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외할머니의 생신이셨다.
코로나로 몇해나 뵙지 못했기에 아이의 유치원을 땡땡이치고, 학교 일정이 밀려있었음에도 약간의 무리를 해서 할머니댁을 다녀왔다.
엄마도, 이모도 외할머니 생신이라고 다들 모인 자리였다.
할머니 생신이라고 한우를 잔뜩 짊어지고 온 엄마는 늘 그렇듯 불 앞에 앉아 본인이 나서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엄마 옆에 앉아 연신 구워내는 고기를 입안으로 쏙쏙 집어넣는다.
내 새끼는 거실에서 티비를 본다고 밥을 먹지 않겠다 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멕여보려고 야채쌈을 싸 왔다갔다하며 아이의 입에 꾸역꾸역 구겨 넣는다.
그렇게 내 입과 내 새끼 입만 챙기기 바빴다.
외할머니는 제 입만, 제 딸 입만 챙기는 내가 못내 얄미웠던지 버럭 화를 쏟아내고 만다.
"어째 제 입만 챙기고, 지 애미는 챙길 줄 몰라!!"
열심히 고기를 굽던 엄마는 괜히 욕먹는 내게 당신이 대신 미안했던지, 나서서 본인이 알아서 먹고 있다며, 괜찮다고 손사레를 친다.
순간 억울한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마구 휘몰아친다.
치열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다 오랜만에 마냥 기대고 의지하고픈 엄마를 만났는데, 철딱서니없는 행동일지라도 이 정도는 어리광으로 넘어갈 수 없는건가.
나 역시 본인의 손녀임을 잊은건가.
외할머니를 오랜만에 뵙겠다고 멀리서 한 손에는 아이를, 한 손에는 짐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어렵사리 할머니를 만나러 왔는데 버럭 쏟아지는 비난은 나의 수고로움을 퇴색시켜 버리는듯 느껴졌다.
그리고 민망해진 나는 변명을 쏟아놓기 시작한다.
엄마가 어떤 식의 쌈을 싸 먹는지 알지 못해 굳이 쌈을 싸주지 않는다며 주절주절..
실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타인이 내게 싸주는 쌈도 싫고, 내가 타인에게 쌈을 싸주지도 않는다.
그저 단순한 쌈 하나 일뿐이라도 확고한 취향이 있기에 누군가가 내게 싸주는 쌈도 영 반갑지 않을 뿐더러 내가 누군가에게 내 취향대로 쌈을 싸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평소에도 나는 타인에게 쌈을 싸주지 않는다.
사실이었지만 내가 왜 이런 변명을 늘어놓고 있어야 하는지, 이걸 왜 일일히 설명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잘못되었다는 듯 버럭하며 한마디를 뱉어 내셨고, 그저 비난받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을 소화시키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외할머니의 둘째 딸인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아픈 손가락이나 다름없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노출되었던 아동기 시절을 거쳐, 나만큼이나 아니, 사실 나보다도 더 한 아동기를 겪어내었다. 내게 직접 전달한 말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이모와 엄마의 대화를 곱씹어 보면, 할머니는 매일같이 술에 취해 폭력적이었던 남편을 피해 자식들을 이웃집에 대피시켜 놓곤 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렇게 불안한 아동기를 보내고서 도망치듯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은 더 시궁창이었다.
지독한 가난과, 남편을 대신해서 가장의 역할을 맡고, 고된 일을 하고, 평생을 쉼없이 달려온 딸이 너무나 처연해 보였을 외할머니는 늘 엄마만 보면 안쓰러워 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어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섰을때 즈음부터 외할머니는 아빠에게 직접 말하진 못했지만 종종 내게 아빠를 향한 한탄을 쏟아내곤 했다.
무능한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아동기 역시도 순탄치 못했는데, 그곳에서 탈출해 도망간 곳 또한 지옥이었다니.
할머니는 속상한 맘을 풀어낼 길이 없어 애꿎은 손녀에게 아빠의 뒷담화를 풀어내곤 했다.
아무리 미워하고 증오하던 아빠였지만, 다른 이가 아빠를 비난하는건 또 듣기가 거북했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얼마나 속상하면 손녀에게 그러한 말을 쏟아내실까 싶어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드리기도, 종종 맞장구를 쳐드리기도 했다.
할머니는 둘째 사위가 미웠나보다.
무능해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딸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겨 버린 사위가 너무 미웠나보다.
할머니는 차마 아빠에게 하지 못한 가슴에 쌓인 이야기들을 내게 쏟아내곤 했고, 나는 아빠의 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내가 아빠가 되기라도 한 듯 아빠를 대신해 죄스런 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엄마는 5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40키로 초중반대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워낙 고생을 해서, 워낙 쉬지를 못하니, 고된 강도의 일을 하고, 빡센 삶을 살다보니 살이 찔 틈이 없었다.
