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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Aug 01. 2023

D-15: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몸이 아파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든 생각

주말에 갑자기 아파서 반쯤은 멍을 때린 채로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야 할 일까지 면제되는 건 아니었던지라 제대로 쉬지도 못해서 일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되는 어중간한 상황이 이어졌다. 머리를 비우고 있지 않고서는 두통이 너무 심하고, 오미자차를 마시기 전까지만 해도 목이 계속 칼칼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체크리스트에 체크 표시하는 것 하나로 밀린 일들이 저절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편할까. 이런 점에서는 AI가 우리의 역할을 대체한다는 게 반가운 것 같기도.


어느덧 출국까지 15일 남았다.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폭포수 떨어지듯 빠르게 흘러가버린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서 도대체 내가 뭘 했는지 확인할 때마다 제대로 한 게 거의 없다는 현실을 깨달으면서 절망감만이 남는다. 딱히 생산적인 일은 안 하고 있는데, 다른 일을 해도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들인 시간에 비해 좀처럼 결과는 안 나온다. 규칙성이 효율성이 실종된 생활에서 시간은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무심하게 흘러가버렸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놀기에는 이런저런 현실의 부담이 자꾸 나를 짓누른다. 온갖 기회비용 따져가면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고 싶어도 놓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합리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래 어떻게든 내 앞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긴 해야지. 그런데, 문제가 뭐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속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저 “열심히” 사는 거다. 당장 나에게 가장 필요한 방법이기도 하고, 그런데 뭘 열심히 해야 할지 몰라 괜히 여러 가지 것들을 한 번에 고민하게 돼 머리는 복잡해지고, 결국 어느 하나에서도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 적당히 용돈벌이도 해야 하고, 학점도 따야 하고,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미국 생활에 적응도 해야 하고, 취업이든 대학원이든 미래 진로도 어느 정도는 그려나가야 하고, 하나씩 나열하려면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의 갈대밭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 근데 당장 그건 목표가 아닌 기본적인 가정이다. 모든 조건이 이상적으로 실현되기 위해 갖춰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


사실상 제로부터 시작하는 미국 생활을 난 어떻게 대해야 할까. 다시 반복할 수도 없는 이 시간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간절해져야 하는 걸까. 내 습관에는 아직 그런 마음이 묻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 결국 매번 마음이 이끌어주지 못한다면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일정한 틀에 가둬놔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저 “열심히”라는 막연한 표현에 체계를 부여하고, 그걸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삶에 안정성과 질서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한순간의 동기부여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적인 존재가 필요하다. 그 시스템을 남은 2주 동안 구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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