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쓰는 복학생 Feb 02. 2023

일상의 변화

전역까지 74일, 자투리 시간에 사지방을 가지 못하게 되다


규정된 일과시간 외에 사이버지식 정보방(사지방) 사용 금지, 점심시간, 체력단련 시간도 일과 시간으로 취급되기에 아침 먹고 난 후 30분, 개인정비 시간, 점호 이후 연등 시간을 제외하면 쓸 수 없게 됐다. 사실 허용된 시간만 해도 최대 4-5시간은 되기 때문에 시간적인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에 불편함 느껴지는 이유는 근 몇 개월간 생긴 일련의 변화들이 내 일상을 침범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규정이라는 정당성이 존재하기에, 내가 저항할 여지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규정, 규정, 또 규정… 규정이라는 미명하에 내 숨통을 옥죄는 듯한 통제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화가 나지만 감정대로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는 강자의 특권이라는 걸 잘 알기에 그저 글로 내 생각을 남길 뿐이다.

결국 찾아온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작업이나 일과가 끝나고 남는 시간, 점심 먹고 난 후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사지방 안쪽 구석 자리에 앉아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며 누리던 소확행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이곳에서의 생활에서의 낙이 되어주었던 일상이 하나하나 사라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이곳에선 당연한 거니까. 정당한 규정이자 그에 따른 명령이니까. 이게 옳게 된 군대니까. 

남은 74일 동안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이 또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게 약자니까. 힘이 없을수록 자신에게 닥쳐온 상황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으니까.

구체적으로 내가 왜 군대가 그리도 싫어졌는지 생각해 봤다. 언젠가부터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변화를 강요하고, 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요구를 정당성으로 무장시켜 오히려 당당하다. 애당초 군대에서 18개월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쓰는, 군대가 일상이 되도록 만든 것 자체가 가치적으로(체제의 우월성으로서 강조되는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정당하지 않은데, 우선 끌려온 거 우리에게 그것에 맞는 몸과 마음가짐을 요구한다. 어떤 변화가 생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그런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내 역할을 다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나갈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규정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편법과 꼼수로 이익을 챙길 수 있을까, 소위 꿀을 빨 수 있을까 고민한다. 군대에서의 모든 일이 내 관심 밖이다.

예전에는 법과 규칙이 모든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강제 징병이라는 합법적 폭력의 현장에서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점점 그 믿음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것들을 맹신한 채 틀 안에 갇히는 건 사이버 광신도와 다름없다고 여길 만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합리성의 폭력 

합리와 폭력은 양극단에 존재한다는 과거 나의 생각은 완전히 버렸다. 애당초 합리와 비합리의 기준은 집단이 정하고, 그 과정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니까. 집단의 합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폭력이 되고, 그 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비합리가 생겨난다. 군대에서 권력 구조상 하급자에 속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군인으로서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부여되는 모든 형태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일관적인 문화 없이 윗사람에 따라 급격히 달라지는 상황에 맞게 변화해야 하며, 존중이나 이해가 결여된 듯한 온갖 발언에도 정당하게 반박하지 못한 채 전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다. 나에게는 그 똑똑한 폭력에 대항할 힘도, 지식도 부족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도 보지 않는 나만의 글 세계에서, 작가라는 가면을 쓰고 신세 한탄이나 할 뿐이다. 예전에는 자기 이름을 안 밝히고 무작정 마음의 편지를 쓰는 사람들을 일종의 겁쟁이 취급하고는 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앞에서 말할 용기는 없고, 그저 간부들이 안 보는 사이에 글이나 써재끼는 나도 좀 비겁한 것 같다. 약자에게는 정당하게 사용할 힘도, 지식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비겁해야 져야만 하는 건가. 그동안 살면서 접해보지 못하는 위치에서의 시선이나 관점을 경험한다. 그나마 군대가 우리에게 주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정말 싫다. 내가 원해서 하는 군인도 아닌데, 표현의 자유 따윈 존재하지 않아 징계가 두려워 이렇게 글이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는 내 처지가. 이전에 개인의 의견은 생각만 하고 밖으로 표현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하며 나를 가르치려 들려고 한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생각의 표현함으로써 완성된다. 내적 세계에 국한되어 있던 생각들은 세상 밖으로 나와 타인과의 피드백 과정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표현하지 말라는 건 그 의도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생각을 억압하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막상 이런 말을 해도 공감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름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는데, 내 생각이 너무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우쳐져 있어 바람직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건지, 건강한 생각은 안 하고 매일 어떻게 해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 상황에 최대한 반항할 수 있을까 궁리만 하는 내 모습에 조금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좀 감정적인 계기로 글을 썼다. 부대에 여러 사람이 떠나고, 또 오면서 여러 변화가 생겼다. 변화 대부분은 나 같은 사람들이 흔히 경험해 보지 못한 옛날부터 해오던 규칙적이고 질서 잡힌 군대를 만들기 위함이었을 거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찾아온 낯선 상황에 여러 불만이 생기는 와중에 사람들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보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이게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니까 무조건 맞다고 한다는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글을 써야겠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으나, 최근 혹한기 훈련 전투휴무가 없는 게 확정이 나고, 곧장 그다음 주에 행군을 해 가뜩이나 불만이 쌓이던 와중에 통제로서 야기된 사소한 일상의 변화가 치명타를 날렸다. 그래서 부정적 에너지를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목요일이 우리 중대 풋살장 사용 날이기도 해 체 단시간에 혼자 연습이나 하려고 하던 와중에 느닷없이 오늘은 참모부가 쓴다고 한 중대장의 말에 의욕을 완전히 잃었고, 표출하진 않았지만 혼자 있다면 뭔가 부수고 싶을 정도의 히스테리가 몰려왔다. 지금 이런 상황들도 전부 합리적이고 당연한 건가? 어느 순간부터 뭐가 뭔지 구분해 내는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남은 73일 잘 버틸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시든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