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치던 순간에-자작시-
인생은 시 스케치와 닮았다.
막히면
의성어와 의태어를 찾아 넣는다.
그러다 피식 웃는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이어지는 순간들.
용기
-안세아-
성큼성큼, 거칠게 와라
후드득, 더 부서지듯 오라
우락부락, 올 테면 와 봐라
큰 돌
작은 돌
철썩철썩, 기꺼이 부서지고,
너를 맞으리
그립기에
도르르, 둥글어져 갔으리
나는 네가 좋았기에.
25년 8월 7일
파도와 해무가 겹쳐 밀려오고
나는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시를 스케치했다.
오늘 점심을 먹다 말고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왜 시인이 안 됐어?”
잠시 멈칫했다.
웃으며 대답은 했지만,
오래전 기억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몇 해전, 누군가 내게 브런치 작가를 해보라고 권유했을 때도 마음은 있었지만,
의지가 없었다.
일기장에 끄적이던 것들.
그 생각들이
태풍이 되어 나를 잠식할까 봐 두려웠다.
교습소 홍보를 위해 만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첫 페이지를 넘기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나다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었다.
방향이 바뀐것이다.
점수 올리는 것보다
스스로의 선택과 과정에 더 관심이 생긴 것이다.
무엇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속도와 결과, 비교를 강조하는 사교육 트렌드가 대세였다. 나도 그 대열의 기차에 어느 정도 타고 있었다.
요즘 사교육트렌드는 과정, 관계, 소통, 태도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낼 수 있는 용기였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홍보하면 안 된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 나는 선언했다.
“나는 프리랜서다.”
자기주도학습을 함으로써 아이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는 덕분에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용기는 가슴속에 있는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맞서는 것도 용기이고, 도움이 필요할 땐 요청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용기 내줘서 감사하다.
여기까지 와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