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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Aug 19. 2023

공부와 학위

본격적인 대학 공부를 시작하기 전 준비하면서 든 생각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온 건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나와 비슷하게 UC 버클리에 다니는 수많은 한국인 유학생은 뭘 위해 본국에서 10,000킬로 떨어져 있고, 16시간의 시차가 나는 여기까지 와서 타지 생활을 감수하는 걸까. 수 년 전의 나는 도대체 어떤 매일 드는 의미 없는 생각들이지만 좀처럼 떨쳐내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 미국까지 와버렸다.



친구가 나에게 자신은 그저 학위를 따려고 대학에 다닌다고 말했다. 물론 학위나 스펙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형의 자산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해외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형의 자산을 넘어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 얼마나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는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미국 생활 동안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22년간 얻지 못했던 낯설지만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14살 때 우연한 계기로 생긴 에너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피어난 문제의식으로부터 하나의 목표가 생겨났다. 처음엔(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추상적이었던 목표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던 와중 느낀 한국이라는 공간의 한계, 그리고 동시에 발견한 익숙한 공간 너머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16살 때 재생에너지 관련해 유명한 학교들을(그중 MIT, 스탠포드, 유펜 등등에다가 심지어 버클리도 있었다. 그때 기준으로 지금을 보면 나름대로 목표를 이룬 걸까) 소개하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 그 시절의 내가 호기롭게 따라간 가능성의 과정으로 결과로서 버클리까지 왔다. 



솔직히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이상적인 결과는 아니지만, 어찌어찌 걸어온 길 자체는 과거에 짠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그토록 추구해온 에너지 문제 해결이라는 막연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는 일에 있어 제대로 해나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시간은 충분한 듯 보이지만 동시에 고려하지 못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하면 촉박하기도 하고, 세상에 내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미국, 아니 이 캠퍼스에 널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자신감이 저절로 떨어진다.



여러 선택의 톱니바퀴가 운 좋게 잘 맞아떨어져 감사하게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름대로 내가 이뤄낸 것들도 있지만, 내 주변, 그리고 뒤에서 받쳐주는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오히려 부족한 기반과, 그걸 커버할 만한 능력을 갖추는 데 있어 갈 길이 멀기에, 그런 과거의 과정을 뒤로하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좀 더 간절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만, 학위 수여식 때 받는 졸업장 그 이상의 것들을 얻기 위해, 모두가 볼 수 있는 보편적인 것에서 벗어나지만, 진정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더 많이 읽고, 보고, 대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을 어느 정도 나의 운명이라고 여기려고 한다. 내가 따라가는 운명의 끝이 꼭 지금 추구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결정론적인 관점에선 이미 미래의 많은 부분이 정해져있는 인생에서, 무슨 일을 하던, 미국, 좁게는 베이 에어리어 자체가 꽤 오랫동안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당장 시원한 날씨와 미국 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이 작용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이 학업이나 직업 그 이상의 것들을 가져다줄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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