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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Nov 29. 2023

토성의 영향 아래서

Mind as Passion

아직도 태양을 다 돌지 못한 토성과 번역되지 못한 책들에게

사람은 자기가 읽고 싶은 책만 본다. 그래서 책이 주는 감옥에서 쉽게 나오지 못한다. 더군다나 성급한 일반화를 통해 자기 합리화를 해버리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내가 헤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 그녀가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하였는지 그는 누구인지 무슨 책을 썼는지 그 책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지구의 점보다 작은 한 구석에서 언젠가 남들이 번역하지 않아도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을 스마트하게 읽을 수 있는 구글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더 우울한 열정은 시 한 편에 목말라하는 인간의 갈증을 지식의 단절로 외면해 버린다.


문자보다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 그 영상이 만들어낸 사회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기억이 더 오랜 간다는 것. 책은 읽고 나면 쉽게 잊혀 버리는데 영상처럼 한 번 본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것. 보이는 대로만 살아갈 것인가. 보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쓴 흔적을 더듬는 것조차 힘이 든다. 가볍게 살아가는 게 익숙한 버리고 싶은 내 근성 때문에 나보다 남을 이해하는 걸 더 힘들어하는 날 버리고 싶다.


7편의 글 중에서 나와 가장 코드가 비슷했던 Mind as Passion의 주옥같은 명문들을 남기며 내 서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책 속의 그 책과 저자들을 모르고 그 책들 조차 읽어보지 못한 서평은 서평이 아니다. 그것은 껍데기일 뿐 세상의 모든 지식 껍데기를 핥고 있는 알량한 내 혀의 존재를 나만 모르고 있었다.


발작적 존경심, 자기 나이에 저항한다고, 자신의 지적 체온, 자유를 찾은 혀, 미친 독서광, 문학은 언제나 지식의 성급함이다. 마라케시의 목소리, 비밀스러운 승리, 내 목표는 이기심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세기의 멱살을 쥐어 잡을, 위대한 금언 작가들, 사람은 오만하기 위해서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더욱 자기 답기 위해서, 그의 글에는 그래서 아이러니가 거의 없다. 그는 좌파의 유혹에도 전혀 흔들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권력의 종교, 죽음을 반박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모든 민족의 신화를 아는 것이 내 인생의 진지한 목표다, 최초의 독립적 움직임, 어머니는 천박한 방언을 증오했다. 학습자가 없이 숭배자는 깊이가 있을 수 없다. 나는 침묵하는 지식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의 거대한 맹목이다. 계급이나 민족 같은 개념을 공격하면서 군중을 고찰하여 권력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탈역사적인 이해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프로이트가 심리학자가 아니었다면 카네티 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를 병리학에 용해시키고 사회를 해독해야 할 정신적 활동으로 취급한다. 프로이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슈레버의 망상증을 더 타당한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치 멘탈리티의 원형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환원적 사고 습관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웠다. 마이크로풀로스 사건의 여주인공처럼 일반적인 수명의 불합리함을 이야기한다. 삶의 덧없음이 우리를 나쁘게 만든다. 정신의 장수다. 브로흐와 같은 작가는 우리에게 숨 쉬는 법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성취 너머에, 힘을 모으는 것 너머에 무언가와 동일시할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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