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
26년 3월 13일
첫 제자가 다녀간 자리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졸업한 학생들이 한 명씩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 명씩, 한 명씩.
거의 이십 년이 흐른 뒤였다.
그래서 나는 가르침을 운명처럼 이어가게 되었다.
내가 가르치던 첫 제자가 있다. 내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외국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 아이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학원의 첫 제자를 수업이 끝난 뒤에도 남겨 두고 회화를 가르쳤다.
물론 원장님과 학부모님의 허락을 받고서였다.
아이는 안경을 쓴 귀여운 초등학생이었다.
외국에 가기 전까지 나는 남겨서 가르쳤다.
그리고 학원반 친구들과 함께 공항에 배웅 갔던 날을 기억한다.
울지 않으려고 참았던 순간.
아이의 그 표정도.
영어를 좋아해서 시작한 일. 그리고 용돈과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그때 처음 내가 받던 월급은 한 달에 60만 원이었다.
하루 여섯 시간을 가르쳤다.
아이들 떡볶이 값은 큰 컵에 오백 원 하던 시절.
나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이들 간식을 사 주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사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간식을 사주는 일이 나에게도 행복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나는 학원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이래, 초등학생에서 중고생, 그리고 토익까지 가르칠 수 있도록 확장시켜 나가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었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는 어느덧 서른 즈음이 되었다.
한국에 내려와 학원 강사를 하다가
제주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아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정말 사명감이 많으신 것 같아요.”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지나친 사명감이라는 것도 때로는 독이 된다는 말을 그때의 나는 제자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자신이 일하던 학원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다시 찾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그 용기를 응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도 제자에게는 충분히 성장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사명감과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보낸 시간들.
그리고 잊고 있던 소중함을 아이들이 가끔씩 찾아와 다시 알려주고 갔다. 운명처럼.
26년도. 3월.
어느 날 아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염색하러 서울에 오세요.”
그리고 이번 주 그 아이는 잠시 제주를 들리며, 공부방에 인사를 하고 갔다.
전처럼 어린 시절의 미소를 그대로 가진채 말이다.
다시 설렘을 주고 간 아이.
내게는 그런 멋진 첫 제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