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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Feb 09. 2022

내 아이가 똑똑한 것은 전적으로 내 덕이다.

지금에서야 고백컨데,
내 아이가 또래보다 빠르고 똑똑하고 남다른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크게 착각한 적이 있었더랬다.
그리고 더 큰 착각은 아이의 그러한 부분은 엄마인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 졌으리라 생각했다는 점이다.


양육환경이, 부모가 아이를 만든다고 생각했고
아이에게 엄마로서 최선의 노력을 쏟아왔다.
신빙성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ENTJJJJJJ 이다.
누구보다 계획적이고 누구보다 목표지향적이다.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오늘은 아이와 이것을 해야만 해. 와 같은 단기적인 계획 뿐만 아니라 *세에는 스스로 샤워하기, 배변처리, 연산을 가르쳐볼거고 *살엔 어떤 학습을, *살엔 어느 학원을 보내볼지까지 장기적인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육아를 해왔다.
물론 6세까진 탱자탱자 놀렸지만, 그 놀린다는 것조차도 나의 계획의 일부였다.

이러한 나의 계획 안에서 아이는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자라주었다.
FM같은 아이였고, 어딜 가서도 칭찬받는 아이였다.
상황에 따라 자신을 통제하기도, 조절하기도 할 줄 알았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아이였기에 외부로부터 나쁜 피드백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분에 넘치는 과분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왔던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당시엔 4세때 한글을 못떼는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아이들이 이해가지 않았고
주의 산만한 아이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수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해가지 않았고
연산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이해가지 않았고, 그림을 잘 못그리는 아이들이 이해가지 않았고, 어른 젓가락을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해가지 않았고 가위질을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흥미없는 아이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부모가 노력하면 금방 해내는 것들인데,
부모가 환경을 제공해주면 흥미를 가질법한 것들인데,
부모가 관심이 없고 노력이 부족하다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지만 당시 솔직한 심정은 그러했다.


팔땡이가 인지적으로 빠르다는 칭찬을 받을 때면 우쭐했다.
양육자신감, 양육효능감이 지나치다 못해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었고,
베일리검사에서 또래보다 2년 앞선다는 결과를 받아 들었을때는 내 육아법이 정답이고, 부모로서 나는 최고라 자부하며 한껏 들떠 있었다.
어머님께서 "육아에 너무 힘쏟지 마라, 공부할 애들은 다 알아서 공부한다." 라고 했을때도 '잘 모르는소리, 어머님때랑 시대가 달라요. 어머님이 더 신경썼다면 남편이 더 좋은 직장에서, 더 좋은 위치에 있을 줄 누가 아나요?' 라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6년간 육아를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유아기때 빠른건 사실 크게 의미없다는 것.
팔땡이가 조금 빨랐던건 사실이나,
내가 생각한 만큼, 영재적인 부분은 없다는 것.
팔땡이도 다양한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
(호기심이 충만한 스타일도 아니고,
뭐 하나에 깊게 빠져들기보단
얕고 넓게 다양한 부분에 흥미갖는 스타일에,
신체적인 활동을 즐기지 않는다.)
지금껏 사교육없이 아이가 잘 받아들인 것은
기질상 차분하고, 관계지향적이라 대화를 즐기는 아이이기에 무엇이든 엄마가 차분히 앉혀놓고 알려주기 편했고, 책을 읽어주기도 편한 아이였던 거다.
거기다 대화 좋아하고, 가르치기 좋아하는 엄마의 성향과
아이의 성향, 즉 엄마와 아이의 합이 잘 맞았던 것이 대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팔땡이가 아니었어도 내가 아이를 이렇게 가르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글쎄다.
그냥 기질적으로 아이는 가르치기 편한 아이였을 뿐이고
활동적이거나 자극추구형 혹은 또 다른 기질의 아이를 낳았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라떼는 책육아를 통해 아이를 스카이에 보냈니 어쩌니 하는 육아선배들의 서적들이 많았다.
책육아의 힘, 부모의 영향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과연 세상 모든 아이에게 이걸 적용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부모의 아이가 가르치기 수월한 아이의 기질을 갖췄거나, 타고나길 똑똑한 아이였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육아법이 모든 아이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도, 모든 아이가 받아들여 줄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7세가 되고나니 부모인 내가 아이를 만들었다기 보단 아이는 기질대로 자라주었을 뿐이었고, 지금껏 그걸 내 덕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팔땡이가 더욱 객관적으로 보인다.
팔땡이는 호기심 충만하진 않지만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다.
팔땡이는 수감각, 언어감각, 미적감각은 있지만 신체적인 부분이나 사회적인 부분에서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팔땡이는 기질 자체가 불안이 높아 안정적인 정석의 길을 따라가는 걸 원하는 아이라 가르침이 쉽지만, 자극을 추구하지 않아 스스로 모험하기를 꺼린다.
팔땡이는 소근육이 빠르게 발달했지만 대근육이 빠르지 못하다.
팔땡이는 지식에 대한 욕구가 높아 다양한 방면에 지식을 쌓는 것을 즐기지만, 그 깊이감은 부족하다.
팔땡이는 주의집중력이 좋지만 호불호가 강해서 싫어하는 것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똑똑한 아이,
그 정의도 굉장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부분인것 같다.
누구든 자신이 잘하는 것이 있듯이
팔땡이는 언어와 수, 소근육이 빨랐고
마침 그것이 발달하는 그 시기에 빨랐다보니
그저 도드라지게 보여 또래보다 똑똑한 아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같다.


아이들마다 속도가 다르고 때가 다르다.
시작이 빨랐다고 해서 그 끝이 창대하리라 생각지 않고
빠른 것이 똑똑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렸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내 아이가 똑똑하다는 생각도,
엄마인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부끄럽지만 정말 큰 착각이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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