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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an 29. 2023

[군대 독후감]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전역 후 해외여행을 준비하면서 얻은 깨달음

전역 이후에 특별하게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하던 와중에, 3년 동안 미뤄온 해외여행을 본격적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인제라는 협소한 공간을(사실 인제는 1,600 제곱킬로미터로 서울의 2.5배 되는 엄청난 면적을 자랑한다)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나에게 다시 찾아온 자유를 한껏 만끽하고 싶어 나름 3,4달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즉흥적인 여행에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몇 안 되는 기회인 만큼 가능한 한 제대로 준비해서 비록 제한된 짧은 시간이더라도 마음껏 즐기며 누리고 싶었다.


여행 가이드북뿐 아니라, 여행에 대한 유명 작가들의 생각이 궁금해져 여형 관련 에세이도 찾아 읽었다. 그중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여러 번 인용해 한 번쯤 읽어보고 싶어 구매했고, 여기서 다루는 책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일본 작가로 꼽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 모음집인데, 휴가 중 만난 친구의, 하루키의 진가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말에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하는 호기심이 들어 일부러 시간을 내 휴가 복귀날 (지금은 폐업한) 버스터미널 앞 알라딘에서 사 왔다.


보스턴(유일하게 2번 간 곳이다)에서 구마모토까지, 250페이지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에 책에 아홉 곳을 다니며 얻은 느낌, 떠오르는 생각, 여행지에 관한 사소한 정보까지, 다양한 것들을 10개 장에 나눠 담아낸다. 여행지의 꼭 가봐야 할 명소 등 관광 정보에 관한 것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돌아다니며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야기한다. 책에 나오는 장소 대부분이 과거 하루키가 젊고 무명인 시절 한 번 다녀본 곳인지라, 과거와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추억의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을 온전하게 느끼는 듯한 장면들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하루키의 여행기를 보며, 이전에 한 번 가본 도시를 다시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대부분 해소됐다. 지금 가지고 있는 여행 계획에서 도하를 제외하면 모든 곳은 이미 한 번 갔다 와본 곳이다. 그러나 같은 물리적 위치에 있더라도 시간의 흐름이라는 절대적인 현상에 의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곳을 다니는 나라는 인간조차 고정된 변수가 아니기에 완전히 다른 여행을 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게다가 지금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여행의 기억들을, 다시 한번 똑같은 장소에 가서 어렴풋이 떠올리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개인적으로 하루키라는 유명 작가가 썼기에 기대했던 건데, 일반적으로 인터넷에서 흔하게 접하는 셀럽(유튜버 등)이나 일반 블로그들의 여행기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세밀한 풍경 묘사와 감정 표현을 보며 글쓰기에 있어 여러 가지 배움을 얻는다. 특히 그가 여행지에서 깨달은 여러 인생의 교훈을 이야기할 때 그의 문장력은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내가 가장 좋다고 느꼈던, 하루키가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보며 적은 문단을 인용한 거다.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아쉽게도 이전에 나와있는 풍경 묘사는 생략한다.



“[아이슬란드의] 그런 풍경들은 사진에 담기조차 꺼려진다. 그곳의 아름다움은 사진의 프레임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너른 대지와, 거의 영원에 가닿을 듯한 정직과, 깊은 바다 내음과, 거칠 것 없는 지표면을 휩쓰는 바람과, 그곳에 흐르는 독특한 시간성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이다. 그곳의 빛깔은 고대부터 줄곧 비바람을 맞아오면서 완성된 것이다. 그곳은 또한 날씨의 변화나 조수 간만, 태양의 이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카메라 렌즈로 도려내버리면, 혹은 과학적인 색채의 조합으로 번역해버리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리라. 그곳에 있던 마음 같은 것이 전부 사라져버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오래 제 눈으로 바라보고, 뇌리 깊숙이 새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덧없는 기억의 서랍에 담아 직접 어딘가로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유려한 표현을 통해, 여타 여행기와 달리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그다지 많지 않아, 머릿속에 여행지의 모습을 그리기 쉽지 않았던 아쉬움을 달랜다. 책을 읽고 나서 이전에 이미 한, 두 번은 가본 도쿄와 오사카에 다시 가는 것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책의 마무리 부분에서 하루키의 말을 통해, 여행은 항상 제대로 준비해놔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지금까지의 생각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안은 채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용기를 얻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라오스에는 뭐가 있다는 걸까? 그런데 막상 가보니 라오스에는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죠. 여행이란 그런 겁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겁니다.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그런 게 있었다니’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여행에서 우린 낯선 것들로부터 새로움을, 새로움으로부터 때론 아이러니하게도 공통된 것으로부터 나오는 익숙함을 발견한다. 생활관, 도서관, 그리고 사지방 이 세 곳 만을 오가며 경험의 새로운 경우의 수라고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병영생활의 삼진법에서 벗어나 낯선 것들을 마주할 때 찾아오는 당황과, 그로 인한 긴장을 느끼고 싶다. 삶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헤매기 위해, 나는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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