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인스타 BIO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한 순간의 결심으로부터 시작된 글쓰기, 살면서 한 가지 일을 이 정도로 꾸준히 해온 경험이 거의 없던지라 나름 나만의 자랑거리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라면 그 당시 내가 마주해 나가겠다고 다짐한 삶의 문제들이 형태만 조금씩 바뀌면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거다. 물론 그렇게 쉽게 해결될 거라면 애당초 글쓰기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는 단순히 글을 오랫동안 쓰는 것만으로는 가져올 수 없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글 쓰는 3년 동안 내가 이룬 건 뭘까. 그때에 비해 살은 한 10kg 빠졌지만 여전히 체력도 그렇고 어딘가 좋은 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갈망한 건지 안 한 건지 이젠 구별조차 안 되는 연애는 학기 들면서 꿈도 못 꾸고 있고, 그 기간 동안 인생에서 뭔가 그럴듯한 기억의 흔적이 남지 않은 채 나이만 먹어간다. 젠장, 이래선 내가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산 것 같잖아. 그렇다고 정작 당장 누군가가 나에게 글을 쓰면서 해나간 것, 이룬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지만. 시간 좀 남을 때 책상에 앉아 종이 뜯고 40분에서 1시간 정도 중간에 딴짓 조금씩 하면서 글 쓴 거? 거기다가 군대도 갔다 왔고, 여행도 좀 다녔고, 이후에는 학교도 좀 다녔습니다. 열정적이진 않았습니다, KCTC정도 빼면요. 연애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알 것 같은데 그냥 말 안 할래요. 그동안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라면 이번 학기에 밀플랜 끊은 것 정도랑 별로 안 친했던 사람한테 먼저 인스타 팔로우 걸어본 것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 나아가지는 못했지만요.
인생이 마치 상수 없이 변수만 늘어나는 다차방정식처럼 문제가 너무나 많다. 그런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때론 매번 마주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에 짓눌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3년간 이어온 글쓰기는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사소한 문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생각하는 중요한 삶의 테마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때론 적당히 안고 살아가는 건데, 그 생각을 떠올리게 한 글쓰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에 대한 생각을 좀처럼 멈추지 못한다. 어려운 문제다. 3년 동안 이어온 글쓰기는 어느새 나를 정의하는 여러 특성들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인생의 길을 가기 위해선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글쓰기가 나를 미지의 영역으로 데려다주는 편리함 따위는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꾸 글쓰기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건 본질적으로 내 삶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글쓰기에 직접적으로 닿아있고, 최근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꽤나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쌓인 일들 때문에 정신없는 시기에 매일 쓰기는 쉽지 않아 숫자가 올라가는 속도는 느리지만, 최소한 글을 통해 인생의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게 됐다는 게 가장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동시에 내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면서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더 나은 행동인지 여러 관점에서 생각 정도는 할 수 있고, 그걸 통해 주위 사람들과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열망 자체가 3년 전에 비해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애당초 그때는 입대 전이라 사람이 독기에 가득 차있었다), 나름대로 꾸준히 유지해 온 관성을 통해 망가지지는 않을 정도로 해낼 수는 있다. 그 당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데, 글은 분명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기에 많이 쓸수록 난 스스로를 더 많이 돌아보고 성찰한 사람이 되어간다. 나음의 정의가 온전히 그 안에 있지는 않겠지만, 지난 3년간 이어온 것처럼 다가오는 시간 속 기억들을 자연스럽게 망각으로 몰아넣지 않고 붙잡아가는 나의 노력은 느리고, 또 불연속적이더라도 어떻게든 계속해나갈 거라고 다짐한다.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지금까지 지나온 3년을 넘어 다음 3년이 지났을 때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삶의 발자취가 남아있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