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육아서를 정말 많이 접해왔다.
육아서 뿐이랴, 각종 육아관련 다큐멘터리, 교육영상, 티비프로그램도 찾아보면서 아이를 잘 키우기위해 고군분투 해왔었다.
심지어는 아이를 잘키워보겠다고 심리학과에 편입학하여 학부공부를 하였고, 학부에서 아동학과 수업을 들어가면서 육아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한 많은 육아정보들 속에서 전문가들은 이야기했다.
'건강한 아이는 밝고, 활발하고, 웃음이 넘치고, 활동적이고, 사회성이 있고, 친구들에게 잘 다가가고, 표현을 잘하고 ....... '
누구나 아는 딱 그러한 '아이상'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전문가들의 건강한 아이의 기준에 현혹되어 어리석게도 그렇지 못한 내 아이를 문제아라 치부했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명확한 기준에 맞춘 건강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아이가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지 않으니 문제가 있는거라 생각했다.
아이가 활동적이지 않아 문제가 있다 생각했다.
아이가 소심해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건강한 범주에 속하지 못하니 당연히 문제일 것이라 치부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내 기준, 그리고 전문가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런 내 아이에게도 장점은 있었다.
인지적으로 빨랐고, 전문가들이 놀이의 꽃이라고 말하는 역할놀이보다는 머리를 쓰는 놀이를 좋아했다.
소심하고 겁이 많았지만 그만큼 주위의 위험을 빨리 감지했고, 조심성이 많아 잘 다치지 않았다.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친한 친구와의 우정은 그 깊이감이 매우 깊었다.
그런 장점을 두고도 나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아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아이의 장점은 뒤로 한채, 아니 어쩌면 그 장점들 마저도 문제라고 낙인찍어 버린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어리석게도 아이를 향해 필터를 씌운듯,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늘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7세가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누구나 이야기하는 건강한 아이상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여전히 소심하고, 여전히 눈물이 많고, 여전히 겁이 많다.
여전히 혼자 노는것을 즐기지 않고, 여전히 역할놀이의 비중은 많지 않다.
여전히 낯선 친구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색해 하고, 여전히 활동적이지 않다.
하지만 더이상 아이에 대한 걱정이나, 아이를 문제아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
6년간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이제서야 깨달았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건강한 아이상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 것인가.
기질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서, 모든 기질의 아이들에게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 아이상의 기준이 적절한 것인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기질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편의상 세가지, 혹은 네가지 기질로 많이 분류한다지만
나는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다양한 고유성이 존재하는데 그 고유성을 다 무시하고서
'건강한 아이란 이러한 아이야. 아이라면 이래야 해.'
하고 정의내릴 수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혼자 놀이가 안되면 독립심이 떨어지고, 몰입을 경험할 수 없고, 문제해결력, 내적동기 등 아이가 자라면서 키워야 할 다양한 힘을 기르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전문가들은 역할놀이를 통해 아이는 사회성을 발달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고, 정서를 증진시키기에 놀이의 꽃이라고 이야기 했다.
또 인지적인 부분 (예를 들면 수나 한글, 영어와 같은)이 들어가면 진정한 놀이라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의문이 생겼다.
위에서 말하는 다양한 능력들은 꼭 역할놀이를 통해서만, 꼭 혼자 놀이를 통해서만 이루어 지는 것일까?
혼자 놀이, 역할놀이가 아닌 다른 부분을 통해서도 증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일까?
아이는 이제 7세가 되었다.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은 예민하고, 섬세하고, 관계중심적이고, 불안이 높고, 정적이고, 인지적이다.
물론 이것도 딱 내 아이는 이런 아이야. 라고 정의내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예민하다고 해서 100프로 예민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민한 면도 있지만 무딘 면도 있기에
스펙트럼안에서 예민쪽으로 조금 더 기운 아이야, 섬세함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있어, 인지적인 부분이 조금 더 발달해 있어. 라고 정의내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어쨋든 6년을 키우며 깨달은 것은 내 아이는 이런 면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높은 아이였고
기질적으로 이런 면을 타고난 아이에게 '넌 왜 다른 애들처럼 활동적이지 못하니? 넌 왜 혼자 놀지 않니? 넌 왜 역할놀이를 안하니? 넌 왜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않니?' 라고 다그치는 것이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건강한 아이상.
어쩌면 건강한 아이상이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기 쉬운 아이상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놀면 부모도 수월하고, 역할놀이를 통해 '보편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능력들을 키워가고,
사회적이면 세상 살기가 조금은 더 편해질테니 말이다.
건강한 아이라는 정의보다는 어쩌면 세상에 살아가기, 적응하기 편한 아이상이 아닐까 싶다.
내 아이는 그러한 아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내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이 있고
그 고유성에 맞게 아이는 자신의 능력을 발달시켜 나가고 있다.
꼭 혼자 놀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스스로 수면독립을 이야기하며 독립심을 키워가고 있고,
혼자 놀이를 통하지 않더라도 인지적인 부분이나 미술과 같은 본인의 관심영역에서 몰입을 경험하고 있다.
꼭 역할놀이가 아니더라도 부모와의 유대를 통해 사회성을 키워가고 있다.
아이가 7세가 되니 나는 비로소 전문가들이 말하는 육아관에서 자유로워졌다.
사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답도 너무나 다양하다.
아동학자, 심리학자, 교육학자, 언어학자, 수학자....
적기교육, 조기교육, 선행, 영어노출, 정서 다양한 방면에서
전문가들의 견해도 너무 다양하게 갈린다.
선행이라는 부분에서만 봐도 그러하다.
심리학자, 아동학자들은 아이의 정서와 뇌발달을 생각하여 선행을 반대하는 분들이 많지만
수학자들은 또 의견이 다르다.
수학자들은 한학년의 선행을 추천하며 이러한 선행을 통해 아이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키워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이른 영어노출이 모국어를 방해하고 언어에 혼란을 가지고 온다는 언어학자도 있지만,
또 어떤 전문가는 유아기 영어노출이 적기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의 견해 중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기질은 다양하고, 내 아이의 기질에 맞는 육아법, 교육법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말하는 아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할 것도, 문제일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참고만 하되, 내 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고유한 아이만의 방법으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건강한 인간상에 나 역시 부합하지 못하면서
건강한 아이상에 내 아이가 부합하길 바라는 것,
굉장히 모순이지 않은가.
내 아이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이 고유의 방법으로 잘 자라주고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아이상 대로 세상에 조금 쉽게 적응하진 못할지라도,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조금은 더디더라도 아이는 아이만의 방법대로 세상에 적응하고 있고, 그것이 오답이라 생각지 않는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기질이 있고
100가지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