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정체성으로 인해 편견이 생기는 일을 피하기 위해 풀러는 이 책을 S.M. 풀러라는 이름으로 출간했고 작가의 성별을 밝히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20세기에 들어서도 논픽션이나 문학 분야에 글을 쓰는 몇몇 여성 작가 사이에 흔하게 나타난다.
가부장제 사회, 교조적 종교, 관습으로 무장한 모든 현상 유지의 요새들로부터 공격이 빗발쳤다. 전부 풀러가 서슴지 않고 도전한 상대들이었다.
18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풀러는 <뉴욕트리뷴>에서 250편의 글을 발표했다. 풀러의 영향력과 많은 기사와 거침없는 사고방식을 통해 독자들은 한층 높은 정신의 미학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을 뿐 아니라 비판적 사고의 기초를 익혔다.... 진실과 아름다움의 씨앗을 심었다.
당신의 펜은 종이 위에서 다소 방종하고 게으르게 어슬렁거리더군요.
나는 필요한 만큼 잊히고 무시당하는 일에 수긍합니다.
문학은 어쩌면 인간의 모든 종과 계급 사이를 통역하는 거대한 상호 소통의 장으로 볼 수 있다. 문학은 형제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서신교환이다. 형제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정신적으로 함께 하기를 열망한다.
초월주의자 중에서 풀러는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신념을 시험한 유일한 인물이었으며, 펜을 이용하여 우리의 삶이 정의로운 사회에서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삶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도록 힘껏 노력했다.
글쓰기에서 대화는 여러 겹으로 두껍게 포개져 있어야 한다. 예술 수준에 이른 글은 처음 정독할 때 일반적이고 평이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두 번째 정독에서는 준엄한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세 번째 정독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글의 깊이와 현실성이 담보된 연후에야 우리는 글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남자와 여자는 한 생각의 반쪽들이다. 나는 그 어느 쪽이 더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한쪽의 발전이 없다면 다른 한쪽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바라는 소망은 이 진실이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일이며, 우리 시대의 딸과 아들이 삶의 조건과 자유를 똑같이 인식하며 살아가게 되는 일이다. 여자는... 이제 노를 크게 저으며 나아갈 필요가 있다. 딸들의 발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혁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0장 자신을 좀 더 사랑하는 법
무한한 기회를 가진 존재가 어떤 관계에 국한된 제한적이고 배타적인 견해에 따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영혼에 자유로운 길을 터주고 몸과 정신의 기관이 자유롭게 발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 존재는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관계에 걸맞게 될 것이다.
<19세기 여성>을 읽은 호러스 그릴리의 근시안적인 비판
“여자든 남자든, 이 책을 읽으면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책을 덮을 무렵에는 수많은 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고 어렴풋한 생각을 떠올리는 데서 그치고 만다.”
마거릿 풀러의 반박
개혁가들은 자신의 논리에서 이 세계가 완전히 악인들과 배고픈 이들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정신의 음식에 굶주린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정신의 욕구 또한 몸의 욕구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또한 개혁가들은 사회의 사슬이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고리와 고리가 연결된 사슬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한 남자를 그 동료들 위로 들어 올릴 수 없다. 우리는 인류 전체를 들어 올려야 한다. 뉴턴, 셰익스피어, 밀턴은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에게 직접 이득을 주지 않았지만 그들 덕분에 인류 전체가 고양되었다. 그들은 출판사를 찾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지만 몇 세기가 지난 후 출판사가 그들을 찾았고 독자들도 그들을 찾았다. 인류 전체가 들어 올려진 것이다.
최고의 인간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를 알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은 그저 이용될 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썼다.
낮과 밤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다면, 삶이 꽃이나 달콤한 풀처럼 향기를 풍긴다면, 삶이 한층 유연해지고 별처럼 반짝거리며 영원에 가까워진다면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정신은 그 자신만의 장소이니, 그 안에서는
천국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천국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항상 기댈 수 있는 상대, 내가 항상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상대는 어디에도 없을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땅 위의 순례자이자 잠시 머무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 같은 이런 존재는 오직 마음 안에서 집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좋다. 모든 것의 힘을 빌려 나는 우주가 쓰는 위대한 시의 의미를 해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