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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ul 31. 2023

멈춤이 주는 기회

물건을 두고 가지 않는법

매일 오전에 카페에 가 글을 쓰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 예전과 달리 카공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가면 보통 4시간, 길어도 5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가는데, 능률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어서 들인 시간치고 뭘 제대로 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도 여느 날처럼 카페에 가서 이제야 잘 마시게 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책을 읽다가 하루치 글쓰기를 마무리하고 난 후 친구와 축구 경기를 보러 가려고 하루 일들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가방을 싸고 돌아가려던 찰나,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손을 꺼내자 안에 있던 빨대 포장재와 영수증 같은 쓰레기가 떨어졌다. 곧장 주우려고 자세를 낮추니 콘센트에 꽂아뒀던 챙기지 않았던 핸드폰 충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하마터면 또 두고 갈 뻔했네. 덜렁대지 않으려야 그렇지 않을 수가 없는 나의 허술함에 또다시 한숨만 나온다. 우연히 쓰레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면 집에 가서 폰 충전하려고 할 때까지 잃어버린 것도 몰랐겠지.


3주 전에 에어팟 본체를 잃어버렸다. 살쪄서 그런지 어디 앉아있을 때 주머니에 물건이 있으면 괜히 불편해 버스 같은 곳에서 지갑이나 주머니를 밖에 빼놓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는데, 내릴 때 괜히 급하게 나가려다 두고 가버렸다. 사실 내리자마자 놓고 간걸 깨달았는데, 이미 약속 시간에 늦었던지라 차가 다시 돌아오는 걸 기다릴 수 없었고, 이전에 몇 번 두고 내렸을 때 회사 분실물 센터를 통해 찾았던 적이 있어서 다시 찾을 수 있겠지 하고 보내버렸다. 세상은 그런 방심한 나를 벌주고 싶었던 걸까 당연히 찾을 거라고 확신했던 에어팟 본체는 분실물 센터에 연락하고 직접 찾아갔지만 예전과 같은 결과는 반복되지 않았다. 막상 잃어버리고 나니 그때 10초, 아니 최소한 5초라도 더 여유를 가지고 행동했다면 그런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만이 남는다. 결국 어미 잃은 새끼 강아지처럼 콩나물 줄기 두 개가 책상 구석에 쓸쓸히 놓인 채 먼지만 쌓이고 있다.


나같은 덜렁이들은 달리다 보면 뭐든 놓치게 된다. 항상 뒤를 돌아보기에는 너무 늦은 순간에서야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아쉬움을 삼킨 채 떠나보내게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살면서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을 정도로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다. 롤러코스터에 탔을 때 급경사를 내려가기 전 슬로프를 오르는 상황이랄까. 뒤로는 보지 않더라도 쌓여온 삶의 시간이 가져오는 부담감과, 앞으로는 다가올 시간 속 조금이나마 상상이 되는 불확실한 예상 속 두려움 존재한다.


분명 무언가 놓치게 되겠지만, 그게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 우연히 떨어뜨린 쓰레기를 줍다가 생긴 일시적인 정지의 순간처럼, 잠시나마 가는 길에 벗어나 뭔가 놓친 게 있나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차피 되돌아가진 못하지만, 최소한 중요한 걸 두고 가는 일은 없어야 나중에 후회는 안 남을 테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쓰레기를 떨어뜨린 우연 덕분에 중요한 걸 잃어버리지 않았다. 중요한 선택을 내리기 전 무작정 망설이는 우유부단함을 좋게 생각하진 않지만, 막상 결정을 내린 후에는 아주 잠깐만이라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멈춤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지갑이라든지 핸드폰 충전기라든지, 에어팟이라든지, 잃어버려선 안되는 무언가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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