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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Sep 18. 2023

사랑이 없다

연애 못한 지 5년,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요즘 주변에서 자꾸 곤란한 말들이 날아온다. 연애 안 하냐, 도대체 여자친구는 언제 사귀냐. 관심 자체를 끊고 사는 건 아닌데 좀처럼 할 일이 없다고 말하면 내가 노력을 안 한다고 까이고, 반대로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 치지 말라고 까인다. 뭐 불행하게도 이런 상황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돼서 익숙한데, 오늘 룸메가 나에게 던진, 여자친구 사귈 생각이 없냐는 물음에는 내가 왜 이런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사실 오늘 수학 강의에서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강의 도중에 누가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왔는데, 자기가 찾던 사람을 보고서는 “You fucked my girlfriend”라고 말하며 그를 끌어내 패기 시작했다. 다행히 같이 온 사람이 둘을 밖으로 끌어내 금방 상황이 마무리됐지만, 정말 짜고 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어이없던 그 순간의 장면 하나하나가 아직도 머리에 생생히 남는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가서 그 얘기를 하다가, 그 사람에게 안 뺏기게 조심해야겠다는 룸메의 농담에,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서 상관없다고 말한 게 시발점이 됐다. 이제 와서 보니 뜬금없이 물은 게 아니었네. 그 순간 여자친구 사귈 생각이 없냐는 룸메의 물음에 좀처럼 답을 하지 못했다. 거짓말은 되도록 안 하고 솔직히 말하려고 하는데, 정작 솔직한 내 마음이 뭔지 나도 알 수 없다. 생각이 있는지와 없는지와 관계없이, 벌써 몇 년이 지나 졸면서 본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흐릿해진 감정의 기억을 가지고, 지금 내 방향이 어떻다고 분명하게 말할 길이 없다. 나도 모르니까.


잠깐 망상에 빠져보자면 만약에 뉴진스 하니 같은 사람이 나에게 사귀자고 해도, 솔직히 망설일 것 같다(아 이건 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지금 나에게는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만날 수 있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요즘엔 내 이상형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외모는 많이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외모의 기준도 대단히 변칙적이라 별로 의미가 없다. 예전에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사람들은 각각 다 본받을 부분이 있어서 그걸로 누군가를 나누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나의 상태는 이분법적인 정의보다는 통계적 접근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특정 순간 연애를 하고 싶은 확률과 각각 경우의 확률의 빈도에 따른 기댓값을 산출한달까. 나중에 개인의 연애와 관련한 여러 가지 상황적 변수를 계산해 주는 확률함수 같은 걸 연구하는 것도 나름 재밌어 보이는데, 사실 이런 거나 하고 있으니까 여친이 없는 거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최소한 연애에 있어서 나에게 향하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은 대개 구구절절 맞는 말뿐이다.


솔직히 혼자인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 혼자인 시간이 많으면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될 때 느끼는 편리함이 그걸 완벽하게 덮어주고도 남는 게 현실이다. 정말 나빴다고 생각하면 5년 중에 뭐라도 시도하지 않았을까. 단지 누군가와 사랑을 하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이라면 그 좋음이라는, 추상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삶의 필수라고 이야기하는 덕목을 나는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는 걸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끔 글로도 표현하지 않는 나의 온갖 잡다한 고민거리들을 가지고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을 때는 조금 허탈하기도 하다. 만약 그런 상대는 오직 사랑을 통해 찾을 수 있다면, 단지 상대를 특정하지 못할 뿐 사랑이 고픈 게 맞다. 


서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가는 대화의 과정은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다. 그러나, 만약 가능하다면 그 순간에 서로에 대한 호감이라든지 설렘이라든지 하는 듣기만 해도 오글거릴 것 같은 감정들을 가지고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사실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허상의 존재와의 만남 갈구하는 듯한 태도가 마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과 닮아있기에 솔직한 나의 감정을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벌써 몇 달 전 일이지만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교토 여행 중 기온 시조에서 가와리마치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본, 카모강 강변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 그 내용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분명 분위기나 서로에게 보이는 태도에는 로맨틱한 무언가가 묻어나있었다. 만약 누군가와 카모 강변에 앉아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고, 그걸 갈망한다면, 시끌벅적하면서도 평화로운 교토 시내의 분위기를 따라 흐르는 카모강이 연출하는 낭만적인 분위기 속 마치 멈춘듯한 시공간에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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