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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Aug 31. 2023

늦어진 공부

3살 어린 사람들과 같이 수업을 듣게 된 난처한 상황

ㄴ어제랑 오늘 수학과 물리 강의를 듣고 난 후 느낀 건, 예전에 배운 내용들이 많아 초반에 따라가는 것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거였다. 안 좋게 말하면 그동안 공부의 시간 자체가 많이 지체됐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에서 나중에 내가 모르는 부분을 다룰 때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공부라는 게 늦어질 수도 있다지만 문제는 이미 과거에 지나온 것들은 뒤로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반강제적으로 맞이한 복습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하는 냉정한 현실을 수면 밖으로 드러낸다.


뒤에 있는 룸메는 올해 졸업해서 대학원에 갔고, 옆에 있는 다른 룸메는 학점은 거의 다 채워두고 졸업 전 마지막 학기로 교환을 왔다(그걸 증명하듯이 듣는 수업이 죄다 Upper Division 중에서도 후반대였으니까). 비슷한 나이대지만 군대도 갔다 오고 이제 막 복학해서 학교생활을 따라가려는 나로서는 자연스레 일종의 허탈감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남자 대부분이 군 생활이라는 경험을 공유하기에 박탈감이라는 걸 느낄만한 대상이 한정되기에 그다지 문제가 된다고 느끼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고, 그러기에 만 25살에 졸업하는 건 한국이라는 틀 안에선 당연하니까.


그러나 새로운 집단에 들어와 어딘가 다른 구석이 많은 듯한 “그들”과 나의 상황을 비교하면 저절로 위축이 된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더 긴 시간 동안 학업적이나 사회적인 공백을 상쇄할 만큼의 성숙함과 지혜를 얻었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사실상 내가 20대 동안 제대로 쌓아 올린 거라고는 700편 넘는 글밖에 없기에 오히려 더 절박하게 느껴져 열심히 하게 되는 건가. 글쓰기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를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이지만, 다른 중요한 것들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게 나라는 인간을 얼마나 돋보이게 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학기에 듣는 Multivariable Calculus는 5년 전 주말 ET를 통해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걸 무조건 배울 필요도 없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어 절반 넘게 짼 채 그저 금요일에 집에 안 가기 위한 구실로 활용했던 기억이 난다. 최소한 수학에 한해서는 학문적인 면에서 사실상 5년째 제자리걸음을 한 건데, 그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약 25퍼센트에 해당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 소중한 시간 동안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이뤄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의 클리셰만이 반복된다. 단순히 군대에서 18개월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일축하기에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5년간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나이대에 맞는 공부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뇌가소성 이론처럼(나 같은 사람에게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다) 나이를 먹어도 꾸준한 학습을 통해 나이를 먹어도 뇌가 퇴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전할 수 있기에, 사람들에겐 다 각자의 시간선이라는 걸 갖고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나에겐 지금이 과거에 흔적이 남은 부러진 날개를 고치고 다시 본격적으로 날아오를 때다. 당장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하는 낯선 상황과 그 안의 관계들. 갑작스레 자리 잡아 체력이 못 받쳐주는 규칙적인 생활까지 해서 머리 아픈 것들이 많지만, 지금 헤쳐나가는 고난이 당장은 상상만 할 뿐인 미래로 향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그나저나 공부가 체계가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학기 초라 당장 할 일이 별로 안 쏟아져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간이 여유로운데 뭘 해야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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