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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Sep 14. 2023

인간관계 이야기

버클리에서 만난, 적지만 인상적인 사람들

여기 와서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과 교류해 보지는 못했지만 짧은 한 달 동안 새롭게 만났거나, 원래 한국에서도 알고 지냈는데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더 가까워진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있는가 싶지만, 내 인간관계는 여전히 지나치게 한정적이다. 개강한 지 2주가 넘어서야 디스커션에 있는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룸메 정도를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도 거의 없다. 허… 동아리 활동이라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질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저번 주에 있던 세션을 못 가서 여러모로 상황이 꼬이네.


주말에 만난 고등학교 후배(이자 대학교 선배), 물리, 수학, 에너지 세미나까지 세 수업을 같이 듣는 신입생 친구, 19년에 입학해서 올해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간 나와 동갑인 룸메이트 등, 운 좋게도 주변에 나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는, 자기 길을 착실히 걸어가는 듯한 사람들을 여럿 마주했다.


특히 18살 신입생 친구는 입학하기 전 여름학기로 미리 수학과 프로그래밍 수업을 다 들어놨고, 입학하자마자 2학년 수업을 당겨서 듣고 또 앞으로의 공부 계획도 체계적으로 잘 짜여있는 성실함과 재능을 전부 갖췄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과 학문에 대한 열정에 있어서는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랄까. 아직 개인적인 것들까지 전부 공유할 정도로 가깝지는 않지만, 나와 4살이나 차이 나는, 한국으로 치면 아직 성인도 나이의 한 인간이 3주라는 짧은 기간동안 보여준 모습 자체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같은 전공이라니, 원래도 학교에 에너지 엔지니어링 하는 사람은 50명 밖에 없다는데, 그중 만난 한 명이 이토록 뛰어난 사람이라는 게 상당한 행운이다.


한 명 이야기를 너무 집중해서 하게 됐는데, 다른 공학 계열로 들어와 EECS로 전과해 꽤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후, 다른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한 룸메이트는 같이 대화를 할 때마다 그가 자기 인생에 대해 정말 많은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는 걸 분명히 느꼈다. 실제로 그 덕에 이제 갓 복학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조언을 많이 얻었다. 그 뿐만 아니라 주말에 거의 4년 만에 만났고, 제대로 대화해 본 건 처음인 후배와 꽤나 길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삶에서 찾아오는 기회들을 망설임 속에 흘려보내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다. 지식적인 측면은 아니더라도 여럿 과외 선생님을 곁에 둔 것 같은 기분.


난 줏대가 별로 없다. 게다가 팔랑귀이기까지 해서 어지간해선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성격이라 롤 할 때를 빼면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마인드다.(이게 나에 대한 정확한 분석인지는 모르겠다) 지난 몇 년간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린 결론인데, 주변에 사람을 얼마나 두냐, 그리고 어떤 사람을 두냐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고, 인간관계에 따라 성과와 역량의 수준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환경 영향을 안 받는 사람이 어디있나 싶겠다만, 그래도 최소한 자기만의 페이스를 갖추는 부분에 있어 여전히 난 독립적이지 못하다.


나는 자극과 영감을 얻어 갈 수 있을만한 인간관계를 갈망한다. 그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에 그게 맞느니 틀리느니를 따지면서 누군가를 설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운 좋게도 군대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기준대로 만난 사람과의 관계는 대부분 나에게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고, 스스로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줌으로써 개인적인 성장을 도모하게 해줌과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계속 말하게 되지만 운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그건 주로 1 대 1 교류나 만남을 선호하는 내 가치관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1 대 1로 대하면 주변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각자가 가진 매력이 있고, 그 안에는 항상 내가 매 순간 찾아 헤매는 새로운 가르침과 깨달음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뒤돌아보면 즐거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여전히 난 타인과 나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 베일을 드러내고 거리를 좁히는 게 두렵기만 하다. 그 두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난 항상 본능적인 긴장과 두려움, 불안을 안고 지낸다.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일상에서도 그렇고, 조금씩 습관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 변화의 폭이 당장은 작아 보여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 내가 쌓아온 관계의 성벽을 확인했을 때 그래도 아무것도 없진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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