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손에 책이 들려있지 않게 된 순간 떠오른 생각
글쓰기에 있어 내 표현력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고 한계에 부딪혔다. 느낌을 생생하게 살릴 만한 효과적인 표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분명하다. 표현에 있어 많은 영감을 제공하는 독서를, 너무 적게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10권 정도는 거뜬히 읽을 정도로 독서를 많이 했는데, 올해 들어 한 주에 한 권 읽는 것도 버거워졌다. 아마 갈수록 독서를 대체할 취미나 관심거리가 생기기도 했고, 예전만큼 독서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에 대한 열망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한정적인 시간에 비해 하고 싶은 일은 많으니 자연스럽게 느끼는 압박감 어딘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책 읽기에 대한 열정이 점점 줄어드는 게, 일시적으로 내리막을 타는 게 아니고, 혹시 아예 군 생활 이전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두렵다. 말년으로 갈수록 초심을 잃고 나태해지는 요즘 내 모습을 돌아보면, 지금껏 꾸준히 유지해온 좋은 습관들이 사실 내 의지나 노력보다는 규칙과 통제가 일상인 군대라는 공간의 특성에 기인했던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변칙성과 불안정성이 넘쳐나는 와중에도 확실한 것 최소한 한두 가지는 굳건히 지켜나가야 하는데,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내 습관의 일부가 균열을 보이는 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제약 없이 혼자서 할 수 있고, 그럴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읽기는, 모든 지적 활동의 시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읽기를 상대적으로 멀리하는 건 지적 성장에 대한 열망이 예전만 못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요즘 들어 글쓰기로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데(특히 영어로 쓸 때 그 느낌이 극대화된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가며 해나갈 여러 활동들에 있어 지적 능력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갈수록 책 읽을 시간은 줄어드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지식과 능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 매일 글로 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해서 수필류의 글은 익숙하지만, 정작 나라는 인간을 소개해야 하는 자소서 같은 글을 쓸 때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 갈수록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양과 차원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한다. 앞으로 새로운 능력을 여럿 갖춰나가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내 인식과 사고를 전환해 주는 독서는 상황이나 조건 없이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독서라는 습관이 약해지는 걸 보면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삶의 과제들을 해결해나갈 능력을 과연 갖춰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욕망은 커져가지만 그걸 뒷받침할 실력을 만드는 건 때론 욕망과 타협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들이 쌓여가면서 어느 순간 독서가 의무가 되고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건 아닌지, 즐거움이라는 중요한 동기부여 요소가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 버티고 이어나갈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다. 사실 나한테 제일 중요한 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무의지의 관성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