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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Aug 05. 2024

집 없는 하루

SF에서 버클리 통학해본 소감 + 하루 일상

어제 무브아웃을 한 이후로 SF의 친구집에서 통학하는데 1시간이 걸려 하는 수 없이 수업 시작 2시간 전에 일어나 챙기고 나가야 한다. 오늘은 하필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15분이나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도착한 이후 열차가 바로 와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동안 좀처럼 체감하지 못했던 점이라면, 캠퍼스의 동쪽 방향을 따라 경사가 져있어 올라가는게 생각보다 힘들다. 주말에 친구가 캠퍼스 투어를 오면서 학교 구조가 상당히 잘못되어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했다. 경사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평지에 보도블럭도 깔끔한 그의 학교에 비하면 여기는 트레킹 코스 같은 느낌이랄까. 아침부터 걷느라 이마에 땀이 맺혔다.


오늘은 목요일이라 수학 이외에는 따로 일정이 없었는데, 끝나자마자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돌아와 이사갈 집에 넣을 가구(침대, 책상 등)를 찾아보다 복습을 좀 했다. 12시 반에서 5시 사이에 4시간 동안 집중했던 것 같은데, 집중력이 부족한 탓인지 수학 공부는 OH에 가서도 좀처럼 갈무리하지 못했다. 사실 그런걸 생각하면 이성적으로 영화를 보러 가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끝나고 돌아와서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또 미래의 자신에게 미루는 안일함을 떨쳐내지 못한다. 지금만 봐도 돌아오자마자 친구에게 가구 관련해 조언 좀 얻다가 아직 시작도 안 한 글을 쓰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수학 공부를 할 것 같진 않다. 이렇게 오늘 마무리 못한 건 또 내일 아침의 나에게 미루고, 그렇게 아침 8시에 겨우 일어나 시간 맞추기도 벅찬 나는 또 오후의 나에게 이 일을 맡기겠지.


학교 일과를 다 마치고 SF로 돌아가기 전 잠깐 다운타운에 있는 Half Price Book이라는 중고서점에 들렀다. 평소에 그냥 지나치곤 했다가 마침 시간이 좀 남아 들어가 구경을 했다. 세이버매트릭스 관련 책이 있나 찾아봤지만 단 한 권도 없었는데, 다른 서점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책을 살 수 있는 공간은 처음이다 책뿐만 아니라 여러 앨범이나 LP판, 그리고 닌텐도 스위치 같은 온갖 잡동사니들도 팔고 있었는데, 다운타운 쪽에 사는 건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런 곳에 좀 자주 와봐야지 다짐하면서 영화관이 있는 Powell Street로 향했다.


영화가 8시인줄 알았다. 7시 반쯤에 미리 도착해서 30-40분 정도 글을 쓰다가 여유롭게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거의 다 도착해서 티켓을 보니 7시 15분 시작, 현재 시가 7시 30분, 재수 없으면 이미 영화가 시작했을 수도 있었는데, 어차피 이미 늦은 거 굳이 급하게 가지 말고 다음에 한 번 더 본다는 마인드로(멤버십이 있으면 생기는 큰 장점들 중 하나다) 여유롭게 갔고, 운좋게 도착해서도 5분 정도 트레일러가 더 나오다가 영화가 시작했다. 


원래 어지간한 영화를 보면서도 얼마나 했나 도중에 한 번 쯤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하는데, 데드풀과 울버린은 애당초 지루할 틈 자체가 거의 없었고, 가끔 좀 유치하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전개 자체가 단순해서 그냥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멀티버스 사가에 접어들면서 너무나도 복잡해진 세계관 설정 때문에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왜 이런건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 그정도 외에는 이전에 짧게 등장하고 폐기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여러 장면들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이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영화에 관해선 여기까지 말하겠다. 어차피 조만간 친구랑 한 번 더 보러 갈 것 같으니.


오늘 하루 느낀 걸 이야기해보자면, 통학하는데 1시간 걸리는 건 확실히 계속하기는 무리지만, 집과 학교 사이에 적당한 먼 거리를 두는 삶이라는게 적당한 체력 수준만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매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뭔가를 해야 할 시간에 집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나의 습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통학하는데 20-30분 정도 걸리는 다음 집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조금은 기대가 된다. 결국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떤 의미를 만드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는 일이지만, 주변 상황에서의 변화가 나의 원동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의 시간을 좀 더 희망찬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오늘 가구를 찾아보면서 느낀 설렘도 약간 그런 맥락이 작용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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