴리로 인해 정작 그걸 손에 넣게 되더라도 어느 순간 맹목적으로 그것들을 얻기 위한 노력들의 허무함을 느끼고, 궁극적으로 그게 뭘 위한 걸까라는 단순한 질문 앞에 모든 의미가 무너져버릴 노릇이었다. 


도서관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지난 학기의 고민거리가 됐던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했던 해결책들에 평가해 보고, 이번 방학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다. 점점 늘어나는 침대 위와 방 안에서의 시간들, 타의에 의한 감금동안 되찾았던 자유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금이 사라졌을 때 다시 빼앗긴 듯한 느낌, 마치 한겨울 서화면의 좁은 산길을 달리던 전차 내부처럼 차갑게 얼어붙어버린 듯한 감정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알지만, 정작 그 답 이후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비겁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찾아오는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과 무력감은 견디기 쉽지 않지만, 흔히 내적 성장이라고 일컫는 변화를 위해서는 마땅히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사실 어떤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한다고 그럴듯한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는데, 실제로 오는 길 동안 기억나는 건 그 생각의 과정이나 그로 인한 결론보다는 물가에서 쉬고 있던 왜가리뿐이다. 그렇게 집에 왔을 때 내린 일시적인 결론은, 이 글을 처음 썼을 때 했던 결심으로 돌아와, 오늘을 최대한 잘 살아보고, 내일은 그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불어넣어 보자. 비록 좀 늦은 오전이었지만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갔고, 책을 읽었고, 별로 의미 없긴 하지만 나름 즐거운 생각에 푹 빠져있었고, 돌아올 때는 갔던 길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길로 돌아서 “걸어" 갔으니, 집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그럴듯한 하루의 한 바퀴를 완성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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