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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Apr 10. 2022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개소리

다들 이 나이먹고 내가 상담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면 놀라고들 한다.
어쩜 그렇게 실행력이 있으세요?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텐데 멋지세요.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남들이 봤을때는 마음 먹은걸 곧바로 실행하는 추진력을 가진 멋진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상담사라는 목적과는 별개로 편안하게 자기 성장만을 위해 공부하는 소위 사모님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성장을 해나가는, 혹은 관심있어 하는 분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상담사가 되면 좋은거고, 안되도 네버 마인드라는 생각을 가진걸로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3년전, 처음 상담을 받을때,
상담 후기즈음가서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게 되었다.
나의 성장을 위해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 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내가 경험한 이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함께 하고 싶었다.
(아.. 이제서야 기독교의 전도의 의미가 이해가 간다; 참고로 난 무교)

하지만 상담을 시작하기 전,
내 평생 32년동안 나는 늘 무엇을 하나 시작하면 완전하게 끝을 내는 법이 없었고,
스스로가 무책임하고, 인내심이 부족하고,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상담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도
그것을 시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상담사는 내게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실수하기 싫어서'
시작도 하기전부터 고민이 많고,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시작도 하기전에 포기해버린다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그 이유의
더욱 기저의 원인은 경제적 빈곤이었던것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들 한다.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면 결국은 성공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나는
실패하면 실패로 끝이었다.
실패한다고해서 두번, 세번, 네번
계속해서 시도할 경제적 여유따윈 없었다.
아니, 엄마는 그러한 빈곤한 삶에서도 내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했지만
늘 엄마, 아빠가 돈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지켜봐 왔고
늘 돈돈 거리는 엄마와,
빚더미에 앉은 아빠를 보며
엄마의 지원이 어떠한 의미인지,
내게 얼마나 큰 책임을 요하는지,
얼마나 큰 부담감과 압박감을 주는지 알고 있었기에
실패에 대해 결코 가벼이 생각하거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는 생각은 가질 수 없었다.
내게는 늘 오직 한척의 배 뿐이었다.

언젠가 그러한 글을 본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의 경우는 '실패-실패-실패-실패- 그리고 성공',
하지만 빈곤층의 경우는 '실패 끝'.

당연히 수없이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실패의 의미도 상대적으로 훨씬 가벼울 뿐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기회,
마지막까지 실패하더라도 아예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빈곤한 가정에서는 단 한번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로 끝이 난다.
그렇기에 이것, 저것 시도해보고 내게 맞는 길을 찾는 것?
얼토당토 않은 개소리다.

친한 친구 중에 소위 강남권에 살고 있는,
집안이 아주 풍족한 친구가 있었다.
20대 중반즈음, 다들 취업으로 전전긍긍하던 때,
그 친구도, 나도, 우리는 한창 면접을 다녔다.
나는 똥찌그레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면서도 늘 불안해했고,
그 친구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품 회사들에 면접을 다니면서도 아주 여유로웠다.
너무 의아해서 친구에게 너는 떨리지 않느냐 물었고
돌아온 대답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회사가 날 뽑기도 하지만, 나도 회사를 뽑는 자리잖아."
본인이 다닐 회사를 선택하러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인사팀이나 면접관들을 통해 그 회사의 이미지를 보고 결정에 참고를 한다고 했다.
면접관을 면접한다니 !

물론 나 역시 결혼을 하며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사모님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빈곤층에서 단지 서민이 되었단 뜻이다.)
감사하게도 외벌이로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
덕분에 나는 일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평생을 돈에 얽매여 살아 왔던 탓인가.
3년전 상담 당시 피아노도 한번 배워보고 싶고,
바이올린도 배워보고 싶고,
취미로 미술도 다니고 싶고,
핼스 PT도 받아보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발을 붙들어 매고 있는 듯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상담사는 내게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실수하는게 싫어서
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완벽하려는, 실수하지 않으려는 이유의 기저에는
평생의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내게는 한번의 기회밖에 없음을.
한번 할때 뽕을 뽑아야 함을.
한번 할때 완전한 끝맺음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고 있었던 것 같다.

살면서 한번도 그냥 해보고 안맞으면 그만 두고,
그냥 적당히 배운다는 생각 자체를 못해봤다.
그렇다보니 취미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무얼 배우든 전력을 다해서 돈들인 만큼 뽕을 뽑아야만 했다.
피아니스트가 될 것도,
바이올린연주자가 될 것도,
유명한 화가가 되려는 것도,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려는 것도 아닌데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책임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끝까지라는 기준은 또 무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상담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때도
나는 비싼 돈들여 공부를 시작했는데,
끝맺음도 맺지 못하고 힘들어서 도중에 포기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주저주저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상담사는 내게 말했다.
"그냥 툭 한번 해보세요. 해보고 괜찮으면 계속 하는 거고, 안맞는다 싶으면 그만 두는 거고,
큰 의미를 두지 말고 이것저것 한번 툭, 깊이 생각 말고 한번 툭 해보세요."
그렇게 나는 100여만원의 돈을 들여 1학기 등록금을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남편이 그 정도 지원은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학생이었다면 내가 과연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한번 툭, 가볍게 생각하고 툭 시도나 해보라는 말이
어쩌면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수 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 "
살면서 수도 없이 들어본 말이다.
그런데 진짜 밑바닥인 사람에게,
삶에 빠져나갈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얼마나 부질없고 쓸모 없는 말일까.
이처럼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와 같은 개소리가 또 있을까.

누적적 결함가설,
빈곤한 환경이 아동의 지적 성장을 억제하며,
이러한 억제효과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누적되어 간다.
부익부 빈익빈,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욱 가난하게 된다.
이처럼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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