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극단의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흑백논리를 가지고서
중간의 회색지대는 아예 없는 것 같은 사고를 할때가 있다.
인간도, 인생도, 그 어느 것이든 양극단의 범주에만 속하는 것이 아님을
모든 것은 연속적인 스펙트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극단의 사고를 하고는 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단면만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입체적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인 나의 사고는 사람의 단면만을 보고 판단할때가 종종 있다.
나는 아빠를 경멸하고 혐오했었다.
아빠는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식하고 한심하고 나쁜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빠의 장점을 볼 줄 몰랐다.
반대로 엄마는 또 너무 의지했다.
엄마는 책임감있고 생활력있고 예의바르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단점은 장점에 가려져 엄마라는 존재가 이상화되기도 했다.
엄마는 내 편, 아빠는 네 편.
극단으로 나누고 극단으로 생각했다.
상담사는 내게 부모에 대한 통합이 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 뿐 아니라 결국은 나에 대한 통합도.
나는 아빠를 경멸했으면서도, 아빠에게 헌신적이었다.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한데
아빠를 안쓰럽고 측은하게 여겨
아빠에게 과도한 헌신을 하고 있기도 했다.
굉장히 양가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와주면서도 마음 속이 불편한 것이,
왜 아빠는 본인이 책임지지도 못할 행동을 해버리고
본인이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건강상태를 악화시키고
모든 것이 엄마와 나의 책임이 되도록 만들고
우리에게 민폐만 끼치는 사람이라고
아빠를 탓하고 비난하면서도
아빠를 향한 지원은 멈추지 않았다.
아빠를 돕지 않으면 사실 그 마음이 더 불편했거든.
그냥 나 몰라라 방임해두는 것이 나를 더 숨막히게 했거든.
그리고 나는 극단의 양가적인 감정과 행동을 반복하며
스스로가 혼란스러웠다.
스스로의 행동에 납득할 수 없었다.
상담사는 내 부모에 대한 통합 뿐 아니라
내 속에서 나에 대한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아빠에게 제대로 양육받지 못한 내담자가
반대로 굉장히 헌신적이게 아빠를 돕고 있다면
상담사로서 무어라 말해줄건가요?
라는 상담사의 질문에 나는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 아빠의 가난도, 건강도, 모든 것은 아빠의 선택이었으니
책임도 아빠의 몫이다.
그러니 과도한 헌신을 멈추라고 말해줄 인지와
둘째, 그래도 네가 자식인데 도와야지
라고 말해줄 감정이 동시에 떠오른다고 했다.
머리로는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아빠를 과도하게 돕는 것이 적절치 않은 행동임을.
적절치 않은 강도임을.
아빠가 벌여놓은 것들인데 아빠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감정은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네가 도와야지.
네가 아니면 아무도 아빠를 도울 사람이 없잖아.
상담사는 그렇다면 인지가 감정에게 무어라 이야기할 것 같냐고 물었고
나는 모든 것은 아빠의 선택이고, 아빠의 책임이니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헌신의 강도를, 마음의 강도를
줄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라 했다.
뒤이어 상담사는 감정은 인지에게 무어라 이야기할 것 같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감정은 인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지의 판단은 머리로 무엇이 가장 합당하고 합리적인지
정보처리과정을 거쳐 도출되어 온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과 같이 느껴졌고
감정이 가지는 지향점은 오답이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도, 감정도 모두 자각하고 있었다.
감정은 인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지가 답을 알고, 아니 사실은 감정도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감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에게 이번 한번만 나를 따라와줘 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 한번은 또 다른 한번을, 또 다른 한번을
계속해서 부탁하곤 했다.
그렇게 결론적으로 표출된 나의 행동은
인지가 아닌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 인지는 아빠가 나쁜 놈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책임하고 한심하고 무능하고 무지한 사람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빠가 측은하고 안쓰럽고 그에게도 수많은 풍파가 존재했음을
내가 모르는 아픈 과거가 있을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편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아빠로서 자격없다 말하는 가족들에게 배척되어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 라는 마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지와 감정의 통합이 불가한 상태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서
혼란스럽고 불안해했다.
얼마전까지도 나는 나의 극단의 모순적인 나의 성격에
혼란스러워하고 통합시키지 못하고 있지 않았던가.
ENTJ의 강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차가운 면모를 보이면서
ISFP의 감정적이고, 세심하고, 배려하고, 따뜻한 내면의 모습이
종종 튀어나올때면 나는 혼란스럽곤 했다.
누군가가 내게 강하고 센 사람같아 불편하다 표현했다가도
또 모든 것을 수용하는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고 피드백을 줄때면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알지 못해 혼란스럽곤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두가지의 모습 모두가 진정한 나임을 얼마전 깨달았다.
그렇듯 인지는 ENTJ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이,
감정은 ISFP의 세심하고 배려심깊은 모습이 나타나자
내 안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인지와 감정 모두의 그 중립점을 찾지 못하고서
나는 또 한번 극단의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감정이 향하는대로.
그리고 불만 가득한 인지의 생각은 애써 외면한체.
모든 인간은, 그리고 모든 인생은 입체적이다.
360도의 사람을 360도의 모습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하지만 인간을 판단할때 단면만을 보고 판단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볼때,
심지어 나를 바라볼때에도 단면만을 보고 판단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에 혼란을 느끼곤 했다.
상담사와 상담을 진행하며 떠오른 생각은
내가 온전한 나로 서 있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역시 극단의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이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모든 현상을,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서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내가 나로서 온전히 설 수 있길 바란다.
상담사는 내게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랬다.
상담을 하면서 눈물이 터져나올것 같은 순간은 많았는데
차올랐다가도 목의 경계즈음에서 그것이 막혀버려
터져 나오지 못하고 꽉 막혀 있는 답답함을 자주 느끼곤 했다.
그 느낌은 굉장히 불쾌하고 불편하고 답답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쏟아내고 나면 속이 뻥 뚫릴 것 같은데.
마치 체했을때 토해내고 나면 속이 편안해 지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종종 무언가에 꽉 막혀 있듯이
울음을 토해내지 못했고
표출되지 못한 울음은 응어리가 되어 다시 내면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렇게 여전히 감정과 인지는 충돌하고 있었다.
상담사는 내게
겉으로는 차가워보이고 논리적여 보이지만
속은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라 했다.
따뜻한 사람이기에 부모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부모에게, 조부모에게, 나아가 세상에 힘든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냉과 온의 균형을 맞추고
조화와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껏 이러한 부조화는
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고,
나를 소진시키는 에너지였음을 깨달았다.
종종 나는 상담사가 된다면
상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까 겁이 나곤 한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사연을 들을때면
눈물부터 울컥 쏟아져 나오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담자에게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상담사로서 적당한 거리와 경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너무나 이입이 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함이 있다.
상담장면에 자살위기의 내담자들이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자살위기가 아니라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왔든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엄청난 죄책감과 그리고 슬픔을 맞닥뜨리게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내담자를 내담자로서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제대로 통합되어야 한다.
나부터가 온전히, 그리고 굳건히 그 자리를
단단히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나를 위해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그들의 풍파에 함께 버텨줄 수 있는 힘을 키워야지.
그들이 좌절할때 뒤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든든하게 받치고 있을 수 있는 상담사가 되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입체적임을 이해하고,
나부터가 나의 입체적인 모든 모습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면서
그것의 조화를 이루어 나갈때,
나는 나로서 온전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