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외향적인 성향의 나는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이 외향성이 타고난 기질인지, 혹은 살면서 형성된 성격인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늘 밝고 명랑했다.
하지만 나의 외향성은 딱 거기까지였다.
주변에 사람을 많이 끌어 모으고, 자주 어울리고, 늘 북적북적한 인간관계를 하였지만 그 관계들은 거의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어 있었다.
사람을 사귀면 깊이있는 관계를 맺을 줄 몰랐다.
몰랐던건지, 아니면 애초에 상처받을까 두려워 안했던건지 알 수 없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딱 거기까지였다.
겉으로는 세상 친한 친구였지만 진정으로 나를 위해 웃고 울고 걱정해줄 사람이 있는가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서운할것도 없었다.
나 역시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울고 웃고 걱정해줄 만큼의 마음은 없었다.
그저 함께하면 외롭지 않으니,
함께하면 즐거우니,
나의 공허함을 채우고 나의 유희의 욕구를 채울 그 정도의 관계만을 맺고 지내왔다.
그걸로 됐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어차피 인간이란 불안정적인 특성(여기서 말하는 안정성이란 그 특성이 꾸준히 유지되냐 아니냐에 대한 정의이지 애착에서처럼 불안정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을 지닌 유기체로서 언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의 모든 것을 오픈하고, 믿고, 의지할 사람은 세상에 그 누구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러한 사상이 나의 종교적 신념에 강한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믿을만한 존재는 나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성장함에따라 나 조차도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품어왔기에 내게 종교적 믿음이라함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조차 불확실한 신이라는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그저 우스운 애들 장난같은 말일 뿐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입버릇처럼 이러한 말을 하곤 했다.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
인생은 혼자왔다 혼자가는 곳이다.'
농담삼이 던지는 말이었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은 상담을 받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지인이라함은, 친구라함은, 애인이라함은, 언젠가는 떠나버릴 존재였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관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타인이 날 떠난다는 것이, 그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이, 내가 타인을 떠난다는 것이 내게 있어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만남의 시작부터 나는 이별을 미리 정의해놓고 인간관계를 시작하였기에 누군가와의 관계의 단절은 내게 큰 타격을 주지 않았다.
3년전 상담 당시 나는 상담사에게 이러한 말을 한적이 있었다.
"타인에게 애초에 기대가 없어서 실망도 없어요."
정말 그러했다.
나는 타인에게 기대를 애초에 품지 않았다.
그것은 가까운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기념일을 챙기고, 종종 선물을 하고, 날 위해 무언가를 할거라는 기대 자체가 없었다.
그렇기에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도, 심지어 기념일을 잊어도 나는 그저 무덤덤할 뿐이었다.
물론 농담삼아 빼빼로데이에 빈손으로 오는 남편에게 "뭐야 빼빼로 안사왔어?!"라고 웃으며 농담삼아 던지는 말에도 그 어떠한 가시는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농담이었고, 그랬으니 남편이 8년간 살면서 한번도 빼빼로를 챙기지 않았겠지;
그렇듯 나는 타인에게 어떠한 기대조차 갖지 않았다.
학창시절에도 누군가가 내 뒤에서 뒷담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내 앞에서 말 못하니 뒤에서 뒷담하네?ㅋ
정도 수준이었지, 찾아가 니가 그랬니 마니 따지거나 보복을 일삼지도 않았다.
애초에 타인은 내게 있어 딱 그 정도 관계일 뿐이었고, 삶에 있어 큰 영향력없는 존재일 뿐이었으니까.
나랑 안맞으면 끊어내면 그만,
맞으면 그냥 어울리는거고,
그냥 딱 그정도였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쿨 하다고 이야기했다.
또 누군가는 관계에서조차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네가 쿨해서 좋아." 라고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내가 정말 쿨한 사람이었던가 의문이 든다.
알고보면 나는 세상 찌질한 겁쟁이였을 뿐이었다.
얼마전까지도 나의 이런 피상적인 관계에 대해 나 역시도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게 있어 타인은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보니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타인이 날 좋아하든 싫어하든 떠나든 말든 피상적이든 아니든,
나한테 문제될건 없었으니까.
내게 실이 될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상담공부를 하며 지난 관계들을 돌아보았을때, 나는 깨달았다.
타인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관계에서 상처받는 것이 무서워,
나는 애초에 타인에게 명확한 선을 긋는 것임을.
너는 딱 여기까지야.
너와 나의 경계는 딱 여기까지야.
