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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un 16. 2021

야마가 돌았다.

심리치료를 멀쩡히 잘~ 받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이미 9회기까지의 상담이 있었던지라 내 심리상태는 매우 평온해져 있었고, 심지어는 너무나 평온한 상태의 연속에 오만하게도 '내가 심리치료를 왜 받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상담사에게 종결을 알려야 겠다고 생각한 어느 날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축제현장에 놀러가 있던 우리 가족, 그리고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돌을 던지고 놀고 있던 아이들.

평화로운 그 시간 속에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고개를 들어봤을땐 귀를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고 있는 내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들은 아이의 울음 소리만 듣고도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비명과 같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옆에 있었던 남편의 대답은 '어딘가에서 커다란 돌이 날아왔고, 아이의 귀를 그대로 찍어 버렸다.' 였다.

분명 그 주변에서 돌을 가지고 장난치던 누군가의 돌이었을 것이며, 대략적인 상황파악이 되자 화를 넘어선, 야마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성을 잃고 아이를 달래기는 커녕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주변 아이들에게 "너야?! 너야?! 누가 돌 던졌어!!!" 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섞인 비명소리에 이미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던 터라 주변 아이며 어른이며 할 것 없이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있었지만 그런건 전혀 신경쓰이지도, 아니 사실 이성을 잃은 상태라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멀리서 날아온 돌이었기에 누가 던진 돌인지도 모르던 남편에게까지 화가 났고, 범인을 잡아내면 내 가만 안두리라며 어마어마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와서 괜찮냐며 우리 아이를 살피기 시작했고, 범인과 엄마가 나타났다. (아이에게 범죄의 피의자인것 마냥 범인 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당시의 심경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그러했다.) 

상대 아이는 굳어 버린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스스로가 얼마나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지 느껴질 정도였고, 소리를 지르는게 나았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낮고 무서운 말투를 하고서 그 아이를 향해 다가가며 협박에 가까운 추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죄송하다며 말로 좋게 해결하자며 당신의 아이를 해하기라도 할까 아이와 내 앞을 가로 막아섰다.

이성을 잃으니 아이고 뭐고 보이지 않았다. 정말 미성숙한 생각이었지만 똑같은 돌(성인손 두개만한 크기였다.)로 그 아이의 귀를 똑같이 찍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상황에서 당장 내 아이를 달래고 차분히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거늘, 내 아이도 뒷전이었다. 그저 범인을 찾아 박살내 버리고 싶은 생각이었을 뿐이다.

상대 아이의 엄마가 고개를 조아리며 계속해서 죄송을 이야기했지만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아 어우씨!! 아오!! 짐승과 같은 소리를 내며 씩씩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기도 하고, 상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당시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대엄마의 계속된 사죄와 폰번호 찍으라는 나의 말에 내 폰을 가져가 번호를 찍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상담사는 그 상황에서의 분노는 당연한 반응이나 그것을 폭발로서 표출해낸 것은 너무나 잘못된 것이며 나를 해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폭발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을 분출해 실제 장기등을 녹이기도 하고, 사건화를 만들기에도 충분하다고 했다.

다행히 상대엄마가 너무나 제대로된 사과와 반응을 보인 상식적인 사람이었기에 사건화가 되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상식밖의 사람을 만났다면 사건화되기 충분한, 그리고 둘 중 하나는 더욱 심한 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타인에 의해 감정이 폭발했다는 것은 내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든 감정의 통제권은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며, 즉 감정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분노라는 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기능적인 감정이라면 폭발이라는 것은 사건화를 만들기 충분한 역기능적인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껏 나는 육아를 하며 아이에게만 국한하여 감정조절하는 법을 연습해 왔었다. 타인은 나를 침해하거나 공격할 일이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담사는 아이 뿐 아니라 남편, 나아가 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하여 연습해야 추후 어떤 사건에 휘말려도 분노는 일어날 수 있지만 폭발은 나의 주도로 컨트롤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부모가 계속해서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 또한 사회에서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대응할 줄 모르고 피하기만 하며 자랄 수 있다고 이렇게 분노를 표현해 내는건 맞지만 폭발이 아닌, 화를 세련되게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집에서 화를 많이 내는 부모일지라도 사회에서 회피만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사회에 나와 화를 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가정에서의 부모의 모습, 사회에서의 부모의 모습으로 가정에서 내가 어찌 해야할지, 사회에서는 어찌 처신해야할지를 부모를 보고 학습한다고.

그렇기에 나의 분노 폭발 또한 아이에게 화에 대한 정당화를 가르칠 수 있어 아이에게 좋은건 아니라 했고, 그래도 다행이었던건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었기에 엄마의 폭발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외부자극이 있을때 우선적으로 감정의 인지, 그리고 감정과의 분리를 통해 내 감정은 내가 다스리고, 좀 더 세련된 표현을 아이에게 보여주는것이 필요하다 하였고 그래야 우리 아이도 사회에 나가 부당한 대우에 어찌 처신을 해야하나 올바른 방법을 모델링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그 아이에게 사과받고 싶냐 물어보고, 상대아이를 데려와 정식으로 사과를 시켰는데 그것 또한 아이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것이라며 아이는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은 직접 져야한다는 것임을 '사과'를 통해 배우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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