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솟아 있는 산줄기들은 실크로드의 산 가운데 가장 높은 것들이며, 세계에서 해발 7천 미터를 넘는 산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산맥들로는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코페트다크, 힌두쿠시, 파미르, 카라코룸, 쿤룬, 히말라야, 치롄, 친링산맥이 있고, 더 북쪽으로 텐산, 알타이 산맥이 있다. 이들이 기후와 생태계와 인간의 주거를 만들어낸다. p126
인생에 한 번쯤, 킬리만자로라는 등반을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 산이 해발 5,895 미터였다. 일주일을 하루에 일 킬로씩 걸으며 등반하는 여정을 봐도 그 높이가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칠천 미터를 넘는 산이라고 하니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하겠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셀파와 가이드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몇 개월에 걸쳐 전문산악인들만 등반이 가능하다는 저 산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걸쳐서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동네 뒷산 500 고지도 힘들게 올라가는데 옛날 사람들은 그 높은 산을 어떻게 오르고 내리고 했을까.
등반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지나간 자리를 지나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길을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이 길이 가장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걸었던 길이고 길을 가면서 중간중간에 다리도 놓아야 했을 테고 계단도 만들어야 하는 난해한 토목공사를 직접해야 했던 그 시절의 고단함이 그 길에 그대로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나그네는 좁은 다리 건너기 힘겹구나. 평생에 눈물 훔친 적 없건만 오늘 천 줄기 눈물을 쏟는다. p125
중앙아시아의 불교 석굴 사원 바미얀
2001년 3월 탈레반은 바미얀에 있는 두 개의 불상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파괴는 새로운 발견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도 후세 사람들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그냥 보존만 하게 되었을 경우 그 내부의 어떤 새로운 유물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문화재의 파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문화적으로 산은 나눔보다는 합침의 요소다. 정치가 때로 그런 통합을 방해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산맥들을 연결하는 문화적 연결망의 존재는 멀리 거슬러 올라가 선사시대에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북방 신석기 문화 복합체는 스와트(그리고 아마도 동부 파미르의 일부)와 카슈미르가 공유했고, 더 동쪽으로는 히말라야산맥 너머 땅과 멀리 북중국 평원까지 연결돼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헬레니즘 문화라는 것을 세계사 수업 시간 이후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보아왔던 아름다운 불상의 모습들이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의 모습을 많이 반영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문화라는 것이 새로운 문화의 모방과 흡수를 거쳐 변화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각의 특성이나 건축의 특성도 대부분 모방의 과정은 거친다고 생각합니다. 모방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수도사들은 왜 고립된 생활과 그들의 신을 숭배하고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하냐는 것입니다. 불교의 수도승이나 천주교의 수도사들의 삶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삶입니다. 그들이 만든 문화는 일반인들이 만들지 못하는 문화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이 만들지 못하는 조각과 그림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깨달음과 영성을 위해 수행을 하는 그들은 진정 자신이 부처가 되고 하느님의 영성을 얻는 것에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왕족이나 귀족이 만든 문화도 종교가 만들어 내는 문화도 무덤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도 실크로드가 만들어낸 문화도 교류와 융합이 새로운 문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듯이 지금 그믐이 만드는 책문화도 여러 사람들이 새로운 독서 활동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