에너지는 늘 바닥이었고, 어딘가가 늘 고장나 아팠고, 살은 억지로 찌워놓아도 다시금 40키로 초반대로 금세 줄어들곤 했다.
직장에서 한번씩 다른 사람의 땜빵을 해야할때면 엄마는 3~4시간밖에 못자고 노동을 해야할 때도 있었다. 그럴때면 엄마의 체중은 눈에 보이게 줄어들었고, 옷이 헐렁해질 정도로 말라가는 엄마를 보며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보내려 알아보고 있던 때였다.
주말 아침, 일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전화가 오셨고,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화를 버럭버럭 내시는 할머니때문에 나는 당황을 했다.
할머니는 엄마가 말라가고 있다고 걱정을 하고 계셨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워낙 분노로서 표현하는 분이다보니 엄마를 향한 걱정은 내게 화를 내는 형태로 표현되었고, 그 맘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불편한 맘이 들었다.
딸인 날더러 엄마를 챙기라는 당부였다.
그렇잖아도 챙기려고 알아보고 있고, 음식을 해다 보내려 한다는 내 말에, 당장 대학병원에 데리고 가 건강검진을 받아보게 하라며 역정을 내셨다.
그렇게 버럭버럭 화를 쏟아내시는데 기분이 순간 확 나빠졌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할머니의 흐느낌에 불편한 맘을 내비칠 수 없었다.
딸이 걱정되어,
무슨 사단이라도 날까 걱정되어,
엄마의 가까이에 있는 이모도, 아빠도, 남동생도 아닌 내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하신거다.
내 딸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분노로서 표현하셨기에 전혀 알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내게 애원하고 싶으셨던 거다.
간곡히 부탁하고 싶으셨던거다.
내 딸, 부탁할 사람이 너 밖에 없다고.
할머니는 흐느낌을 들키지 않으려 말을 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으셨다.
마무리짓지 못한 그 말을
말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70이 훌쩍 넘으신 연세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50대의 딸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또 한번 내게 본인의 딸을 챙기지 않고, 내 입만, 내 새끼 입만 챙기는 내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야채쌈이 중요한게 아니라,
여전히 깡마르고 연약한 엄마를
챙기지 않는 손녀가 미웠나보다.
엄마를 챙길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 생각하시는데
그마저도 철딱서니없이 제 입만 챙기고 있으니
그게 그리 얄궂었나보다.
할머니에게 내가 손녀이기 이전에,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엄마는 할머니의 딸이었으니.
가정폭력으로부터 온 몸을 던져
지켜내온 애지중지 키운 딸이었을테니까.
평생을 고생만 한 딸에 대한 속상함과,
그러한 엄마를 챙기지 않는 손녀에 대한 서운함이
할머니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괜히 욕먹고 있다는 생각에
할머니에게 서운함과 속상함이 몰아쳤지만, 돌아보니 알 것 같다.
엄마로서 가졌을 그 마음을.
임신기간, 20대의 나이에 나는 임신성 당뇨를 진단받았었다.
임당이 나올거라 예상조차 못했기에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았었고, 함께 검사결과를 듣게된 엄마는 "이럴 줄 알았으면 애기가지라는 말 하지 말걸..." 이라는 말만 수 없이 반복하며 눈물을 내비쳤다.
임신을 바란것이 엄마가 아니었음을, 내 의지로 임신을 한 것임에도 본인의 잘못인 양 미안해했다.
엄마는 나를 태워다주는 내내 차안에서 눈물을 훔쳤다.
"니가 내 딸인데.. 나한테는 애기보다 네가 더 중요한데.. 애기보다 니가 더 우선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기 가지란 말 하지 말걸...."
엄마는 그렇게 한참을 본인 탓을 하며, 20대의 나이에 당뇨에 걸리게 된 딸을 보며 한탄스러워했다.
엄마에게도 손녀보다도 내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외할머니에게 나보다 엄마가 중요했던 것 처럼.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엄마에게 중요한건 뱃속 아이가 아닌, 본인의 딸의 건강이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외할머니의 분노를,
내겐 분노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이 딸을 향한 사랑과 애정임을.
아무리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지만
그 사랑이 딸을 향한 외할머니의 사랑만할까.
만약 사랑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을 감히 그 사랑에 견줄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한번 깨닫는다.
외할머니의 사랑처럼,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 역시
엄마를 향하는 내 마음의 깊이와 또 다를 것임을.
감히 엄마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음을.
외할머니는 여전히 내게 역정을 내곤 하신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역정 속에 숨어있는 딸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