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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Dec 18. 2020

아이를 낳고 나를 잃었다.

당뇨에서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단까지

출산과 육아를 경험해본 엄마들이라면 하나같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출산은 열번도 더 할 수 있는데 육아는 두번 다시 못하겠다."

나 역시 그랬다.


출산과정조차 순탄치 않았던 나는 진통만 56시간, 2박3일을 했었다.

산모에게 너무나 고된 과정이라 담당의는 유도분만을 권했지만 유도분만이 태아에게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에 출산과정을 빨리 당기기 위해 촉진제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진통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2박3일을 입원하여 버티다, 양수가 줄고 있어 태아가 위험할 수 있기에 유도분만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담당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유도분만으로 아이는 세상에 나왔다.

출산 당시의 경험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출산과 동시에 남편에게 한 말은 "둘째는 없다." 였다.

그 정도로 힘들었던 출산이었으나 누군가 육아를 다시 하라면 나는 결단코 출산 10번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육아가 힘들고 어려웠다.


출산과 육아 뿐 아니라 임신부터,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임신체질'이 아니었다.

완벽주의적이고 강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던 지라 임신도 전부터 완벽한 엄마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육아서적을 빌려와 읽으며 임신을 준비했고, 임신기간동안에도 육아서적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육아 다큐멘터리를 보며 아이를 맞을 준비를 했고 태아에게 좋지 않다는 것은 죄다 피했다.

네일, 콜라, 커피, 매운음식, 날음식, 영화관, 수영, 목욕탕, 미용실에서부터 집에서 사용하는 샴푸며, 치약, 휴지까지 성분을 따져가며 구입했고 아이에게 스칠 수 있는 홈웨어까지 무형광제품으로 따져가며 구입할 정도로 육아에 있어 만반의 준비를 하던 '스스로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성격이 한몫했을지 모르지만 임신중기, 나는 임신성당뇨 진단을 받게 된다.

입덧도 굉장히 심했는데 입덧이 사라지고 이제 좀 먹을만 하니 당뇨까지..

하필 친정엄마와 동행한 날 당뇨진단을 받았고 친정엄마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럴 줄 알았으면 아기가지란 말 하지 말걸. 내 새끼가 제일 중요한데.. 니가 내 새낀데.." 라며 계속해서 우셨다.

당뇨가 요즘은 흔해빠진 질병이라고들 하지만 당시의 나는 '20대에 당뇨라니, 심지어 우리 가족중엔 유전인자도 없는데 내가 당뇨라니' 정말 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고 청천병력과도 같았다.

거기다 임당이라는 얘기에 시댁과 친정부모님께서 통화를 하신 적이 있는데, 내 딸 걱정하는 친정엄마와 달리 "사돈, 마음 놓으세요. 아기는 괜찮을 겁니다."라는 시댁의 말씀이 지금에서 생각해도 너무 서운했다.

그렇게 임신성당뇨로 인해 임신기간 내내 음식을 조절해야만 했고, 음식도 먹고 싶은 만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연애기간 내내, 심지어 결혼준비할때도 싸움 한번 없었던 남편과 라면을 먹니 마니로 심하게 싸움이 나기도 했고, 음식제한이라는 것이 임신기간 내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였다. 인간이 먹고 싶은 음식을 몇달간 못먹으면 이렇게 밑바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보고서야 깨달았다.

임신성당뇨가 50%의 산모에게서는 출산 이후 정상으로 회복되고 50%는 계속해서 당뇨로 유지된다고 한다.

집안 대대로 날씬한 체형에 당뇨유전인자가 없었던지라 당연히 없어지겠지 기대했던 당뇨는 안타깝게도 출산 후 50개월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육아우울증에 한창 시달리던 당시, 임신기간 11키로가 찐 체중이 순식간에 임신전 체중으로 돌아왔었다. 의아했던 것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돌아서면 먹고, 돌아서면 먹어대는데도 체중은 계속해서 빠지고 머리카락도 계속해서 빠져댔다. 출산 후 머리카락 빠지는건 흔한 일이기에 출산 증상인가보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빠지는 양에 비해 엄청난 양이 빠졌고 마치 골룸같아 보이는 모습에 10년만에 어울리지도 않는 앞머리를 내기도 했었다. 육아를 하는 내내 너무 피곤했으며 수면을 12시간씩 해도 깨어난지 30분만 지나면 금세 하루종일 노가다라도 뛴 듯 기력이 없고 만성피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출산 후 여러가지 병새로 하루가 멀다하고 매주 병원을 다녔다. 육아를 하는게 너무나 버겁고 힘들었다.


그러다 아이가 6개월즈음 남편 회사에서 한 건강검진에서 갑상선기능항진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출산전, 그렇게 건강한 편도 아니었지만 허약한 편도 아니었던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질병에 너무나 무서웠고 아이를 키우다 내가 죽는거 아닌가 싶었다.

갑성선기능항진증은 명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지만 대게는 유전이나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 집에서는 유전인자가 없었고, 나는 졸지에 당뇨와 갑상선기능항진증이라는 유전인자를 첫 타자로 공유하게 된 집안의 암적 존재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육아 스트레스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니.

지금껏 계속해서 여러 질병에 걸려 매주 병원을 다녔던 것도 갑상선기능이 무너지며 면역력이 약해져 그런 것이었고, 탈모증상도, 체중이 빠지던 것도,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이유도 모두 갑상선의 문제였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갑상선은 무조건 푹 쉬어줘야 하는 일명 부자병이라고 하며 아이를 당장 어린이집에 맡기고 푹 쉬는 수 밖에 없다고 했지만 차마 말도 못하는 8개월짜리 아가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항진증 진단을 받고 집에 돌아와 2주를 울었던 것 같다.

원래 갑상선항진증이 호로몬질환이라 너무나 예민해지고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하는데 정말 감정이 널을 뛰었고 갑상선항진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하는 병은 맞지만, 누가보면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양 나는 절망에 빠져 몇달을 힘들어 했다.




아이를 낳고 나를 잃었다.

이 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정말 나는 말 그대로 아이를 얻고 나를 잃었었다.

평생을 고칠 수 없는 당뇨와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얻었으니..


갑상선항진증이 먼저인지, 우울이 먼저인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갑상선항진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갑상선항진증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하기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한다. 어쨋든 나는 스트레스에도 매우 취약해졌고 체력도 바닥이었으며 면역력이 신생아만도 못했고 간히 목숨만 연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픈데 쉬지도 못하고 그 누구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육아를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의심되어 정밀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데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어 간호사들에게 부탁하여 아기를 맡겨놓고 초음파도 찍고, 피검사도 했다. 그렇게 내 인생이 비참할 수가 없었다.

고작 생후 8개월된 아기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한 몸과 같은 존재였다.

육아가 힘든 것은 육체적 노동도 한몫하겠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유일 것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 아이와 한 몸이 되어 버리고 모든 것은 아이에게 맞춰진다. 그리고 엄마의 자유는 아이를 위해 희생되어진다.

자유를 억압받는 다는 것은 육체적 노동을 떠나 어마어마한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고 온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내가 온전히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을때 그 무력감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특히 육아를 온전히 혼자서 해보지 못한 남편은 절대 모른다.)

심각한 질병이 의심되어 병원에 한번 가려해도 이 손, 저 손을 빌려야 겨우 다녀올 수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그렇게 비참하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남편과 함께 낳은 아이인데 멀쩡한 남편이 괜히 미웠다. 내 몸은 이렇게 망가지고 희생되고 있는데 총각때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생활하는 남편이 괜시리 밉고 너무나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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