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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an 29. 2021

네까짓게 상담사라도 되려고?

상담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자립이다. 평생 상담을 받으며 살 수는 없기에, 상담사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상담시작부터 상담사는 결국 목표는 자립임을 이야기했다.


상담 7회기즈음이 되자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10회기를 계획하고 구조화하여 진행했던 상담이었기에 10회기만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좋아져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고 고작 2~3회기 남은 시점에서 과연 내가 남은 회기안에 모든 것이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10회기가 끝나면 오롯이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역경임을 직시하게 되자 마음이 불안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10회기 안에 나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개선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상담은 기저의 핵심사고를 바꾸고, 종결 이후 배워온 기술을 삶에 적용하며 전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담사에게 "10회기를 다 채우고도 제가 상담을 더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나요? 10회기만으로 좋아질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불안감을 종종 내비쳤었는데 상담사는 확신의 말을 전하진 않았지만 그 말투에서 '너는 할 수 있어.' 라는 느낌을 주었고 그것은 큰 힘이 되었다.


7회기즈음되니 나는 자립의 한 방법으로 심리학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스스로도 깜짝 놀랄만한 생각이었다. 어쩌면 남사스럽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줌마가 다 되어서 대학이라니, 심리학과를 나오면 뭐? 네까짓게 상담사라도 되려고? 니가 감히 심리학 공부를 할 수나 있겠어? 코앞의 네 일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누가 누굴 상담해주겠다는 거니?' 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상담사에게 말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상담 막바지에 다다라서 상담사에게 어렵사리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나의 취약함을 모두 드러내고, 나의 밑바닥까지 보여준 상담사였기에 심리학 공부에 대한 소망을 말하기가 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상담사가 겉으로는 티내지 않아도 '니 문제나 신경 써, 니가 할 수 있겠어? 아무나 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가질까봐, 일반인도 아닌, 전문가의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낸다는 것이 굉장히 수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름의 방어적인 전략이었던 듯한데, 농담의 느낌을 살짝 섞어 멋쩍은 느낌으로 웃으며 가벼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상담사가 되려는건 아니고 자립의 방법으로 공부가 해보고 싶다.' 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는 굳이 쓸데 없는 말은 오히려 나의 갈망을 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상담사는 전문가였기에 당연히 그러한 나의 방어까지 눈치챘으리라 생각한다.


상담사의 반응에 대한 나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농담식의 이야기였기에 함께 웃음으로 가볍게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상담사는 아주 진지한 태도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 덕에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상담사는 자립의 방법으로 공부를 선택했다는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알아본 학교가 있는지, 그 학교가 어떠한지, 그 외의 다른 방법에 대해서도 정보를 제공해 주었고 마지막으로 심리학 공부를 해서 선한 영향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행사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말로서 상담은 끝을 맺었다.


상담사의 진지한 태도 덕분에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심리학 공부에 대한 소망은 확연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당시 내 주변에는 심리학을 전공했거나, 심리학과에 진학중이거나, 현직 상담사로 있는 지인들이 꽤 있었다.
아이를 양육하며 공부까지 해야 하는지라 제대로 꼼꼼히 알아보고 결정을 해야 했기에 여러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다녔다. 하지만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고 반은 강추를, 반은 "네가 생각하던 심리학이랑 많이 다를 거야." 라는 조언을 했다. 그러한 지인들의 극명한 반응이 더욱 헷갈리게 만들었지만 상담사의 지난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한번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그냥 한번 툭 해보세요. 한번 해보고 괜찮으면 쭉 하는거고, 아니면 그만 두는거고.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니까 시작이 어려운 거에요. 굳이 완벽할 필요 있나요?'
그랬다. 완벽하게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으로 나는 시작조차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렇게 32살의 나이에 뒤늦은 용기를 내어 심리학과에 진학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육아로 인해 끝이 났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생은 그렇게 제 2막을 막 펼치려 하고 있었다.
암울했던 나의 미래는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고 내 인생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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