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로 살아가기-자작시-

by 안세아

잠에서 깨기 싫어 눈을 계속 감고 있었던 날들이 있었다.


2025년 2월 2일


다시 운명을 믿게 된 순간이었다.


높다란 담벼락을 쌓은 돌담 사이,

비집고 들어오는 남향 햇살.

그들을 향해 기지개를 뻗는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꽃들은 흙을 딛고 지나다니는 바람의 길목에 흔들리며 서 있었다.

주어진 환경에 맞는 온도를 끊임없이 체득하며, 피고 지며 살아왔다.


전생이 있다면 어떤 꽃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꽃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마 꽃 자신뿐만이 아니었을까?


요즘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프리랜서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건강하게 나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기준을 정해 놓는 일이 중요해졌다.

많은 역할 속에서도 만족하며, 흔들림 속에서도 평정심을 되찾고, 나로 살아가는 일은 사랑하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닮은 꽃은 무슨 꽃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와 닮은 꽃?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유치원 바로 옆, 연못에 피어있던 연꽃이 떠오른다.

효녀심청이가 빠졌던 곳이 아닌가.
그 꽃 안에서 피어났던 수많은 상상들.
연꽃이란?
물에서도 피는 꽃.
비바람이 불어도 피어나는 꽃.
낮에는 피었다가,
밤에는 지곤 하던 꽃이라고 알고 있다.


연꽃


-안세아-

사랑 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당신

어디에 있나요?


아무도
당신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지요


연못 깊숙이
쌓여만 간 진흙탕


구슬비 뚝뚝

연못에 떨어지고,

연잎 위 떨어진다


먼지에 붙은 씨앗 하나
곧게 뿌리내린다

당신의 사랑만큼

구슬비 뚝뚝
연못에 떨어지고

진흙 위 꽃싹 틔운다

바람의 허밍처럼

한 송이 사랑

피어난다.



2026년. 2월 16일


설 연휴 첫날.

아침 일찍 일어나 떡을 사러 갔다. 친정어머니 집에 갖다 드리러 가던 길이었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근처에 차는 세울 곳이 없었다. 다른 때와 달리 살짝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간 자리에서 어떤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어르신께서는 제주 사투리를 쓰시며 말하고 있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주변에 관광호텔이 있어도 그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리라는 짐작만 해보았다.

내가 알아들은 건 "밭에 가켄 나 오랜 해 신디 아무도 어성"이라는 말을 반복하신다는 것이었다.

귀여운 잠옷 바람이셨다.

지퍼를 올려드렸다. 추울 것 같았다.

말을 횡설수설하신다.

극세사 잠옷을 입고, 밭에 가지는 않는다.

나는 밭에 가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 왔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이 오기 전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할아버지께 "괜찮아요. 괜찮아요."말해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집을 모른다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괜찮아요."토닥이듯 말했다.

다행히 경찰이 곧 도착했고, 집을 찾아드리는 과정을 지켜보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못 보고 다시 집에 와야 했지만, 그날 나를 거기로 데려가 준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부디 사시는 날까지 가족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좋겠다.

그것에 감사해 본다.


그리고, 다음 날인 오늘 오전, 친정어머니를 따로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비록 떡은 상에 올리지 못했지만, 아쉬워하는 내게 괜찮다 하셨다.


어쩌면 자신의 자리도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자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감사하기로 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들.

지나온 시간들 모두 최선을 다했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내가 타인에게 했던 말들이 내게 말하지 못한 말들이었던 것 같다. 즉, 내가 듣고 싶은 단순한 말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사랑이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해주 듯이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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