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경쟁과 비교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1

나는 한국 사회에서 경쟁과 비교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 (1)

by 김수빈


나는 현재 뉴질랜드에 초등 아이와 단기스쿨링을 와있다.

처음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는 단기 스쿨링을 오는 한국 엄마들은 교육열이 매우 높은 엄마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현지에 와서 한국 엄마들과 교류하며 느끼는 점은 오히려 '한국 교육 시스템을 지양하기 때문에' 이 곳에 온 케이스가 많다는 것. 나 처럼.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한국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목표지향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사람이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목표가 생기면 야생마처럼 폭주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성취에 따른 보상체계에 대한 만족감도 꽤나 크다.
그런 나에게 잘 맞는 곳은 한국이라 생각했고 자극적이고 스피드한 한국 사회를 좋아했다.

하지만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며 내가 가진 에너지와 별개로 아이에게 주고 싶은 환경은 또 달랐다.
나에게는 한국이 너무나 좋고 잘 맞지만, 아이에게 주고 싶은 환경은 결코 아니었다.
나 역시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고, 또 청소년들을 상담하며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 환경을 경험하며 느끼는 것은 늘 단 하나, '이런 극단적인 경쟁과 비교 속에 아이를 밀어 넣고 싶지 않다.'였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거나 틀렸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러한 교육이 있었기에 한국 사회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분명한 결과로서 보여지는 장점들도 존재했다.
그러한 교육을 분명히 누려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 공교육, 사교육을 적절히 잘 누려온 사람이 대표적으로는 우리 남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장면에서는 나 역시 야만적이라 느끼면서도,
또 다른 장면 안에서는 이러한 경쟁과 비교, 성취와 목표지향적인 환경을 매우 잘 활용하고 또 때론 즐기기도 하는 사림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것이 잘 맞는 사람 역시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이 육아나 교육에 있어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교육을 빡세게 굴리거나 매우 앞선 선행을 시킨다거나, 또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홈스쿨링을 하는 사람, 해외 조기유학을 보내는 사람 그 누구도 오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에 따른 장단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저 한국사회는 내가 주고 싶은 양육 환경은 아니라는 것,
내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아이를 양육하며 유난이라는 시선을 종종 받았다.
왜 공부 사교육은 하나도 안시키세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굳이 그렇게까지..
너무 해외에 대한 로망이 있는거 아니에요?
그러다 한국 사회에 아이 적응 못해요.
아이 인생 생각하면 빨리 시켜야죠. 달려야죠.
나의 양육관이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내 신념대로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만 이렇게 키운다고 나도, 아이도 사회적으로 수용받을 수 있는 분위기인가?
아이만 이렇게 자란다고 해서 경쟁과 비교 사회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나만 경쟁과 비교에 밀어넣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정말 경쟁과 비교 없이 자랄 수 있는가?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양육이 아이에게 혼란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이라기 보다는 외부구조와 내부구조에서 오는 괴리감의 충돌이었다.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환경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길 바라는 것이었다.
그 행복이 한국에 있다면 한국에서 사는 것도 좋았다.
그것이 해외에 있다면 해외에 나가 나와 멀리 떨어져 살아도 좋았다.
그게 무엇이든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길 바랐다.

한국 사회에서의 나는 목표와 성취를 향해 야생마처럼 폭주하지만
한국의 경쟁과 비교 속에서 그것을 이루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는 달랐다.
경쟁과 비교와 별개로 내 개인의 목표와 성취를 세우고 달려나가는 것을 좋아했고
남이 어떠하든 내 속도와 내 방향에 맞춰 폭발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것은 빠른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나름 잘 통했고, 또 나와 잘 맞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매우 만족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경쟁과 비교 속에서 아이를 이렇게 키우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과 행복을 바탕으로, 아이가 스스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나가길 바랐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러한 환경을 갖추어주고자 해외 육아를 계속 검색해왔던 것 같다.
우리는 현재 뉴질랜드에 단기 스쿨링을 와있다.

