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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Nov 24. 2022

남편의 거절


며칠 전 저녁, 남편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면 내가 밥 안칠건데, 혹~시나 내일 새벽에 못일어날 경우에 아침에 출근하기 전 쌀만 좀 씻어서 밥만 안쳐놓고 가주라."

내 생각에 쌀을 씻고 밥을 밥솥에 안치는 일은 3분이면 후딱 해치우는 아주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남편이 당연히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고 던진 부탁이었다.

남편은 "그냥 지금 밥을 안쳐 놓고 자면 되잖아." 라고 말을 했고, 아이에게 따뜻한 갓 지은 밥을 먹이고 싶었던 나는 아이한테 새 밥을 먹이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남편은 그럼 쌀을 다 씻어놓고 밥솥에 넣어둔 후에 본인이 버튼만 누르면 되도록 준비를 싹 다 해두라 한다. 버튼만 작동하고 가겠다는 거다.

그걸 듣는 순간 속에서는 불편감이 살짝 올라왔다.
이게 뭐라고 이것도 못해주나? 라는 생각.
아이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
거절당했다는 수치심.
다양한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내게 있어 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공부하느라 늘 신경쓰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 죄책감을 보상하는 의미도 있었고, 아이에 대한 모성애, 사랑, 고마움, 안쓰러움, 책임감, 엄마와 아내로서의 노고...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고, 남편에게 있어 밥은 그냥 가장 표면적인 형태의 밥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밥이 주는 의미를 남편은 알지 못했고, 남편은 단호히 거절을 했다.
내게 있어 밥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보니, 이 거절의 풍파는 거세게 다가왔다.

나의 책임감, 미안함, 죄책감, 사랑, 고마움, 노고 많은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단순히 밥의 거절이 아닌, 나의 감정과 지위를 모두 무시하는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순간 내 불편감을 인식하고 감정의 기저에 있는 나의 욕구와 그것의 의미와 두려움을 들여다 봤고, 동시에 남편의 거절의 의미도 표면적으로 느끼지 않고 기저의 의미를 파악했다.

남편에게 있어 새벽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하고나면 회사에 있어야 하고, 집에 오면 가족이 있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남편은 새벽에 일어나 빈둥대며 누워 폰을 만지작대다 회사에 간다.
그럼 회사에서 점심시간없어? 쉬는 시간 없어?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새벽 시간은 엄마들에게는 육퇴와 같은 황금시간인 것이다.

아이를 돌보며 엄마들도 폰을 만지작 거리기도, 누워 있기도 하지만 영 쉬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하다.
그 무엇도 내 신경을 자극하지 않고 시야에 걸리는것 없이 내 휴식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남편의 새벽은 그런 의미였을 수 있다.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그의 황금시간을 침범한 사람일지 모른다.
아침에는 오롯이 혼자 좀 쉬다 가고 싶은데 과업을 부과한다.
남편의 입장에서 그 시간은 엄청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밥에 무거운 의미를 부여한 나와 달리, 남편에게는 그 시간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건드려졌을 수 있다.
영역에 대한 침범, 자유에 대한 박탈, 혹은 지시로 느껴졌을 수도,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단순히 거절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남편의 주관적 영역 안에서는 남편이 느낀 그것만이 정답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주관적 영역을 가지고 있다.
모두의 경험과 과거가 다르기에 자신의 주관적 영역 안에서 그것이 어떻게 자극되어지고, 받아들여지고, 해석될지는 각자가 다 다르게 느낀다.
세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오직 개인의 현상학적 장만이 존재할뿐 이라는 말이 있다.
각자가 느낀대로 각자에게 각기 다른 세상이 존재할 뿐이다.

남편이 정녕 악의적으로 나의 부탁을 거절했나.
남편이 내가 느낀 밥의 의미를 정확히 인지했나.
남편의 거절의 의미가 정말 나의 감정과 지위에 대한 무시였던가.
나의 결론은 no였다.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 나는 남편의 거절이 더이상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뇌에서는 고작 1~2초 이내의 아주 빠른 속도로 정보처리를 거치지만 그 사이 나의 기저의 진정한 욕구와 의미, 타인의 기저의 욕구와 의미를 알아차리고 나니 분노는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가장 표면적인 밥만을 두고 상대의 표면적 행동을 나의 주관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분노는 자연스레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곧이어 나는 웃으며 말한다.
"그렇네? 그게 효율적이겠다.
내가 쌀 씻어서 둘테니 버튼 좀 누르고 가주라."

그리고 다음날,
잊지 않고 버튼을 눌러 밥을 안쳐놓고 간 남편에게 오히려 고마움까지도 느낀다.

그래도 잊지 않고 날 신경써주었구나.
남편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진 않았구나.
이거 신경쓰는 것도 에너지가 쓰였을 일인데, 잊지 않아 준것이 고맙네.
남편 덕에 아이에게 새 밥을 먹일 수 있었네..
하고 말이다.

분노는 참아내는 것이 아니다.
분노의 근원을 이해해야 잠재울 수 있다.
더이상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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