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괴롭히는건 재미있어!!!

by 김수빈


지난 주, 황금연휴를 맞아 아이의 사촌들과 함께 캠핑장을 찾았다.
오랜만에 보는 조카들은 늘 그렇듯 내게 놀자고 달려 들었고
그렇게 아이들과 시시덕대며 놀다보니 문득 나의 행동에 현타가 왔다.

나는 유치하게도 5살 꼬마에게 괴물 소리를 내며 잡으러 쫓아 다니고,
내 손에 잡혀 발버둥치는 아이를 울음이 터지기 직전까지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9살 조카에게도 말로 툭툭 건드리며
아이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었고
7살 딸아이는 뭐, 거의 매일을 당해오던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순간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고
제 3자의 입장이 되어 나를 관찰하자
'35살 먹고 왜 이리 유치해, 정신병 아니야?'
하는 생각에 현타가 온 것이었다.

사람의 정신구조는 욕구와 본능을 가진 원초아와,
도덕관념과 양심을 가진 초자아,
그리고 이 둘을 가운데에서 중재하는 자아로 이루어져 있다.

상담사는 내게 원초아가 강해
욕구를 표출해 내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내비치는 것이라 했다.

타인에게 피드백을 받기 전 까지는 몰랐다.
아니, 타인에게 피드백을 받았을 때도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 그렇게 느끼는 너희가 잘못된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내게 평생을 동생을 괴롭혀 왔다고 했었다.
남편은 내게 사람 속을 살살 긁어 한껏 약을 올린다고 했다.
나와 가까운 가족들이었기에 말할 수 있는
솔직한 피드백이었지만
나의 행동이 그렇다고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그저 엄마가 동생과 나를 차별한다고 느끼고,
남편이 예민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떠한 과격한 행동으로서 표출되는 것들이 아니라
말로서 사람을 살살 약올리다보니
내 말은 늘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그 경계에서 애매모호하고 위태위태하게
타인에게 툭툭 던져졌다.

그러한 말을 받아내는 타인은
경계를 넘지는 않았지만,
또 경계에 걸쳐져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조롱섞인 장난을 던지는 내게
화를 내기도 애매하고,
굳이 짚고 넘어가자니
본인이 쪼잔해지는 느낌에
일일히 말을 하지못했고
그러한 작은 말들이 쌓이고 쌓여
상처가 되고, 불만이 쌓여 가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순수하고 착한 여자친구였다.
내 앞자리에 그 친구가 앉게 되었는데
내 딴엔 좋아서, 반응이 재미있어서
뒤에서 계속 찝쩍대며 장난을 쳤고
참다 못한 친구는 선생님께
자리를 바꿔달라 요청을 했다고 한다.

뒤늦게 알았을땐 '아니, 왜?!?' 하는 의문을 가졌고
내 행동이 타인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좋아서 한 행동이니까,
재미있어서 한 행동이니까,
장난이었으니까,
악의가 없었으니까,
친구가 예민하다고만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다.
남편과 홍콩 여행을 갔을때였던것 같다.
계속해서 남편의 살을 꼬집어 댔고
괴로워하는 반응이 웃기고 재미있어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꼬집어 댔다.
결국 참다 못한 남편이 화를 버럭내며
부부싸움으로까지 번져 버렸다.

악의가 아니었는데?
장난이었잖아?
좋아서 그런거잖아?
내 의도를 개떡같이 받아들인 남편에게 화가 났다.

물론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다.
내 의도가 어찌되었든,
타인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을 잘못된 것임을.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생각이 나아가지 못했다.
나의 장난치고 싶은 욕구가 우선이었다.

내가 종종 조울을 의심한 이유는
너무나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나의 모습이 비칠때면
내가 혹시 조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검사결과 전혀 아니었지만)

상담사는 내게 원초아가 높은 사람이라 한다.
개인의 욕구가 굉장히 강해서
그것을 참지 않고 표출하는 사람이라 한다.

그렇다.
나는 할 말이 있으면 못참고 쏟아내고 솔직한 편이다.
직설적이라는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충동성이 강해
생각없이 일을 많이 벌리기도 한다.
인내력도 부족한 편이고
그렇기에 다이어트라는건 내 인생에 없는 단어다.
인내하고 기다리는것은 잘 못한다.
그냥 즉각적인 피드백을 좋아하고
즉각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초자아 역시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오토바이를 훔쳐타는 학생들을 보면
기어이 잡아다가 경찰서에 넘겨 버리곤 했다.
불우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야 했고,
인사성도 굉장히 바른 사람이었다.

