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가장한 우연적인 삶의 스토리에 운명을 더한 인간의 인생은 과연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인생의 스위치를 끄면 이 모든 인생들이 존재한다고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이 단순히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게 전부인데 내 존재가 없으면 나는 이 모든 상황들과 생각들이 아주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삶은 아직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적 한계를 삶과 죽음이라는 큰 틀에서 내가 그것을 쓰고 있다는 것을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뫼르소가 나인 것처럼 그 인생의 우연함이 왠지 운명처럼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그 운명의 틀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것이 본인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생각과 행동이었다고 해도 그런 상황들은 결코 혼자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 수많은 인생 속에서 인생을 배우게 만들었다는 것이 실로 놀랍다. 그 죽음조차 의미가 있다. 의미 없는 죽음은 없다. 모든 인간은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 죽음이라는 운명이 가지는 의미를 만들어 인간에게 부여한 신의 섬세함에 존재는 존재의 부당함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지난주까지 해설만 읽다가 이제야 30페이지를 읽었네요. 나는 뫼르소가 왜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솔직하게 표현했는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해설을 읽고 나니 뫼르소의 말들이 이해가 되더군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감정을 거짓 없이 드러내기를 꺼려하죠. 나 조차도 어머니가 죽었는데 뫼르소의 모든 생각과 행동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위로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작가는 뫼르소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생각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page22."저분은 모친과 매우 가깝게 지냈답니다. 여기서는 모친이 하나뿐인 친구였는데, 이제 자기는 친구 하나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하네요."
[작품해설]
page183. 나는 처음 시작 때부터 내 작품세계의 정확한 계획을 세워 가지고 있었다. 나는 우선 부조리(부정)를 표현하고자 했다. 세 가지 형식으로 그것이 소설로는 이방인, 극으로는 칼리굴라와 오해, 사상적으로는 시지프 신화였다. 나는 또 세 가지 형식으로 반항(긍정)을 표현하기로 예정하고 있었다. 소설로는 페스트 극으로는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반항하는 인간이 그것이었다.
page186. 사실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며,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대학생 시절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았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때, 나는 곧 그런 모든 것이 사실상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 출세 등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삶과 무관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1937년의 인물에게서 장차 이방인이 보여 줄 인생관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page 189. 예술가와 예술 작품. 진정한 예술 작품은 가장 말이 적은 작품이다. 한 예술가의 총체적 경험, 그의 생각+삶(어느 의미에서 체계-이 낱말이 내포하는 조직적인 면은 빼고)과 그의 경험을 반영하는 작품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다. 예술 작품이 경험을 문학적 장식으로 포장하여 모조리 다 보여 준다면 그 관계는 좋지 못한 것이다. 예술 작품이 경험 속에서 다듬어 낸 어떤 부분, 내적인 광채가 제한되지 않은 채 요약되는 다이아몬드의 면같은 것 일 때 그 관계는 좋은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과잉 장식과 수다스러운 문학이 있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저 그 풍부함만이 짐작만 될 뿐인 온갖 경험의 암시로 인하여 풍요로운 작품이 있게 되는 것이다.
page191. 겉보기에는 아무 의식이 없는 한 인간 특유의 무심한 모습을 가장 적게 말하면서 암시적으로 그려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page 193. 묘사하는 작품과 설명하는 작품을 서로 조화시킨다. 묘사에 그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다. 묘사는 그 자체만으로는 멋진 것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가져다주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계가 의도적으로 설정된 것임을 느끼게 해 주면 된다. 이렇게 되면 한계는 사라지고 작품은 울림을 갖게 된다.
page195. 이 어두운 방에서 - 갑자기 낯설어진 한 도시의 소음을 들여며- 이 돌연한 잠 깨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모든 것이 낯설다. 모든 것이, 내게 낯익은 존재 하나 없이, 이 상처를 아물게 해 줄 곳 하나 없이,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이 몸짓, 이 미소는 무엇과 어울리는 것인가?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 다른 곳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세계는 내 마음이 기댈 곳을 찾지 못하는 알지 못할 풍경에 불과하다. 이방인 그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이방인, 내게 모든 것이 낯설다는 것을 고백할 것
모든 것이 분명해진 지금, 기다릴 것, 그리고 아무것도 빠뜨리지 말 것, 적어도 침묵과 창조를 동시에 완전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할 것, 그 밖의 것은 모두, 그 밖의 것은 모두, 어떤 일이 생기건 상관없다.
page200-201 우리들 각자는 최대한의 삶과 경험을 쌓아 가지만 결국 그 경험의 무용함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느끼고 만다. 무용함의 감정이야말로 그 경험의 가장 심오한 표현인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삶의 절망적이고부조리한 면을 의식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소설이란 어떤 철학을 여러 가지 이미지들로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 좋은 소설에는 철학이 송두리째 이미지들로 변해있다." 샤르트르의 구토에 대한 서평
인생에서 하나뿐인 친구를 잃어버리는 것은 배우자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주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현실에서 당사자가 겪는 경험은 실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로 인해 내 존재가 사라지는 그런 느낌을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갑자기 사고로 사라진다면 그 슬픔과 운명에 대한 회한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철학과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죽음은 항상 어떤 우연함과 겹친다는 것이 약간 운명적인 삶의 장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판사와 검사도 피고인에 대한 진정성은 없고 어떤 형식적인 절차와 외적인 사건들에 대한 자기들만의 고집으로 살인자로 몰아가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네요. 여전히 우리 삶에 있어서 법과 판결은 많은 의문을 자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라는 문장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예수의 삶을 추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앞 뒤가 맞지 않는 문장 속에서 삶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십 년 뒤에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page101 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날이 저물고 있었고, 그것은 내게 있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 감옥의 모든 층으로부터 저녁의 소음들이 침묵의 행렬을 이루어 올라오는 이름 없는 시간이었다.
page104 내가 남아도는 존재라는, 좀 불청객 같다는 기묘한 느낌 또한 납득이 되었다.
page123 사실상 나에게는 영혼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고, 인간다운 점도, 인간들의 마음을 지켜 주는 그 어떤 도덕적 원리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page145~146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셈이지. 나를 보면 맨주먹뿐인 것 같겠지. 그러나 내겐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 신부 이상의 확신이 있어. 나의 삶에 대한, 닥쳐올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래, 내겐 이것밖에 없어.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굳세게 붙들고 있어. 그 진리가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만큼이나,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아.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았고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어. 나는 이건 했고 저건 하지 않았어. 나는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어. 그러니 어떻다는 거야?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나의 정당성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난 그 까닭을 알아. 신부인 그 역시 그 까닭을 알아.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 불어 올라오고 있었어.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나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들,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들,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오직 하나의 운명만이 나 자신을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수십억의 특권 가진 사람들을 택하도록 되어 있는데 말이야. 이해하겠어? 이해하겠느냐고?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 가진 존재야.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 없어. 다른 사람들도 역시 장차 사형선고를 받을 거야. 신부인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