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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Jan 10. 2024

단순한 열정

누군가의 일기장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사회, 역사, 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 책의 이야기는 작가가 직접 경험한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일기가 노벨문학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브런치 작가 중에서 누군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읽은 소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그중 가장 짧고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길지 않아서 전자책으로 쉽게 읽고 그 여운이 길었던 소설이었다. 다른 책들은 쉽게 읽히지 않았는데 그녀의 책은 바쁜 와중에도 왜 그런지는 읽어본 사람들은 알고 있는 어른들의 외도와 관련된 스토리여서 그렇게 외설적이지 않으면서도 계속 그 감성에 눈길을 끄는 책이었다. 그녀의 운명적 스토리와 헛된 상상이 내게도 계속되고 있었다.


집중해서 읽는 책이 아니라 읽으면서 자연스레 집중이 되는 그런 몇 안 되는 책들 중에 하나였다. 억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시간 되면 언제든 펼쳐서 읽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인간 내면에는 그런 소설 같은 스토리를 부러워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자의 스토리만 있고 남자의 내면 스토리가 없다는 것이 조금은 일방향적인 스토리에 내가 너무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은 되지만 그냥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보고 있다는 상상으로 그녀의 내면 스토리에 내 마음을 맡긴다.


인상 깊은 문장들


이 기간 동안 나의 생각, 나의 행동들은 모두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현재를, 행복을 향해 열려 있던 과거로 바꾸어놓고 싶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열정의 시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안나 카레니나』 같은 책은 왠지 불행의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는 읽어서는 안 될 비의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의 : 1. 어떤 일이나 말 따위에 들어 있는 슬픈 의미, 2.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뜻


 옛날의 그 쓰라린 고통이 지금의 아픔을 덜어주리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나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과 허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내게는 형용사의 위치를 바꾸는 일보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덧붙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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