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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Apr 23. 2023

정자동 이름모를 거리 위 편의점 테이블에서

1200원 주고 잡은 자리에서 쓴 글



노트북 수리를 맡길 겸 잠실에 들렀다가 거의 4년 만에 롯데월드몰에 가봤다. 이전에도 야구 보러 갈 때 자주 거쳐가고는 했지만, 롯데몰은 좀처럼 들어가질 않았으니. 서울을 자주 오가기는 하지만, 강남역, 광화문(각각 9404번과 9000번 버스로 곧바로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정도로 행선지가 한정되어 있는 나에게는, 물리적으로 성남에서 가장 가까운 송파가 조금 멀게 느껴진다. 롯데월드도 중학생 때 이후로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접점이 없는 동네랄까. 그나마 친구를 만나러 잠실새내 쪽은 몇 번 가본 적이 있긴 하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엄마 따라 백화점을 갔지만, 20대 들어서 성향상 쇼핑몰을 더 선호한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부모님이라는 존재의 등에 업지 않을 때, 아무것도 없는 내가 그나마 눈치 안 보고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 모를 편안함이라는 게 있다. 사실 매장에 들어가도 직원이 말을 안 걸어온다는 사실 하나에서 기인한 차이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이상한 건데, 어차피 사지도 않을 물건을 보는 데에 점원이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은 귀찮음과 동시에 가식적인 배려심이 작용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부터인가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는 점원의 형식적인 인사말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난 쇼핑몰이 더 좋다. 다양한 SPA 브랜드가 한데 모여있어서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쇼핑할 수 있기도 하고.


최근 돈 나갈 곳이 많아지면서 충동 소비를 되도록 자제하려고 하니 괜찮아 보이는 옷이 보여도 좀처럼 돈을 쓰기가 망설여졌다. 심지어 원래 롯데월드몰에 온 목적이었던 후쿠오카 함바그도 이유를 모른 채 사라져버렸다. 블로그 리뷰를 보면 3주 전만 해도 멀쩡하게 영업하고 있었던 것 같던데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참 한순간 방심했다가는 우리 모두 언제 외면 받고 사라질지 모르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지나가는 커플에 대한 동경의 감정을 보면 마음 맞는 이성을 찾는 거일지도?), 어쨌든 모두가 성공이라고 불리는 정체 모를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아등바등 대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 저녁 약속이 있는데, 어쩌다 보니 (30분 앞당겨진)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노트북은 서비스 센터에 맡겨놔서 없고, 생각 없이 근처 벤치에 앉아 유튜브만 보기에도 시간이 아까워 무턱대고 앉아있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나름 판교를 제외하면 분당에서 제일 세련된 동네와 거리라 그런지 온갖 카페나 술집, 식당뿐이었고, 어디 들어갈 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근처 편의점 야외 테이블을 발견했다. 책상이 조금 기울어져있고 플라스틱 판에 약간 굴곡이 있어서 여기다가 종이를 대고 쓸 수 있을까 걱정은 됐지만, 근방에 여기만 한 곳은 없어 보였다.


냅다 자리에 앉아버리긴 그래서 테이블석에 앉을 구실을 만들러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지하철 타기 전에 이미 목이 말라 음료수를 한 병 사 마셨기에 그다지 끌리지 않긴 했다만. 저렴한 것 중에선 피크닉이 제일 나은데 이건 없고, 그나마 괜찮은 게 비락식혜네. 하나 사서(결제할 때 또 카드를 안 꽂고, 점원에게 건네는 실수를 했다. 이런 변화 적응이 안 되네) 거리의 끝까지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에어팟을 낀 채 노래를 듣고 있어 제대로 들리진 않지만, 사람들의 정겨운 대화소리와 함께 풍겨오는 즐거운 분위기가 좁은 틈새를 뚫고 들려온다. 1200원 주고 산 자리와 함께 주어진 풍경치고는 가성비가 좋다. 반면에 여기서 쓴 이 글 한 편은 언젠가 1200원 이상의 가치를 할 수 있으려나. 지나가는 사람한테 판다고 하면 120원도 못 받을 게 뻔한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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