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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Nov 20. 2023

역사의 연구

패턴의 반복

인간이 쓴 역사를 사실 그대로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처럼 내가 읽은 책들이 유시민 작가의 궤적을 쫓아가고 있었다.


문학 철학 정치 역사 그다음의 궤적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역사적 지식도 부족하고 거기다가 기억력도 좋지 않은데 내가 함부로 역사를 논할 자격이 있을까마는 그냥 맘 편하게 읽고 그냥 내 느낌을 기록하는 것에 이의를 두고자 한다.


역사의 연구 12권짜리를 읽은 것이 아니라 요약본 2권짜리를 읽는데도 책의 진도는 더뎠다. 어떻게 이 책을 한번 훑어보고 역사를 알까. 유시민작가나 고도원선생님처럼 10번 이상 읽기를 권하는 책이었기에 틈나는 대로 다시 몇 번씩 읽어봐야겠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역사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분들의 여러 책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되어 있어 내가 그 수고로움을 하지 않아도 인간의 광대한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역사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탐구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역사의 여러 정의들 가운데 가장 와닿는 글귀였다. 여러 역사가들의 역사적 탐구 성과는 가히 인간의 모든 속성들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나에게 많은 반성과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역사는 지나온 시대의 성과에 대해 비교할 수 있었다. 특히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다른 나라도 많이 있었고 그 비슷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도 어떤 나라는 식민지 그대로로 남아 있는 국가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었다.


인간의 속성이 역사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라 하더라도 그 역사적 유사함은 인간의 고유 속성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인지시켜준다. 하지만 그 역사적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주변국의 상황에 따라 인간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지금의 각 나라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우리는 지난 짧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서로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기껏해야 80년을 조금 더 살 수 있는 인간의 존재가 몇 천년이 지나도 똑같은 삶의 패턴을 살아가고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선진국처럼 인간의 우월함과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고 살아가는 곳이 지금 이 지구에 있다. 인간 문명의 발달이 전 세계 곳곳에 골고루 발전하지 못하고 각 지역마다 지체되는 이유는 다 있었다.


모든 인간이 모든 나라가 똑같이 발전하지 못한 인간 고유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인간처럼 살아가는 인간들 속에서 역사는 인간의 특성을 숨기며 그 사실들만을 기록하려고 했다. 역사는 그 인간들에 대해 관대했고 아직 멸망하지 않은 지구에서 그 심오한 역사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처럼 오래 살아도 인간의 역사는 그 시대와 그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시대의 문명은 크나큰 혁명이 없이 그 시대의 강물처럼 같이 쓸려간다. 그 역사의 진실조차 그 시대가 지나고 나서 여러 역사를 종합해 보더라도 참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 그리고 진화, 불합리함 속에서 서로의 입장만 주장하는 인간의 특성 그리고 종교집단과 계급이 가지는 역사적 입장 차이는 기득권들에게 중요할 뿐이다.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은 기득권에게 의미가 있을 뿐 역사를 몰라도 대다수 인간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국사를 몰라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 단지 인간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 사실은 이제 컴퓨터에 다 있다. 거대해진 메모리 안에 담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역사는 토인비의 말처럼 문명의 발생 성장 쇠퇴 해체의 순대로 반복될 것이냐 아니면 그 룰이 깨지고 말 것이냐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시대적 상황으로 봐서는 계속 성장의 단계에 있는 것 같다. 그 발달이 앞으로 우리들이 예견했던 대로 제5원소나 스타워즈 같은 공상과학 영화처럼 진화할 것이냐 정지될 것이냐는 다음 세대의 몫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수명이 고작 100세 이내인데 여타의 문명들은 천년 이상 지속 되어왔었다는 사실을 봐서는 아직 내 세대로부터 몇 세대를 더 거쳐야만 그 역사의 순환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인간의 역사에 비해 문명의 역사는 쉽게 헤아리기 어렵다.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온 삶의 패턴이 인간의 생각마저 다르게 만들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삶은 신세대나 구세대 간의 세대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영상매체의 유무나 스마트폰의 유무에 따른 세대 간의 격차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편리한 도구들이 인간을 조금씩 조금씩 해를 끼치고 있는 동안 인간은 성장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문명의 편리한 도구들이 인간의 악한 특성을 부각하고 인간의 장점들이 점점 퇴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놓아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명이 가져다준 편리한 도구들을 스스로 멀리하려고 했을 땐 삶이 너무 불편해서 그 단점을 무시해 버리고 장점만 취하려고 한다. 앞으로 문명의 비극적인 해체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수많은 역사가들은 대략 어떤 식의 미래가 올지는 예견하고 있을 것이다. 미래는 예언이 아니라 패턴의 반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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