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레푸기움;안식처

by 안세아


사라봉 벚꽃길에서 어머니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벚꽃을 보러 길을 걸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글에는 어머니라 쓰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라고 부르기로 한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을 다시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오늘 파마한 짧은 머리, 잔잔한 꽃무늬 조끼,
고운 눈가의 주름까지.
어머니는 봄 햇살처럼 포근했다.
“벚꽃 예쁘다.”
이윽고 내게 꽃구경 좀 더 하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민들레차를 한 잔 내어 주셨다.

따스함과 향긋함이 내 몸의 온기뿐만 아니라 그윽하게 적셔줬다.
벚꽃도 아름다웠지만, 그날의 어머니는
더 곱고, 더 따뜻했다.


어머니는 암 확정을 받은 뒤에도 밭에 나가 일을 하셨다.
나는 그 이유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매일 세수를 하고, 글을 썼듯이 말이다.

그리고 달력을 보며, 내게 마지막 신호를 주던 그날, 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부모 뒤에 숨은 한 소녀가 걸어 나오고 싶은 한 이야기이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글을 잘 쓴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어머니에게 밭은 일터이기 이전에 자신을 놓지 않는 자리였다.

결국, 밭은 그해 벚꽃이 질 무렵 내놓았을까?

여름날, 영원할 것 같던 밭이 팔렸다는 선언을 하셨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 흐르던 눈물샘이 뽀송해질 줄 알았을까?

공허함이 찾아왔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공부가 다가 아니다.”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아픔의 깊이만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답게 하라”는 말을 들으며 마음이 움츠러들었고, 어머니는 “공공근로답게 청소하라”는 말을 들으며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셨다.

공공근로 경쟁률이 높았던 시절,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셨다. 관리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육체적인 고단함보다 더 힘들게 했던 건
예의 없는 말들 인 것 같았다.
분리수거를 하러 온 사람들의 무례한 태도,
훈계냐며 소리치는 목소리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 사람들도 나름 사정이 있겠지”라며
이해하려 하셨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반대로 “수고하십니다”라는 짧은 인사 한마디에
어머니는 하루의 힘을 얻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사람이 환경을 대하는 태도가 세상을 조금씩 바꾼다는 것을 나는 어머니를 통해 배웠다.


어머니와 나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격려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된 개체로 걸어가면서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따스한 글을 쓰지만, 나와 어머니는 어머니가 암확정을 받기 전까지,

정말 엄마와 딸만 아는 뒤늦은 사춘기 딸의 후회할 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 그 일상의 무탈함과 소소함이 행복이었다.


소중할수록 경계를 지키는 일.
일생이라는 긴 선 위에서 시기와 형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건이 찾아온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 소중하다면, 지켜져야 한다. 친구, 스승과 제자, 동료, 부모자식 등이라는 이유로 더욱 지켜져야 하는 일이다.


어머니의 레푸기움은 밭이었고, 나의 레푸기움은 자연과의 사색의 시간이다.
방식은 달라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숨을 쉬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알게 되어 감사하다.



이해란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해력은 배우는데 필요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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