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기나긴 연휴가 끝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네요. 오늘부터 이제 시작입니다. 같이 읽는다는 게 참 좋네요. 오늘부터 하루 10장씩 한 달이면 끝이 나겠네요. 생각보다 손에 책이 잡히지 않아서 가스레인지 옆에서 요리가 되어가는 동안 잠시 읽었네요.
댈러웨이 부인의 유명한 문구 "댈러웨이 부인은 자신이 가서 꽃을 사 와야겠다고" 말한 문장이 저에게도 참 인상 깊네요. 저 역시 이 책을 직접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오늘도 누군가의 대문 앞에 꽃 한 송이와 댈러웨이 부인의 책을 놓고 올 것 같아요. 괜스레 눈물이 핑 도네요.
그리고 인상 깊었던 문장은 page11. 인간이란 참으로 바보로구나"하고 그녀는 빅토리아가를 가로지면서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렇게 사랑하고, 또한 인생을 그렇게 상상하고는, 인생을 자기의 주위에 쌓아 올리고 또 허물어뜨리며 매 순간 쉴 사이 없이 새로이 창조하려고 하는 것인지 대체 누가 알겠는가.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한 몰골의 여자들, 현관 계단에 정말 실망낙담하여 쪼그리고 앉아 있는 불쌍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누추한 인생들(이들의 몰락에 축배를 들자!), 이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하긴 그들도 인생을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서관에 빌린 책이 집사재 출판사 밖에 없어서 약간의 번역이나 해당 페이지가 틀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88쪽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쓸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저들 좋은 대로 지껄이겠지.
267쪽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사물의 본체와 통하려 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묘하게 회피하기 때문에 중심을 맞추기가 불가능하다고 사람들은 느끼게 되었다. 친밀감도 떨어지고. 기쁨도 식어간다. 인간은 고독했다. 죽음 속에 커다란 깨달음이 있었다.
149쪽 풍토나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여 진정한 신앙으로부터 이탈시키려고 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 사원을 파괴하고 우상을 쳐부수고, 그 대신에 자기의 엄격한 면모를 내세우려고 지금도 분주하다.
148쪽 인간은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즉 균형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방으로 들어와서 그리스도임을 자칭하고 (흔히 있는 망상인데) 대게 그러하듯이 메시지가 있다고 하면서 종종 자살하겠다고 위협하며 균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침대에서 요양을 지시한다.
303쪽 이 소설을 읽게 되는 독자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댈러웨이 부인을 일반적인 소설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면 백에 백은 중간에 손을 놓게 되거나 책을 던져 버리게 된다. 우선 특별한 줄거리가 없고 중심 인물도 없다. 클라리사라는 인물과 런던의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루 동안의 의식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하나 더 조심해야 할 것이 더 있다. 댈러웨이 부인을 다 못 읽을 것 같다. 다 읽고 나면 창가에 기대어있다가 떨어져 버릴 것 같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어도 눈물이 떨어져 버릴 것 같고 세상이 너무 슬퍼서 누군가를 향해 오지 말라고 미친 듯이 소리칠 것 같고 내가 내 슬픔에 못 이겨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어 가지고 강물에 걸어 들어갈 것만 같은 괴로움만 가득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슬픔을 뒤로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