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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an 25. 2023

회고록: 완등하지 못한 대둔산

완등: 목표한 산의 정상 지점에 모두 다 오름 (출처: 네이버 사전)

군 생활 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가 여럿 있었지만, 유격 훈련 때 한 40km 향로봉 등반 행군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당시 가뜩이나 4일 동안 몸을 굴려놓은 마당에,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등산로는 발바닥을 강하게 쑤셨고, 경사가 워낙 높아 올라갈 때는 종아리가, 내려올 때는 무릎이 엄청나게 아팠다. 게다가 8월 한여름이었는데도, 정상인 향로봉의 기온이 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 힘들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올 때는 일출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태백산맥의 절경에 압도돼 앞을 보지도 않은 채 걸었다. 특히 향로봉 전망대에서 일출을 본 순간, 산 능선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만 해도 부끄러워 하늘을 붉게 물들였던 태양이, 능선을 넘자마자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당당하고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의 위엄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때 이후로 등산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생긴 건지, 휴가 때 한라산 등반을 해볼까 하다 결국 자전거 여행을 갔다. 비록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내 인생 최고의 여행 중 하나였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한라산에 올라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래서 전역 후 계획 중 하나로 한국의 아름다운 산을 찾아 등반하려고 인터넷에서 오를 만한 산을 찾아보다가 보인 대둔산이라는 익숙한 이름에 옛 생각에 잠겼다.


10살 때였다. 당시 아빠가 주말에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오면 가족끼리 자주 등산을 하러 가고는 했다. 군산 본가의 뒷산이 우리 가문 소유이어서 소싯적에 워낙 많이 오갔을 테니, 아빠에게는 산을 오르는 게 즐거운 일상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실제로 집 근처에 있는 황방산을 꽤 자주 가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겸 추억도 쌓을 목적으로 데려간 산이, 난 너무나도 싫었다. 그 당시 밖에서 뛰어노는 걸 정말 좋아했던 나였지만, 유독 등산만큼은 죽도록 하기 싫었다. 같은 운동임에도 정적인 순간이 대부분이었기에 당시 활동적인 나에겐 힘은 힘대로 들고 재미도 없는 최악의 활동이었다. 그래도 아빠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면, 눈 딱 감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려고 했을 텐데, 그때 그러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아닌 후회가 남는 부분이다.


내 기억으로 대둔산이 가족끼리 갔던 등산 중 사실상 마지막이었을거다. 그 이후로는 아빠가 해외 파견을 가게 되면서 1년에 2,3번 정도만 한국에 왔기 때문에 굳이 등산보다는 해외여행을 다니고는 했고, 그 후로는 입시랑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지면서 등산이란 걸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사실 시간적 여유는 꽤 있었지만).


짤막한 기억이 남아있다. 어느 정도 올라가다 정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점에 구름다리가 있었다. 가뜩이나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50m 남짓 되는 짧은 다리 아래 낭떠러지와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인파를 본 순간 잘못하면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고, 어떻게 하면 저 다리를 건너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무서워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전까지는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는 어찌어찌 갔는데, 구름다리를 앞에 두고 느낀 죽음의 공포 앞에서, 당장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게 가족끼리의 추억을 앞섰고, 결국 그곳에서 발걸음을 돌려 하산해 구름다리 너머로 보인다는 대둔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여러 변수가 작용해 이제는 스스로 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등산을 가기 싫어했을 때 40대 초반이었던 아빠는 어느덧 나이를 먹어 55살이 됐다. 게다가 아빠는 계속 중동에 있을 거고, 난 올해 미국으로 떠난다. 이젠 같이 산을 오르고 싶어도 육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져버렸다. 마치 엇갈리는 급행열차 같은 야속한 운명이다. 후회를 하자니 그때 내가 이렇게 멀리까지 생각하기엔 너무 어렸고, 막상 되돌리기에는 저 멀리 떠나가는 KTX를 붙잡으려고 전력으로 달리는 것처럼 미련하게만 느껴진다(실제로 작년 6월에 타려고 했던 기차가 떠날 때 한 번 뛰어봤는데, 영화 속 장면 같은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올해 꼭 대둔산에 갈 거다. 13년 전 발걸음을 돌렸던 구름다리 앞에 두고 온 대둔산 등반이라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아빠에게는 등산이었던 것처럼, 언젠가 내가 자식과의 추억을 쌓을 기회를 만들고 싶더라도 그걸 정말 별거 아닌 이유로(그 사람에게는 10년 사귄 연인의 이별 사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겠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자식의 태도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서 보니 어렸을 적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을 그렇게 허무하게 흘려보냈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 속에서 앞으로의 삶을 결정하는 새로운 결의가 탄생한다. 어찌 보면 반쪽짜리 추억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나에게 준 깨달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불완전해 보이는 것에서 언젠가 더 중요한 걸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미래의 내가 여타 평범한 부모처럼 그런 상황에서 조바심을 느낀다면, 그 불완전한 순간조차 언젠가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소설집의 한 챕터 정도는 차지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여유롭게 지켜봐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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