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며 내가 수용력이 부족함을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계속해서 훈련을 했다.
수용받아본 경험이 적고,
나 역시 수용해본 경험이 없으니
수용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몰라
나는 극단의 수용을 드러내곤 했다.
모든 사람의 말에 그럴 수 있지를 남발했고,
어떠한 언행도 그 사람이 경험한 과거를 들여다보고,
왜 그러한 말과 행동을 했을지를 파고들면
결국 어떤 것도 이해받지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모든 이들을 수용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한달여전쯤부터 나는 이것이 수용의 범위에 들어올 만한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일들을 겪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내게 계속해서 조언을 일삼았다.
내가 그들에게 조언을 바라서도,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도 없었지만
그들은 내게 계속된 조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수용이라는 큰 이슈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그것조차도 모든 것을 수용하려 애썼다.
속으로는 불편함이 올라왔지만
상담사가 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것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불편한 나의 감정은 애써 접어둔채
그들을 포용하려 애썼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거늘.
그렇게 한달여가 흘렀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소위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않고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려 했다.
나를 향한 비난도, 비판도, 근거없는 생각도,
수용이란걸 해본 적이 없으니
무얼 거르고 무얼 취해야 할지 모른채
그냥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수용이라는 것이,
상담사에게 필수 덕목으로 여겨지는 이것이
내게 독이되고,
내게 해가 되고,
내가 소화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진정성있는 수용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불편했다.
그들의 비난섞인 조언이.
하지만 정당성의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일단 모든 것을 수용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나를 버리고 모든걸 수용하려 했다.
내게 해가 되고,
나를 갉아먹는 무엇 조차도.
과연 네가 내게 한 비판은
정당한 것이었나.
네가 내게 한 조언은
나를 걱정하고
나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나.
그 말의 목적이 날 위한 것이었나.
그 의도와 마음을 헤아려 보았을때
답은 아니다 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조언이 소화되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겉으로는 그럴 싸하게 날 위한 말 이라고 했지만
결국 그것은 날 위함이 아니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어떤 것을 수용하고
어떤 것을 멀리해야할지
이제 조금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 그리도 소화되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으로 남아 괴롭혔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상담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수용할 필요가 있을까.
상담사 역시 상담사이기 이전 한 개인이다.
그렇기에 내게 해가 되는 것 마저도
껴안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수용의 중용을 찾은것 같다.
늘 아이에게 타인을 해치면 안된다.
오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순간은
너를 지키기 위한 순간이다.
너를 지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를 매번 가르치면서
나는 수용을 실천하기 이전
나를 지키고, 나를 보호하는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했다지만
나는 내게 해가 되는 이 마저도
품는 것이 어쩌면 어리석음 일지 모르겠다는 결론에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