그러니 내 영역에 이 이상 침범하지마.
라는 것을 나는 은연중 계속해서 타인에게 비언어적인 메세지를 보내왔던것 같다.
그리고 내 주변 지인들 대부분은
피상적인 나의 관계수준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알아차리고
딱 내가 쳐놓은 경계까지만 다가온것 같다.
친화력있고, 친근하게 많은 이들을 사귀면서
정작 곁을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타인과 생일선물을 주고 받는 것은
어차피 니 돈 한번, 내 돈 한번쓰는 또이또이니까
그냥 퉁치고 서로 생일은 챙기지 말자.
이번 한번 내가 사고,
다음엔 네가 사고,
어차피 또이또이니까 그냥 뿜빠이하자.
내 인간관계에서 정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굉장히 계산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그게 편했다.
머리쓰지 않아도 되니까,
관계라는 것은 결국은 굉장히 애매모호한 인간의 감정에 대해 추론을 하며,
복잡한 상호과정을 거치며 얽히고 설켜야 하는 것이기에 골치 아픈 추론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고, 이성적인 수준에서 계산적으로 경계를 지키며 딱 거기까지만 하는 것이 속편한 관계였다.
어릴적 아빠는 나를 방임했다.
나를 사랑하긴 하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나는 아빠에게 귀찮은 존재라 느꼈다.
어릴적 엄마는 내게 거부적이었다.
물론 너무나 바쁘고 고되고 힘든 삶에 지쳐
어쩔 수 없었음을 지금에서는 이해하지만
어릴적 중요한 애착대상과의 관계에서 거부적이고 방임적인 양육을 경험한 내게
타인과 깊은 수준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안정적인 관계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하면 타인과 깊이있는 관계가 되는지 모르겠으니까.
아니 그걸 떠나서 애초에 인간에 대한 신뢰조차 없었으니까.
애착대상과의 불안정은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상담공부를 하며 나도 모르게 나의 관계들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타인이 잘되면 나도 모르게 배알이 꼴렸다.
아무리 가까운 지인이라도 잘된 모습을 보면 배가 아팠다.
타인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할줄 몰랐다.
말로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시전하면서도 사실 공허한 위로 뿐이었다.
사실은 나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내 일이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없었다.
그리고 상담 공부를 시작하고서
문득 나를 돌아보았을때,
타인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아파하는 내가 있었다.
상담만능주의를 말하는게 아니다.
상담만 하면 이렇게 될거야.
상담공부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거야.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자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러한 상담만능주의를 늘 경계하고 있다.
그저 상담공부를 하며 공존이라는 가치관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나 뿐만 아니라, 타인도 함께 잘돼야 우리 사회가 좋아지고, 우리 사회가 좋아져야 내 아이가 잘 살 수 있다.
라는 공존이라는 가치관이 자연스레 형성되면서, 그리고 나의 관계에 대한 철벽의 원인을 정확히 자각하게 되면서 관계에 있어 조금씩 벽을 허물고 타인에게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 벽을 모두 허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한걸음 다가가게 된 것 같다.
요즘 나는 타인과의 소소한 챙김을 즐기고 있다.
생일에 소소하게 기프티콘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애정을 느끼곤 한다.
자주 연락하진 못해도 늘 뒤에서 지인들이 아프지 않기를, 행운이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나마 바라게 된다.
지인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뇌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의 기쁨에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마음을 열자
지인들도 조금씩 나의 경계를 허물고 한발자국씩 다가와주는 느낌이 들곤 한다.
타인에 대한 질투와 시샘이 내려놓아지는 순간, 나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된것 같다.
물론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관계에 있어 서툴고 어설프다.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말을 나도 모르게 툭 하고 던질때도 있고, 뒤돌아서서 후회할때도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기분 상함을 타인의 몫으로 넘겨버리고 거기서 상황을 무마시켰을 것이다.
말로서 감정을 풀고, 또 그러한 감정에 대해 솔직한 것이 내게는 너무나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저 그 감정은 타인의 것으로 떠넘겨버리고 나는 네가 그리 느끼던지 말던지 발을 빼버렸을거다.
실제로 최근 이러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인에게 언어로 표현하다보니 내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것 같아 네 기분을 상할만한 말을 한것 같다며 솔직한 감정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그것은 쓸데없는 오해와 감정소비를 줄였고 그리고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어설프고 또 서툴지만 요즘의 난 조금씩 타인을 받아들이고 나 역시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밟아나가는 중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