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선
소설가. 1920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청강보통학교와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근무했다. 해방 이후 월남해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교사로 일하다가 한국외대와 한양대에서 교수를 지냈다. 1955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암표」와 「일요일」이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1981년 타계했다. 주요 작품으로 「학마을 사람들」 「오발탄」 등이 있다.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손 편지를 보내는 일도 없겠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손 편지를 보낼 일은 없을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전화하고 문자하고 카톡 하면 될 일을 하루나 이틀 걸려 누군가에게 내 소식을 전할 일도 없을뿐더러 종이를 펼쳐 정성스레 나의 필치를 자랑삼아 편지를 쓸 일도 없다. 나는 편지가 쓰고 싶으면 무제노트에 내게 보내는 편지를 쓸 뿐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서 받은 편지를 모아 놓을 정도로 편지 왕래가 있는 시대가 아니다. 편지보다 전화 한 통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을 뿐이다. 그러니 쌓일 것도 없고 모을 것도 없다. 그 흔한 우표수집도 지금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만약 내 아들들이 커서 군에 간다면 편지를 써보고 싶다. 요즘은 군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 하여 그것도 잘 될지 모르겠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도 변해서 그런지 편지는 나이 든 사람들의 구식 행위가 되어버린 것 같다. 편지글은 없고 단문 메시지에 익숙한 지금 세대들에게는 장문의 편지를 쓸 일도 없겠지만 예전에는 편지봉투가 뚱뚱해지도록 쓰고 싶은 글이 많았던 시대가 있었다. 편지는 어떤 진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가지고 있다.
편지를 보면 그 사람이 쓰는 글씨체가 있다. 글자를 보면 누가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편지에는 상대방이 담겨 있다. 그 글의 마음도 담겨 있고 정성도 담겨있다. 우표를 붙이고 봉투를 붙이고 겉봉에는 이름과 주소와 우편번호도 적어야 한다. 물풀이 전부였던 그 시대에 물풀이 삐져나와 손 때가 흰 봉투를 더럽힐 때도 있었다. 사람의 온기를 담은 편지가 그리울 때가 많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꼭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매일 쓰고 싶고 매일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누군가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그런 느낌이 편지를 쓰는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글자를 잘 쓰는 사람도 만나기 힘든 시대에 사는 것 같다. 쉽게 쓰고 쉽게 잊히는 문자메시지보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편지 글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종이가 주는 촉감과 그 사람의 필체 그리고 글을 쓰는 그 느낌이 담긴 편지는 표구를 해서라도 오래도록 보관하고 싶어 진다. 단 하나의 편지이기도 하고 유일한 편지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은 연애편지도 쓰지 않는 것 같다. 즉각 즉각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해야 하고 읽십이라도 하면 무슨 일이 난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갇혀 사는 것 같다.
혼자 있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가끔씩 삼겹살도 구워 무거라. 혼자 삼겹살 먹는 게 서글프고 먹기 힘들면, 찌개 해서 무거라. 삼겹살 대신 비계 약간 붙은 찌개거리 한 사천 원어치 사 와서, 김치는 조금만 넣고 사 온 고기 다 넣고 끓여라. 그러면 국물이 있어서 넘기기 참 쉽다. 혼자서 삼 겹살 먹는 게 처량하면, 찌개거리 사 와서 김치와 물은 조금만 넣고 푹 삶아 무거라. 혼자 있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가끔씩 삼겹살도 구워 무거라. -장정일 「생각」 (행복한 책 읽기 2005) 중에서 국어교과서 작품 읽기 중3소설 창비 p147
니무슨주변에고기묵건나. 콩나물무거라. 참기름이나마니처 서무그라. 순이는시집안갈끼라하더라. 니는빨리장가안들어야건나. 돈조타. 그러나너거엄마는 돈보다도 너가더조타한다.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