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가면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튀르크어로 '붉은 모래'라는 뜻의 키질쿰사막이 있다.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 사이다. 그리고 아무다리야강을 건너면 오늘날의 투르크메니스탄에 투르크어로 '검은 모래'라는 뜻의 카라쿰사막이 있다.
멀리 카스피해까지 뻗어 있다. 두 사막은 모두 광대한 평원을 이룬다 많은 함몰지와 고원도 있지만, 주로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얄은 함물지 타키르도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계절적인 강우 때 범람한 무거운 진흙으로 가득 차는 곳이다.
이런 사막들은 실크로드의 큰 장애물이 됐을 수 있다. 그러나 큰 강들이 이 사막들을 가로지르고 메르브(219쪽 상자글 참조)나 부하라 같은 풍요로운 삼각주와 오아시스들이 있어 중요한 교역로가 발전했다. 물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일은 이 교역로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p218
사막은 또한 원자재의 원천이었다. 예를 들어 나일강과 홍해 사이의 사하라 동부 사막은 고대에 건축용 석재와 광석, 그리고 보석의 산지였다. 키질 쿰사막 북부에는 금, 은, 구리가 많이 매장돼 있어 고대부터 채굴됐다. 그러나 사막에는 위험 요소들이 산재했기 때문에 그 안에 살거나 그와 맞닥뜨리게 되는 사람들에게 때로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여행자들이 사막에서 귀신이나 신기루에 홀려 행로를 벗어난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것이 이 드넓은 사막에서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더욱 자극했고, 실크로드 여행자들에게는 길을 찾기 위한 지식이 더욱 중요했다. p220
적은 강우량에 대처하기 위해 효율적인 물 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은 오아시스가 상업 · 종교·정치의 중심지로서 장수할 수 있는 관건이 됐다.
사막은 생명체다. 이는 특히 타클라마칸사막의 경우 사실이다. 그곳에서는 인간의 초기 정착 이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줄곧 타림분지의 사막화가 인간의 행위에 의해 가속됐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주요 요인은 타림 지각판이 인도판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수계(水 系)의 변동을 초래했다. 그것은 다시 타클라마칸사막의 삼각주와 강의 이동으로 이어졌다. p237
호탄의 법적 문서도 인상적이었다. 계약은 법적문서의 기본이다. 문서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시행하겠다는 쌍방의 합의를 근간으로 하는 그 문서가 존재했다는 것은 그때 당시에도 법적인 문서가 다양하게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성벽의 재료는 그 지역에 유일한 모래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건축의 재료로 바위와 모래 그리고 물이 있었을 것 같다. 벽돌을 만들기 위해 모래와 물 그리고 어떤 재료를 더 섞었을 것 같은데 어떤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잡석이나 자갈 그리고 섬유질이나 어떤 진흙을 부어 굳혔는지 아니면 벽돌을 만드는 방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종이가 귀한 시대에 그들은 건축물을 쌓는 방식과 성벽을 지을 때 어떤 설계도를 그렸을까. 그리고 인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시키고 노임을 주었을까. 그 모든 것을을 그들은 어떻게 체득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떤 문명의 발생과 소멸 그리고 특정 종교가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 속에서 몇몇 종교는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그 오랜 시간 속에서 문명과 시대는 시간과 침략 속에서 사라졌는데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영원불멸한 신의 존재처럼 종교는 어쩌면 정말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다스리고 있다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 종교의 종류를 떠나 인간은 정말 신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해질녘에님의 책 꽂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601)(양장본...'
이 책들은 실크로드를 읽는 중간중간에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실크로드를 다시 읽을 때 도움이 될 책들인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실크로드를 읽다 보니 어떤 문화를 답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지적욕구도 필요하겠지만 그런 탐사를 위한 국가의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외의 일이라고 방심한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사실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의 조선과 고구려의 다양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북한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도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니더라도 남과 북이 함께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탐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가나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북한의 땅을 밟고 그 시대의 유적지를 답사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교류가 어려우면 다양한 문화적인 교류부터 하루빨리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