내가 겪은 뉴질랜드는 느리고 자연친화적이며, 또 느긋하고 여유있는 삶이었다.
그러한 삶 안에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정서적 안정을 느끼며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교육의 목표는 목표와 성취가 아니었다.
경쟁과 비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도 수준별로 그룹을 나누어 다르게 진행된다.
학년이 같음에도 공부 수준이 제각각이다.
아이의 속도와 방향에 맞추어 진행되는 교육인 것.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매우 구조화되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반면,
이 곳은 교과서조차 없는, 담임 재량에 따라, 아이 수준에 따라 교과과정이 개개인에게 맞춰 달라진다.

경쟁이나 비교없이,
괜찮아, 너는 너만의 속도가 있고 모두가 다른 사람과 같진 않아.
천천히 가도 돼.
너의 행복은 어디에 있니? 넌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니?
같은 메세지들을 던진다.

참 이상적인 교육인 것 같지만 여기에도 분명한 단점은 존재한다
정서와 문제해결력, 사회문화적 교류, 배려와 존중 같은 것들만 너무 강조하다보니
한국 사회에 돌아왔을 때, 혹은 다른 경쟁 사회(특히 미국과 같은)에 뛰어들었을 때
아이가 이것을 견뎌낼 능력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만약 뉴질랜드에서 쭉 머문다고 하더라도
성취압력이 너무 없다보니 그냥 저냥 현재 삶에 안주하며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며 살아가게 될 수 있다는 리스크도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아이가 학교를 다니며 고민이 부쩍 많아졌다.
나는 아이가 아동청소년기 시절만 해외 생활을 경험하게 하고
결국은 베이스를 한국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데,
해외 생활을 경험한 아이가 한국의 경쟁, 비교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대부분의 해외 생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들과 같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또 하나,
빠르고 효율적인, 성취지향적이고 목표지향적인 나에게는 뉴질랜드가 딱히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여 잘 맞다고 느끼는 내게 이 곳 뉴질랜드는 조금은 따분하고 무료한 곳이기도 했다.

죄다 자연 뿐이고, 갈 곳이라고는 제한적이고,
밤이 없는 도시 한국과 달리 저녁 7시면 아이들이 bed time에 들어간다.
진짜 아이들에게 다른 의미로 밤이 없는 도시다. 자느라 밤을 즐길 틈이 없음...ㅋ
자극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심지어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최근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치치출신 할아버지가 오클랜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 I hate !라고 했는데 한국에서 온 나에게는 이게 사람이 많다고..? 한국오면 기겁하시겠네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자극없고, 느리고, 여유있고, 느긋하고 정서적으로 너무너무 좋겠지만
엄마인 나한테는 이건 또 다른 얘기더라.

생산적인 것을 늘 추구하며 살아오는 나에게는 조금은 따분하고 지루한 도시였다.
한국에서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늘 지루해지는 내게
이 곳의 삶은 뭔가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표현하자면 빠르게 급류하는 한국 사회와 달리
유유자적 물 위에 떠있는 나뭇잎 같달까?
이 곳에서 일이라도 하면, 공부라도 하면, 생산적인 무언갈 하면 좀 나으려나 싶기도 한데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고 등교시키고 사람들이랑 영양가없는 대화만 하다 하교하고 끝나는
전업맘의 삶에 점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루종일 게임과 놀이로 공부를 하고 와서
신나게 신체를 쓰며 뛰어놀고
또 다문화 아이들과 함께 뒤섞여 교류하는 법을 배우고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아이를 보면 또 모든 나의 고민이 상쇄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나의 괴리감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나의 성향에 잘 맞는 곳은 한국사회고 나는 이 곳을 꽤나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주고 싶은 환경은 뉴질랜드 사회와 같은 곳이다.
정서적 안정과 행복, 자극없고 느리지만 소소한 행복감.

이 괴리감 속에서 아이와 내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보내며 고민이 많았다.


글이 길어져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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