내 안에는 원초아와 초자아 모두가 너무나 강한 상태라
이러한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생각과 감정 속에
너무 혼란스러웠던것 같다.

원초아는 내 부모가 미워 죽겠다는데
초자아는 부모에게 딸로서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


상담사는 내게 자아의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원초아의 욕구를 좌절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방법으로 나의 욕구를 풀어내어야 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타인을 괴롭히고 장난치고 싶은 욕구를
다른 건설적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상담사는 자아의 힘이 강해져
원초아의 욕구를 즉각 충족시키지 않고 지연시키면서도
욕구를 좌절시키지 않고 다른 건설적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는,
다른 재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전까지는 이러한 나의 모습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다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내가 나를 관찰하고,
또 이전에는 전혀 문제 삼지 않던 나의 모습을 찾아내었고,
이것을 다루고자 한다는 것은
나의 자아의 기능 역시 성숙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조금씩 연습하다보면 좋아질 것이라 일러주었다.


또 내게는 통제욕구가 굉장히 강하다고 했다.
그냥 강한 정도가 아니라 끝판왕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상담을 하며 나는 엄마를 '아픈 손가락'이라 표현했다.
흔히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표현이지만,
나는 자식이면서도 부모를 '아픈 손가락'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이것은 부모의 통제를 받는 입장이 아닌,
내가 부모를 통제하려는 욕구를 반영하고 있었다.

나는 시댁에도 굉장히 잘했다.
시부모님이 "요즘 젊은이들 중에 너만큼 어른한테 잘하는 애 찾기 힘들다."
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였으니까.

나는 양가 할머니께도 굉장히 잘했다.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효녀라 인정하실 정도였으니까.
할머니는 종종 병원을 다녀오는 날이면
"너 같은 애들이 간호사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 병원 간호사는 말도 없고 싹싹하지가 않어!"
라며 어른께 잘하는 나를 칭찬하곤 했다.

부모에게 상처받아 힘들다고,
또 아빠를 미워했으면서도,
나는 부모에게 최선을 다해 헌신을 했다.

이 또한 통제욕구의 발현이었다.
내가 타인을 통제하는 방법은 그들에게 '잘 하는 것'이었다.
내가 잘하는 만큼, 타인은 내게 통제를 행사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잘하는 만큼, 나는 타인에게 통제와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니까.

나의 책임감의 기저에는
용솟음 치려는 화산처럼
통제욕구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나는 종종 상담을 통해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렇듯 내가 글을 써서 타인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함도,
내가 상담사가 되어 타인을 돕고 싶은 마음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구일지 모르겠다.

상담사는 이러한 통제욕구의 발현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에서
타인에게 말로서, 장난으로서 괴롭히는 행동이 나타날 수 있기에
이러한 통제욕을 역기능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기 보다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성장욕구 또한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나의 통제욕구는 성장욕구와 맞닿아있고
이것이 기능적으로 발휘된다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장점으로서 발현될 수 있기에
없애기보다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딸은 종종 내게 짜증을 과도하게 분출할 때가 있다.
아빠에게는 조금은 유하게 표현하면서,
내게는 까칠하게 반응할때가 있었고,
아빠를 더 좋아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제야 돌아보니 내 딴에는 장난이고 애정표현이라고 한 언행들이
딸 아이에게는 괴롭힘과 자신을 향한 통제라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엄마의 애정표현이 딸에게는 괴롭힘으로 느껴졌을테지.

나는 타인을 웃기려는 욕구도 있다고 한다.
유머로서, 가볍게, 장난으로
그러다보니 어떠한 의도가 없었음에도
말에 가시가 박혀 강하게 표출되기도 한다.
주변에서는 웃길지 몰라도
정작 당사자에게는 가시가 되어 박힐 수 있음을,
장난이니까, 유머니까, 재미있으니까, 다들 웃으니까,
나는 괴롭힘이라 생각지 못했다.

이러한 말을 들었을때 느낄 타인의 감정과
이러한 장난을 당했을때 괴로울 조카들의 감정과
이러한 애정표현을 당했을때 화가 날 딸의 감정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역지사지가 필요했다.

나의 감정과 욕구가 우선인 원초아를 잠시 내려놓고
역지사지할 수 있는 강한 자아가 필요했다.
상담공부를 하며 자아가 성숙해져 감을 느껴간다.
지금껏 느끼지 못한 타인의 고통을 자각했고,
지금껏 생각지 못한 나의 행동의 문제점들을 자각했다.
지금껏 나 때문에 힘들었을 지인들에게 죄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특히 20년을 괴롭힘 당해온 동생에게는 꼭 용서를 구해야 겠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구나.
상담사로서,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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