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으로 가는 왕도

by 김수빈

상담공부를 하며 내가 알지 못하던 나에 대해 알아간다.
너무 아파 감추어 두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인
내면아이를 마주해간다.

살아가며 나, 그리고 타자가 정의해버린
나의 보편적인 성격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없이
정의된 나의 모습만이 '나'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강하고, 직설적이고, 세고, 리더쉽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비추어졌고
모든 이들이 나를 그렇게 정의하는 순간
나 또한 그러한 정의에 갇혀
내가 그러한 모습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상담사는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질문을 하곤 했다.
수빈씨는 '어떤' 아이였나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는 대답 뿐이었다.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정의된 나의 모습은
밝고, 명랑하고, 직설적이고, 강한 모습인데
또 한편으로는 소심하고, 배려하고, 눈치보는 모습의 내가
종종 튀어나오곤 했으니까.
무엇이 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이분법적으로
하나의 모습만이 나라고 정의내려야 했다.
너무나 모순적인 모습들의 나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강함과 나약함,
밝음과 어두움,
명랑함과 소심함,
너무나 상이한 두가지의 모습이
모두 다 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성격의 모순 뿐만이 아니었다.
인지와 감정의 모순,
여러 감정들의 모순,
사고의 모순,
이러한 모순적이고 또 양가적인 것들 사이에서
나는 종종 혼란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부모가 미워 죽겠다는 인지와
그래도 니가 자식인데 자식된 도리를 다 하라는 감정의 충돌,

손절한 친구의 연락을 받고 반가운 감정과,
또 다시 지난 날들의 반복이 이어지진 않을까 하는 부정적 감정도 함께,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부모가 너무나 미운 감정들이 함께,

모든 것들은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오며
이것들을 통합시키지 못했고
그러한 것들의 충돌을 경험하며
그저 불편하고 혼란스러웠다.


상담사는 내게 조화와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움과 사랑은 공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했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이 함께 함을 알아야 한다 했다.

하지만 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미워했던 아빠지만 그에게도 분명 배울 점이 존재했음을.
그렇게 원망하던 엄마였음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임을.

머리로는 다 알고 있었지만
이것의 조화와 통합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상담사에게 묻곤 했다.
통합, 통합, 통합
통합해야 한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통합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명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통합이 무엇인가요?
저는 아빠의 단점도, 장점도 이미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통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상담사는 내게 통합을 설명하려 애썼고
본인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했음에도
내게는 와닿지 않았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상담사도, 교수도, 책에서도,
모두가 답을 말하고 있는데
내게만 보이지 않는 듯
그 답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통합이 필요하다지만 통합이 무엇인지
체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긴채
통합에 사로잡혀, 그것에 갇히지 않기 위해
통합을 더이상 좇지 않았다.

그저 나를 찬찬히 관찰했다.
내면아이를 관찰했다.

나의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모습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여러 모습들은 삶의 여기저기에서
불쑥불쑥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곤 했기에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모든 것이 나임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통합시키는,
통합으로 가는 문을 여전히 꽁꽁 잠겨 있었다.
통합으로 가는 왕도를 알고 싶었다.

그러한 모순적인 모습들의 이면의, 기저의
이유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꺼내어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들이 순탄치는 않았다.
내면아이는 여전히 슬퍼하고 있었고,
여전히 울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조심스레 꺼내어 보고,
네가 왜 아팠을지, 왜 상처 받았는지, 왜 울고 있는지,
나는 다시금 상처를 건드렸다.

마치 상처를 후벼파는 것 같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았다.
상담과정은 그저 모든 것이 아우토반마냥 뻥 뚫리는
그러한 과정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해결되고 후련한 그러한 과정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굉장히 아프고, 쓰라리고, 고통스럽고도
또 스스로에게 연민도 느껴가는 과정이었다.
내면아이를 어루만지기 시작하자
나의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러한 모순적인 성격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내가 모순적인 인지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이유를,
내가 모순적인 감정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모든 것을 내면아이를 통해 이해하자
타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수도 없이 말했다.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실로 타인을 수용할 수 있음을.
그럼에도 그저 인지로만 끄덕끄덕 할 뿐이었다.
경험해보지 않아 어떠한 느낌인지 실로 알 수가 없었다.
추측조차 가능하지 않았다.

