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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Oct 14. 2022

너의 실패를 온 마음 다해 축하해.

원래의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실패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중도 포기에 대한 부담감때문에
어떤 일을 시작할때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상담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이십 드는 공부가 아닌
학부부터 시작하는 공부였던지라
중도 포기했을때 날려 먹을 시간과 비용에 대한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고서야 입학할 수 있었다.

상담사는 내게 툭 한번 해보라 했다.
꼭 잘해야 할 필요 있나요?
끝까지 한다는게 어디까지인데요?
꼭 끝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그냥 한번 툭 해보고 아님 말고
괜찮으면 쭉 하는거죠 뭐.

그 말에 힘입어 나는 상담을 정말 툭 한번
시도해보았다.
(사실은 그러려고 노력했다.
한번에 내 맘이 그래 툭 해보지 뭐
하고 가볍게 도전하긴 힘들었다.)

예전에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는
한번의 실패가 평생의 실패로 끝이 난다고 했다.
그렇기에 한번의 실패도 받아들이기가
그들에겐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여전히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당장 먹고 살기 바빠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그냥 한번 툭 하고 도전해볼 깜냥은 여전히 없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래도 공부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소소한(?) 재력이 있었고
나는 과감히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그냥 한번 툭이 내게는 점점 쉬워지기 시작했다.
어떠한 경험이든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은 없다는 생각이
신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상담 이후 향후 몇년간의 삶은
물질적 사치보다
경험적 사치를 추구하는 변환점을 맞았다.

사치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나는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
내 삶의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그러다보니 어차피 실패도 다 경험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잡은것 같다.
이것저것 도전하고 깨지고 실패하고 포기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실패란 결코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무의 상태로 태어난다.
개인의 삶에서 무로 태어나 유를 창조해 가는 과정에서
모든 이들은 경험이 필요하다.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무엇이든 잘해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물며 걸음마조차,
모국어조차도.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고서 결국 이에 적응한 인간은
성공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실패를 나는
학습이라 부르기로 했다.

내게 있어 실패는 더이상 실패가 아닌게 되었다.
실패를 한다는 것이 더이상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실패라면,
실패를 꼭 겪어야만 능숙해지고 성공할 수 있다면
이왕 겪을 실패 빠르게 직면해서 빠르게 경험해 나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일었다.

그렇게 실패를 할 때마다
또 한번의 경험을 쌓았다는 생각에
나는 기뻤다.

7살의 팔땡이는 요즘 줄넘기에 푹 빠져있다.
아이는 7세가 막 시작되었을 때부터 줄넘기에 입문하였다.

따로 학원을 보내지 않았기에
그저 집에서 엄마와 함께 연습해보는게 다 였다.

첫 시도는 당연히 실패였다.
아니 백번째까지도 실패였다.
아이는 우울해 했다.
짜증도 내고 분노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가 실패할 때마다 나는 곁에서
실패를 축하했다.

"팔땡아,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해야
나중에 성공할 수 있게 돼.
실패가 결국은 연습이거든.
실패가 쌓이고 쌓여서 연습이 되고
그 연습이 쌓이면 성공을 이루거든.
그래서 엄만 너의 실패를 너무 축하해!
오늘도 실패했네! 같이 기뻐하자! 너무 축하해!"

아이는 분노하다가도
실패를 축하하는 분위기에
머쓱해하며 다시 도전하기를 반복했고
곧 100개의 줄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줄넘기 뿐이랴,
아이가 도전한 인라인 스케이트며
배드민턴,
연산,
피아노,
그리고 한자까지도.

나는 아이를 아직까지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학교때문에 시간 땜빵할 곳이 필요해 태권도 학원에 어거지로 보내긴 하지만..)
그저 엄마와 집에서 오늘의 실패를 다시 한번 축하해가며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하는 중이다.

물론 언제까지고 엄마표로, 독학으로
무언가 이루어지리라 생각진 않는다.
분명 사교육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며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야 할 순간이 올 것이지만
아직 7세인 현재,
아이에게 피아노며, 배트민턴이며, 줄넘기며, 한자며
높은 수준의 아웃풋을 내는 것 보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과
실패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확립할 수 있도록
기초를 쌓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실패를 채찍질하거나 비교당할 수 있는 사교육 시장보다는
좀 더 더디고, 아웃풋이 없더라도
집에서 엄마표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다.

오늘 아이는 꾸준히 풀어오던 연산 문제집 한권을 다 풀어내었다.
문제집을 다 풀고 나면 늘 맨 마지막 장에
아이에게 수고했다는 메세지를 편지로나마 전달한다.

나는 아이에게 맞고 틀리고를 언급하지 않는다.
잘하든 못하든 한권을 끝까지 끈기있게 풀어낸 점을 칭찬했다.
실패해도 도전하고 실패해도 또 도전하고
많은 실패와 도전을 반복해서 결국 성공을 이루어 낸 (성공을 못한다 한들)
아이에게 대견함을 전했다.
너의 실패를 늘 응원한다고,
매일 실패하고 도전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오늘도 너의 실패를 축하한다고 말이다.

덕분에 아이는 무엇이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선생님의 피드백으로는 그림을 그릴 때에도 틀릴 것을 걱정해 머뭇대지 않는다고 한다.
내향적인 부분이 있지만 발표를 할때에 틀릴까 걱정해 소극적으로 있지 않는다고 한다.
유치원에 처음 온 첫날부터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들고 앞에 나와 발표를 했다고 한다.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실패가 쌓여 성공이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에.

숱한 실패를 거듭하며
점점 능숙해지는 자신 스스로에게
자기효능감을 느껴가며
실패의 끝엔 분명 성공이 존재함을,
쓰디 쓴 인내의 끝엔 달달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음을,
아이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오늘도 아이는 서툰 솜씨로
세상의 다양한 것들에 도전한다.
노트북도 두드려 보고,
요리도 해본다.
폰을 조작해 보기도 하고
손가락 위치도 잘 모르면서 엄청 쉬운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두들겨 댄다.
(정말 두들기는 수준이다.)

교육적인 것들 뿐이랴,
더 어린 시절
컵 사용을 연습하며 무수히 쏟아왔던 물들부터
귀여운 젓가락질까지.
아이는 삶의 전반에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한 서툰 행동들이, 실패들이 모여
결국 능숙해질 것임에
아이는 한점 의심이 없다.

어차피 실패해야 한다면
우리는 실패를 당당히 겪어 나가야 한다.
실패라 쓰고
우리는 그것을 연습이라, 학습이라, 경험이라 부르기로 했다.

팔땡아,
오늘도 너의 실패를 온 마음 다해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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