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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Dec 30. 2020

극단에 치우친 위험한 육아


검증되지 않은 육아법이 육아에세이를 통해 많이 공유되고 있다. 우리는 무분별한 정보속에서 그것을 판별없이 받아들이고 맹신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초보엄마였으니까.

세상에 육아이론은 너무나 많고 육아정보도 너무나 많았다. 당시 초보엄마의 시선으로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저 도서관에서 손에 짚이는 책을 읽으면 그것이 나의 육아관이 되었으며, 그것만이 답이고 진실인양 내가 접한 정보의 환상속에서 육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내 삶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어떠한 책을 읽고, 어떠한 정보를 접하는지가 특히 육아를 처음 하는 초보엄마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육아를 하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정보들에 의한 폐해를 겪어왔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크게 맹신했던 두가지는 '책육아'와 '가정보육'이었다.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좋은 엄마의 강박에 휩싸여 육아서적을 읽으며 공부해왔고, 아무런 정보없는 백지상태의 예비엄마였던 당시 읽었던 책 중에는 '책육아'에 대한 글들이 유독 많았다.

저자소개란을 읽어 보면 유명한 육아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운영자에서부터 책관련 일을 하고 있는 엄마들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저자들이 있었고, 그러한 저자소개만으로 나는 그 저자가 전문가일 것이라는 신뢰감을 가지고 아무런 의심없이 정보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육아에도 유행이 존재한다. 내가 아이를 키우던 당시에는 책육아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고, 육아서적 역시 트랜드를 반영하듯 책육아관련 서적이 출판시장에 많이 나와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책육아관련 서적을 많이 읽게 되었고 백지상태의 뇌는 '책'만이 정답인것 마냥 시냅스가 강화되어 버린듯 했다.


나는 태교도 책으로 했고, 아이가 신생아 시절 일때부터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기나 하는지도 모르겠는 신생아를 데리고 글씨도 없는 초점책을 읽어주었다.

"우와 분홍색 꽃이야. 이건 뾰족뾰족한 세모네? 동글동글 동그라미도 있어."

아이를 향한 과도한 자극이었다. 불안정애착 중 회피형애착을 형성하게 하는 육아법에는 거부적양육, 방임적양육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열성적인 부모에 의한 과도한 자극'이 불안정애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그저 아이에게 다양한 자극과 환경을 노출하면 아이는 똑똑해 진다는 육아정보만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 든 개념이 그것뿐이니 내가 보고 판단하는 육아세계는 좁은 시각안에서의 편협한 육아일 뿐이었다.


아이가 6개월즈음 되었을 때였다. 영유아발달검사를 시행했는데 불안정애착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왜? 왜지? 당시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좋다해서 그렇게 자극을 주고, 다양한 환경을 노출하고 쉬지 않고 말걸어주고 놀아줘 왔는데 왜? 내 육아법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임신도 전부터 육아서적을 쌓아놓고 읽어왔던 열혈맘이 아니었던가.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어 힘들어 하던 중, 하루는 유아전집을 판매하는 한 영업사원에게서 "엄마가 너무 책만 읽어주신건 아닌가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제서야 뒷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원래 아이들은 책보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이 정상아닌가. 우리 아이는 아주 유아기때부터 장난감엔 무관심하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돌도 이전부터 책만 읽어달라고 주구장창 들고왔고 아이가 원하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읽어줬다. 책육아 서적에서 그렇게 하라더라. (물론 그 책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어쩜 그렇게 책을 좋아하니, 영재인가보다, 천재인가보다, 라며 부러워 했지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6개월 주기로 검사했던 애착검사에서는 늘 불안정애착이 의심된다는 결과뿐이었다.

영업사원의 말마따나 엄마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책'이었으리라. 돌도 안된 아이가 그것을 느끼고 책만을 들이 밀었던 것이었다.


그때는 책이라 함은 전문가만이 쓰는 것인 줄 알았다.

당시 읽던 육아서적을 뒤늦게 살펴 보았을때 그 저자들 역시 그저 커뮤니티 운영자일뿐, 유아전집 영업사원일뿐, 한 아이를 키워본 육아선배일 뿐이었고 저자소개란에는 그럴 듯한 경력인 것처럼 잘 포장되어 있을 뿐이었다. 책육아의 전문가가 아니라 어쩌면 마케팅의 전문가일지도 모르겠다.



책육아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의 경우도 확실한건 늘 또래보다 빨랐다. 베일리검사에서 인지, 언어 외 다양한 영역에서 또래보다 1년이상 빠른 결과가 나왔고, 검사자가 "N세가 이걸 할 수 있단 말이야? 이걸 성공한 아이는 처음 봤네요" 라고 놀랄 정도로 빠른 아이였다.

책육아는 인지와 언어 외 다양한 영역을 발달시킨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정서와 사회성은 평균에 미치지 못했고 엄마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놓았다.

모든 것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책을 읽히는 무수히 많은 시간동안 나는 그 나이대에 중요한 다른 것들을 간과한채 놓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다른 또래 친구들에게서 사회성이 드러날 시기가 되니 우리 아이의 사회성이 남다르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또래아이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또래모임에 가도 엄마와만 상호작용하고 다른 아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36개월이 지나서는 오히려 함께 놀고 싶어 다가오는 친구들에게도 소리를 지르며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책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애착도 기질과 환경의 상호작용, 나의 비행역시도 성격적 측면 중 반사회성에 외향성과 편집증적인 각각의 성격들이 합을 통해 상호작용을 하여 겉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아이의 애착, 정서, 사회성 등의 문제도 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아이는 같은 육아법을 적용했을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며, 어떤 아이는 초독서증이나 아스퍼거증후군(후천적자폐)과 같은 가벼운 신경증적 문제부터 정신병리까지 다양한 증상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무엇이든 극단에 치우친 육아는 문제가 된다.

책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가정보육, 극단적 영상물 차단, 극단적 건강식, 극단적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등이 문제를 발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능적이고 건강한 삶이란 양극단에 치우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양극단의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함이야말로 기능적이고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양육태도검사를 예로 들면 부모의 성취압력이 너무 낮아도 문제, 칭찬이 너무 높아도 문제, 애정표현이 너무 높아도 문제가 된다고 한다. 아이와의 경계 또한 유연하게 유지해야 하며 많은 육아서적만 봐도 완벽한 100점짜리 부모보다 70점짜리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말한다.

극단적 사고는 결국 경직된 사고일 뿐이고 그것은 아이를, 부모를, 육아를 힘들게 만들고 왜곡된 사고를 갖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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