머리로 수용을 해야 한다 이야기 하니,
머리로 억지로 수용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에도,
가슴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일차적으로 머리에서 정보처리를 빠르게 거쳤다.
타인의 고통이 입력되고,
머리에서 오케이, 수용이라는 컨펌이 떨어진다.
그리고 나는 인지적으로 오케이, 보편적인 상황에서
이러이러한 경우 마음이 아플 것이다.
라는 매우 AI적인 계산을 거쳐 "아팠겠구나."를 내뱉곤 했다.

물론 그 말에 진심은 없었다.
그렇다고 가식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수용을 위해 나 역시 굉장히 노력한 일이었으니.

나는 타인을 수용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지만
체험적으로 경험하지 못해본 것이다 보니
인지적으로 수용을 처리하고 있었다.
물론 타인도 바보가 아닌 이상,
공허한 수용임을 느꼈을테지.


용기내어 꺼내어 본 내면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또 품고나서야
나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로저스가 말하는 그 있는 그대로, 라는 말을
나는 지금껏 알 수가 없었다.
이 역시 인지로 처리할 뿐이었다.

하지만 직접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아, 당신이 말한 있는 그대로가 이러한 의미였군요.
라고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야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판단도, 평가도, 비판도, 연민도 없이
나를 나로써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자연스레 나의 모순적인 모든 것들의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통합에 대한 정의가 어쩌면 이론마다, 상담사마다, 그리고 인간마다 상이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통합이 어떠한 것이다 라는 나만의 정의는 세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의 모순을 인지적으로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장단점을 인지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기저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원인을 탐색하고,
그것이 나와, 그리고 당신의 최선의 선택일 수 밖에 없었음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또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온전하게 판단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었다.

심리학의 대가인 칼 구스타프 융은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성격의 모든 면을 발견하고 통합해 나가야 한다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성격,
그리고 그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과 반대되는 이성의 특질,
사회적인 상황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가면,
그리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까지
모든 것을 발견하고, 그것들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
인간 삶에 궁극적인 목표라고.

그렇게 자기를 실현한 사람들은
결코 좋은 모습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타인의 눈에 좋은 사람으로, 혹은 잘난 사람으로 비추어지지는 않지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고.

그렇게 융의 이론을 수없이 공부하고,
수년을 접해왔음에도
나는 인지적으로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그저 왜 이렇게 어려운 이론을 만든거냐며,
왜 이리 외우기 힘들게 어려운 개념들을 잔뜩 만들어 놓은 거냐고,
투덜대며 공부를 해 왔는데
뒤늦게서야 융의 참뜻을 깨달은 나는
융의 대단한 발견에 새삼 감탄을 쏟아내곤 한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경험했을지,
얼마나 많은 혼란을 겪어 왔을지,
나와 같은 혼란과 고통속에서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를 향한 경외로움과 존경심이 절로 차오른다.


요즘 나는 나를 통합해 가고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자 타인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어떠한 판단도, 평가도, 비판도 없이
그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되었다.

상담사로 서는데 있어
타인을 향한 연민이, 동정이,
나와 내담자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생각했다.

혹은 나의 아픔이라는 색안경 속에서
내담자를 바라보게 되어
온전히 내담자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어떠한 연민도, 동정도 없이,
나의 색안경 없이,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바라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제야 진심으로 그들을 존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치열한 삶을 살아왔을 당신의 과거를,
그러한 과거 경험으로부터 형성하였을 당신의 성격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신의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나는 이제서야 온전하게 이해하고
또 존중과 존경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담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에게,
존중과 또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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