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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Feb 22. 2024

운수 좋은 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운수 좋은 날

현진건

소설가.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세이조 중학을 졸업하고 중국 후장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20년 개벽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시대일보, 매일신보 기자로 근무했고, 1935년 동아일보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1943년 타계했다. 주요 작품으로.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할머니의 죽음,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블레터, 고향 등이 있다.


오늘도 비가 내리는 것이 내 마음 같아서 글도 잘 써질 것 같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조용히 앉아서 나의 슬픔이 드러나지 않도록 아무렇지 않은 듯 글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세상 일이 어지럽고 내 마음이 어지러워도 이내 곧 조용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나는 그냥 나를 어떻게든 위로해 보기 위해 나를 위한 책 한 권을 펼치고 한 자 한 자 읽어나간다. 그러다 보면 책 속에 답이 있었던 것처럼 나의 문제는 해결이 된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


이 소설 첫 줄이 오늘 내가 사는 동네의 날씨와 너무 닮았다. 현진건이 대구사람이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대구 근처에 사는 내게 대구는 대학시절 힘들게 공부하며 다닌 기억 밖에 없다. 대구가 근처라도 대구에서는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의 대학시절은 나의 지병과 싸워야 하는 괴로움뿐이었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자꾸 늙어가는 게 이제는 눈에 보인다. 젊음은 가고 늙음이 오는 것 같다.


없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렇게 서글프고 가냘프다. 김첨지의 삶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력거꾼이 끌어야 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나에게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슬픈 이야기는 계속 쏟아져 나왔다. 김첨지 아내의 슬픈 눈이 보이는 것만 같다.


너무 슬픈 가족의 기록인데 눈물 없이 읽었다. 슬픔이 있다면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렸을 텐데 눈물보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무덤덤하게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처럼 다른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것을 알지만 어린아이의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국가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 시절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힘들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이며 듣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는다. 그래도 사회가 여기까지 성장한 것을 보면 그래도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낮은 곳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번뿐인 삶 속에서 낮은 곳의 사람들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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