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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Aug 25. 2023

개강전야

개강 전날이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냐

개강이라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한 이벤트인가 싶긴 하지만, 휴학한지 2년이 넘은 시점에서 찾아온 희귀한 이벤트이자, 새로운 생활로의 본격적인 입문으로 다가와 조금은 긴장이 된다. 솔직히 첫 두 학기 때는 상상조차 못한 일인데, 미리 코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강의 계획서(syllabus)를 읽어보고, 레딧(Reddit)에서 사람들에게 학교생활 관련된 정보를 물어보고, 미리 시간 계획을 짜는 등 해야 할 일을 하는 걸 넘어 내가 빼먹은 게 없나 하나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하는 등, 당연하지만 그동안 잘 안 해놨던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랬던 경험이 원체 없던지라 할 일을 해놔도 제대로 해놓은 건지 의문이 들고는 한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중장기적인 계획뿐만 아니라 당장 학기 중에 달성하고자 하는 단기적인 목표까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은데, 그걸 전부 해나가는데 있어서 3년이 충분한 시간인걸까. 졸업은 할 수야 있겠지만 내가 바라보는 인생의 그림을 완성해나가기 위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부족하지는 않으면서도 절대 후투루 보내서는 안 되겠지. 내가 어떤 태도로 사냐에 따라 3년이 충분할 수도, 혹은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모든게 막연하게만 느껴지지만, 그동안 복잡하게 꼬여있던 매듭을 풀어헤치고, 첫 조각을 맞출 때는 과연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직소퍼즐을 푸는 것처럼 하나하나 맞춰가다 보면 언젠가 주변 경관 정도는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찾게 되지 않을까.



아 이런걸 생각할수록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별거 아닌 거에 긴장하네. 좀처럼 확신이 안 드니까 그런 거긴 하다만 굳이 완벽주의자가 될 필요도 없고, 그럴듯하게 해나갈 수만 있으면 될 텐데, 그 정도도 못할 거라는 불안이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건가. 대충 코스 사이트 가서 본 바로는 노력만 하면 성적 잘 받는게 어려운 과목들은 아닌데, 그동안 해이하게 흘려보낸 시간 속에 나도 모르게 패배주의 마인드가 생겨난 걸지도 모르겠다. 뭐든 시도하기 전에 실패부터 상상하는 못된 습관.


버클리 캠퍼스의 해질녘 흐린 날씨처럼, 내 앞날에 대한 시야도 왜이렇게 흐린 걸까


쨌든 당장 내일이면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속단한 채 방심하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내가 임의로 설정해뒀을 “충분히 안다”의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다. 결국 점점 이곳 생활에 적응해감에 따라 기준도 올라갈 게 뻔하기 때문에 당장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안고 갈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살면서 나를 통째로 뒤흔들만한 불확실성이라는 걸 마주한 적이 없어서 이런 경험을 하는 데에 능숙하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기반을 다진다는 건 필히 무기반의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걸 수반하기에 감수해야겠지. 알을 깬지도 얼마 안 됐고, 게다가 둥지 밖으로 금방 날아올라야 된다는 걸 생각하면 자연스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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