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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Dec 24. 2023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선비의 독서법, 연암의 산문미학

책을 곁에 두고 완독 하지 못한 책들이 생각보다 책장에 많이 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는 책들은 대부분 일상에 묻혀 서문만 읽다가 책을 덮기가 일쑤였다. 그런 책들 중에 한 권을  다시 꺼내 읽은 책이 정민 교수님의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선비의 독서법, 연암의 산문미학)이다.

책의 서문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이끌림이 다시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1장을 벌써 세네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읽을 때마다 그 책의 느낌이 달랐다. 심지어 좋은 문장들은 필사를 하며 읽었는데 손끝에서 느껴져 오는 선인들의 생각과 독서의 열정이 감히 내 눈과 손으로 영접할 수 없는 그런 류의 사람들이어서 내 독서와 글쓰기에 부끄러움만 가득했다.


이런 책은 솔직히 공유하고 싶지 않은 책들 중에 하나이다. 나만 알고 싶고 나만 느끼고 싶은 선인들의 독서법과 글쓰기는 어떤 마술사의 비법처럼 가르쳐주고 싶지 않은 영업비밀과도 같다. 하지만 오늘은 산타가 선물을 가져다주시는 날이기에 산타보따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이 책의 서문

옛 독서법과 문장론에서 오늘의 책 읽기와 글쓰기를 탐색하고, 연암 박지원의 산문에서 넓고 깊은 사유를 만난다. "독서법과 문장론에 관한 공부는 내 오랜 화두였다. 어떻게 읽고 또 쓸 것인가? 옛글 속의 독서법과 문장론은 오늘의 책 읽기와 글쓰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힘 있는 대답을 제시해 준다. 형식 차원이 아닌 원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박사논문을 쓴 뒤에야 처음으로 연암과 만났다. 그를 통해 내 공부에 큰 변화가 생겼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문장과 아마득한 성채 같은 그의 사유 앞에 나는 늘 허기지고 막막했다. 먼동이 터 오는 이른 새벽, 퀭한 눈으로 간밤의 그 문장을 들고 아파트 놀이터로 나갔다. 그네를 끄덕이면서 꿈에서 건져 올린 토막 난 기억들을 메모하곤 했다. 책 속 글 한 편 한 편에 순수하게 농축된 그때의 시간들이 녹아 있다."


옛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을 읽었을까. 선인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 독서방법론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점을 환기시키는가에 대한 책의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읽었다.


김득신의 고문 36수 독수기를 읽었을 때는 나의 독서는 독서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한 번만 읽는 독서를 하는 나의 게으름에 비하면 성현의 독서는 책을 씹어 먹는 것처럼 진짜 학문의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권의 책을 일만 번   이상 읽는 것도 대단하지만 일만 번 읽은 것만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에 독수기 이외의 독서량은 그것보다 더했을 것 같았다.


내가 책을 읽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은 한 권의 책을 일만 번 이상 읽지 않은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게으른 독서와 게으른 글쓰기가 내 글이라는 참혹함이 현실이었다. 쉽게 넘어가는 페이지와 그에 따라 쓰여지는 나의 문장이 널리 읽히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의 부족함을 이 책으로 메꾸어 보려고 하지만 나는 평생 남의 글을 먹고사는 서생의 꼬리표를 뗄 수가 없을 것 같다. 책을 덮고 나서도 기억이 또렷하지 않으니 나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18. 그들은 책 읽은 횟수를 서산으로 하나하나 표시해 가면서 읽었다. 그냥 소리만 내서 읽은 것이 아니라,  가락을 얹어 몸을 앞뒤로 흔들어 가며 읽은 숫자다.

ㅡ> 하브라타가 연상되었다. 유대교 경전을 배우며 익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읽고 배웠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의 교육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37. 글만 읽고 글쓴이의 마음과 만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독서라 할 수 없다.


38. 읽고 나서도 책은 책이고 나는 나인 상태가 계속된다면 그런 독서는 하나 마나 한 독서다.


김창흡은 "책을 덮은 뒤에 그 내용이 또렷이 눈앞에 보이면 산 독서이고, 책을 펴 놓았을 때는 알다가도 책을 덮은 뒤에는 아득하면 죽은 독서다"


50. 홍길주는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지 않다. 산천운물과 조수초목의 볼거리와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무가 모두 독서다."


51. 하늘과 땅의 사이에는 수억만 권의 책이 쌓여 있다. 그런데 이는 불로 태워 없앨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종이 위에 쓰인 것도 아니요,  활자의 숲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살아 있는 책, 펄펄 뛰는 텍스트를 읽을 때 비로소 우리의 독서는 완성된다.


63. 한 편의 글에는 글쓴이의 정신이 담겨 있다. 문여기인, 즉 글은 곧 그 사람


94. 시대가 변하면 언어도 변한다. 언어가 변하면 생각도 바뀐다. 이런 변화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왜 옛 것만을 옳다고 하고, 그것만을 흉내 내려하는가?


97. 법은 규칙이 아니다. 원리일 뿐이다. 규칙에 얽매일 때 죽은 글이 되고, 원리를 깨우치면 산 글이 된다.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글쓰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111. 문장이란 무엇인가? 문장이란 도를 담은 글, 달리 말해 알맹이가 있는 글이다. 인간의 삶을 올바른 곳으로 이끌어 주는 내용을 담은 글이다. 그래서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바탕공부가 요구되었다.


113. 글쓰기에서 가장 우선할 일은 뜻을 세우는 것이다. 뜻이 서면 그 뜻을 글로 펼친다. 이때 자기의 목소리를 갖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남 흉내만 내다가 자기 개성을 잃으면 내가 없는 죽은 글이 된다. 제 목소리를 내려면 옛글에서 그 원리를 배워야 한다. 옛 글과 꼭 같으면서 전혀 다른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같기 때문에 힘이 생기고, 다르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게 된다.


114. 박지원은 글 쓰는 사람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갈 길과 요령을 들었다. 대저 갈 길이 분명치 않으면 한 글자도 쓰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항상 더디고 껄끄러운 것이 병통이 되고, 요령운 얻지 못하면 헤아림을 비록 꼼꼼히 하더라도 오히려 그 성글고 새는 부분이 있는 것을 근심하게 된다. 고 했다. 갈 길을 분명히 하라는 말은 주제 의식을 뚜렷이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요령을 얻어야 한다는 말은 목적지로 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을 선택하라는 뜻이니 글의 구성과 관련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여기에 남기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한번 읽어서는 알 수 없는 문장들도 많았고 1장과 2장을 지나서는 집중력이 흐려져 책을 읽고 좋은 문장들을 옮길 수가 없었다.


끝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독서와 글쓰기는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가 하는 것들은 단어의 표면적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언제 포희씨만 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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